‘딸바보’ 이미지로 외압논란 넘기
지난 9월 10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돌연 기자들에게 앞으로 백브리핑을 않겠다고 했다. 백브리핑은 그야말로 커튼 뒤에서 하는 부연설명으로 당의 공식석상에서 견해를 제시한 뒤 추가할 것은 기자들 질문을 통해 보충해주는 것을 뜻한다. 뉴스를 보면 으레 볼 수 있는 장면, 즉 기자들이 마이크나 휴대전화를 들고 당사자 곁에 서거나 걸어가며 묻고 듣는 형식이 백브리핑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최근 보수층 끌어안기 행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김 대표가 지난 10일 국회 당 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노동자 단체가 만든 인쇄물에 ‘노동시장 구조개편? 정부발 신종 메르스!’라고 적힌 내용을 들어보이며 강력 비난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김대표 심기는 최근 꾸준히 좋지 않았는데 백브리핑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10일 유독 까칠했다. 하지만 이날 정오 전 이유가 드러났다. 가족사였다. 한 매체에 대문짝만하게 난 기사 중 ‘유명 정치인의 인척이 수차례 마약을 복용했다’는 보도의 장본인은 김 대표가 지난달 식구로 들인 둘째 사위였다.
이상균 신라개발 대표는 지난 2월 15차례에 걸쳐 마약을 상습 투약한 혐의로 서울동부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다른 마약 범죄자와 비교했을 때 양형 기준 하한선을 밑돌았고 그것이 김 대표 후광 덕이 아니었냐는 해석이 나왔던 것이다. 보통은 징역 4~9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집과 자동차·유명 클럽·리조트 등에서 코카인과 필로폰 엑스터시, 대마초 등 가리지 않고 마약류를 흡입했고 강한 중독성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뒤늦게 공개된 판결문은 이후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그리고 이날 오후 6시 김 대표는 국회 여당 대표실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소회를 밝힌다. 가감 없는 ‘풀 텍스트’를 실어보면 이렇다.
“사위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기사를 보고 알았다. 내 딸이 사위와 교제를 오래한 것은 아니지만 결혼 날짜까지 정해진 그런 상황에서 일을 알게 됐다. 재판이 끝나고 출소한 지 한 달 지나서였다. 부모 된 마음에 절대 안 된다, 파혼이다 설득을 했는데 딸이, 그 모범적인 자식이었던, 공부도 잘 했고 셀프 콘트롤도 잘하던 딸이 그러더라. ‘아빠 내가 한 번도 아빠 속 썩인 일 없지 않느냐. 이번 이 일에 대한 판단을 나한테 맡겨 달라. 사랑하는 사람인데 잘못한 거 내가 다 용서하기로 했다. 꼭 결혼을 하겠다’ 이렇게. 여러분도 다 경험하겠지만 자식 못 이깁니다. 부모가. 저는 공인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 언론에 노출되는 거 다 좋은데 사위는 공인이 아닌데 공개가 되고 하는 것이 참 아쉽다. 정치인 인척이기 때문에 양형이 약하다는 보도 있었지만 이는 분명히 잘못된 기사다. 요새 세상에 정치인 가족이라면 더 중형을 때리지 도와주는 판사 본 적 있나. 인생 살다보면 누구나 잘못할 수 있는데 이건 너무나 큰 잘못이지만 본인이 그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있다.”
딸에 대한 절절한 부모의 마음을 전해들은 정가 인사들은 곧바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
“이것이 김무성의 퇴로인가”라고 입을 뗀 한 정치권 인사는 “노 전 대통령부인인 권양숙 여사의 아버지가 2002년 대선 당시 좌익 활동 논란에 휩싸였다. 그 때 노무현 후보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나는 대통령 선거를 포기하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정면 돌파였다”라고 했다.
김 대표는 사위의 일에 함구하지도 숨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부모 된 마음’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평균 형량보다 낮았던 사연은 어떻게든 규명되어야 할 일이다. 김 대표는 지금 위기이자 기회에 놓인 셈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노동개혁에 혈안이 돼 있는 김 대표의 이미지가 재벌가까지는 아니지만 부잣집 사위에다 히로뽕, 거기에다 최근 개봉한 영화와 겹치면서 부정적으로 폭발할지 긍정적으로 휘발할지 주목된다”면서 “승승장구하던 최근 이미지를 구긴 것은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사위의 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지 김 대표는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유승민 사태’를 겪은 뒤 당정협의 과잉으로까지 지적될 정도로 여권은 한 박자를 냈고 그 중심에 김 대표가 있었다. 노동개혁이란 숙제를 풀면서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 포털 뉴스 다잡기에 나섰고 차기 주자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선 부동의 여권 1위를 유지했다. 그리고 물밑에서는 여전히 ‘무대(김무성 대장)’ ‘큰 형님’으로서의 통 큰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다는 전언이다.
최근 대구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 만찬에 깜짝 등장한 김 대표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향해 “승민아 미안하다”고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만큼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당시 분위기를 발설하지 말자는 내부 공감대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다.
당시 한 참석자는 “김 대표가 사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자기 사정이 이랬고 앞으로 이러하자, 구체적으로 다 전하기는 어렵지만 유 전 원내대표에 대한 마음을 다른 의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확실하게 전했다”라며 “모두들 힘내자, 파이팅 하자고 했고 분위기도 썩 좋았다”고 전했다.
더군다나 김 대표는 최근 새누리당 절대적 지지세력인 극보수층을 향해 ‘우우(右右)클릭’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며 자신을 어필하고 있었다. 정가는 이를 ‘총선승리’를 향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김 대표를 잘 알고 있는 주변부에서는 “자기정치를 위한 최소한의 종자돈 마련” 차원으로 본다.
애매한 중도층 표심 잡기보다는 확실한 보수층 끌어안기를 통해 지지 말아야 할 곳에서 구멍이 생기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총선 승리보다는 총선 ‘선전’에 방점을 두고 있다. 정가의 한 소식통은 “최소한 자신의 지역구가 있는 부산경남, 그리고 지난 대선에서 8080(80% 투표율 80% 득표율)을 달성했던 대구와 경북에선 필승을 해야 한다. 영남 전체를 석권하고 충청과 수도권에서 선전해야만 곧바로 대권을 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라며 “총선 승리 없이는 보수층 누구도 김 대표를 차기 주자로 밀지 않을 것임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의 든든한 고정 지지율인 30%대까지 자신의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런 극보수층의 인정이 없다면 정권재창출의 주인공으로서 레드카펫을 밟을 수 없다는 얘기다. 선거가 보수 50 대 진보 50의 싸움이라면 보수에서의 30%는 달리 말해 보수 전체에서 60%가 된다.
그래서 최근 김 대표의 톤은 아주 강하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향해 “귀족노조, 강성노조, 기득권노조”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개선이 되지 않으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포털 뉴스의 편향성을 두고 연일 맹공을 쏟아 붓고 있다. 미국에 가서 큰절을 하고, 북한의 도발을 두곤 ‘100배의 응징’을 말하기도 했다. 누가 들어도 극보수층으로부터 박수 받을 소리들이다.
가정사의 위기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극복하고 대통령이 됐다. 김 대표가 이 위기를 기회로 살리느냐로 대권 깜냥이 드러나게 된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