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이사 순번제’가 경영 악화의 씨앗?
전북도민 출자회사인 군산컨테이너터미널이 만성적인 적자 구조를 노출하고 있다. 사진출처=군산시
부두개장 당시만 해도 국내 대표물류회사들인 CJ대한통운과 세방, 선광은 물론 전북도와 군산시가 주주사로 참여함으로써 항만 활성화에 많은 기대를 안겼다. 그러나 지난해 청산 위기까지 내몰렸다가 가까스로 기사회생한 GCT의 현재는 ‘힘겨움’ 그 자체이다.
전북도민 출자회사인 GCT는 지난 2011년 설립 7년 만에 유일하게 ‘흑자(5억 원)’를 기록했을 뿐 만성적인 적자 구조를 노출하고 있다. 9월 10일 현재 자본금은 마이너스 13억 원, 유동성 자금은 1억 원, 화물 처리 실적은 손익분기점 6만TEU의 14%대인 8400TEU에 불과하다. 확보된 국제항로 역시 ‘일본(도쿄·나고야·와카야마)~부산항~군산항~인천~중국 대련항 항로와 ‘평택∼군산∼상해∼평택∼군산’ 등 2개 항로뿐이다. GCT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GCT가 이 같은 상황에 직면한 데에는 대내외적인 이유가 있다. 외적으로는 전북도의 배후경제기반이 취약한 데다 2000톤급 컨테이너선의 입출항을 위해서는 항로 수심이 11.5m가 돼야 하나 현재 7.5~9.5m에 그쳐 항로 개설과 선복 확대가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내적으로는 우선 같은 업종의 하역사인 주주사들이 국내에서 상호경쟁관계에 있는 데다 주간사 체제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거론된다. 일부 주주사가 육상수송까지 경영하면서 도내 컨테이너화물의 수송을 광양항 등 타 항만으로 유도하는 등 GCT의 발전보다 자사의 이해관계를 우위에 두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 대한통운, 세방, 선광 등 3개 선사의 25%대 엇비슷한 지분구조도 또 다른 문제다. 일종의 ‘갑질’ 논란이다. 현재 자본금 93억 원 가운데 전북도와 군산시의 지분을 제외하고 CJ대한통운 27.56%, 세방과 선광 각 27.19% 등 주주 3사가 비슷한 지분을 소유하면서 GCT의 운영과 의사결정에 수시로 관여, GCT 발전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GCT는 2004년 새만금 군산경제자유구역 선정을 위해 전북도와 군산시가 주도하고 대한통운, 세광, 선광 등이 지분투자를 해 설립됐다. 당시 경제자유구역으로 선정되려면 컨테이너 항구가 필요 요건이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현재 50%가 넘는 대주주가 없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GCT 관련 기관에서는 책임경영 부재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책임경영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GCT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유상증자와 함께 대주주 체제의 전환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3개 주주사의 지분싸움 때문에 대주주 체제로의 전환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주주 3개사가 순서에 따라 대표이사를 추천하면 이사회가 결의하는 방식의 ‘순번제’ 대표이사 선임방법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주주사들의 인력해소 차원에서 추천된 대표이사들에게 주어진 임기동안 GCT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기 대표이사는 이 같은 산적한 현안 문제를 타파할 적임자를 물색해야 한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공모제를 통한 유능한 인사를 발탁, GCT 활성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군산항의 한 관계자는 “GCT가 정상궤도에 진입하기 위해선 정부와 지자체의 전폭적인 지원과 관심, 주주사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자율 경영, 각고의 자구책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며 “이런 시각에서 향후 대표이사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성이 강조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딴판이다. GCT는 설립 원년부터 대표이사를 주주사들이 돌아가면서 맡고 있다. 초대 대표이사를 세방이 맡은 데 이어 CJ대한통운 출신 인사가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오는 10월 18일자로 임기가 완료되는 현 대표이사는 선광이 추천한 항만 물류분야의 전직 고위 공무원이 수행하고 있다. 현행 룰이라면 차기 대표이사는 ‘세방’의 몫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다. “GCT가 백척간두에 서 있는 마당에 언제까지 대표이사를 나눠먹기식으로 할거냐”는 날 선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군산GCT 대표이사 선임과 관련, 전북도와 군산시는 공모제 방식을 주장하는 반면, 나머지 주주인 (주)CJ대한통운과 ㈜세방, (주)선광은 이를 거부하고 특정인 선임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들 민간 주주사가 ‘밀고 있는’ 대표이사는 고령의 해외유학파로 지역현실에 어둡고 군산항이나 GCT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도가 일천한 비전문가라는 지적이 흘러나오면서 논란을 키우고 있다.
불만의 목소리는 전북도의회에서 먼저 터져 나왔다. 군산 출신 박재만 도의원은 8일 열린 임시회 5분 발언에서 “군산컨테이너터미널(GCT) 대표이사 선임과 관련, 공모제를 통한 전문가 영입만이 GCT 회생의 관건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군산항 활성화의 핵심인 GCT는 현재 수년째 자본금 고갈과 물량부족, 항로개설 부족 등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다”면서 “이는 경영 잘못으로 판단된다”고 강했다. GCT가 현재의 파산지경에 빠진 데는 지난 6년 동안 주주사간 ‘대표이사 순번제’가 일조했다는 것이다.
이에 박 의원은 “GCT의 전문경영 및 경영정상화를 위해서는 총 18%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전북도와 군산시가 나서 공모를 통해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선임하고 민간 주주사의 나눠먹기식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GCT의 경영 정상화의 시발점을 ‘순번제’라는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데서부터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주사로부터 독립적 경영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대외경쟁력을 겸비한 책임감 있는 대표이사의 선임이 요구된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앞서의 박 의원은 “민간 주주사의 무책임 경영으로 인해 GCT가 현 위기에 처하게 됐고, GCT에 투입한 전북도와 군산시민의 막대한 혈세도 결국 낭비만 한 꼴이 되고 말았다”면서 “만약 민간 주주사들이 공모제를 거부하고 또 다시 나눠먹기식 관행을 이어가려고 한다면 군산항살리기 시민서명운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GCT의 앞날이 불투명한 가운데 1차적으로 후임 사장 선임을 놓고 시험대에 오른 형국이다. 나아가 안팎의 ‘육참골단’의 혁신 요구에 GCT가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