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고차방정식 풀 해법 보인다
통합 삼성물산이 탄생하면서 삼성은 이재용 체제 중심의 새로운 지배구조를 짜는 숙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사진은 삼성물산 입구와 이재용 부회장. 연합뉴스
실제 통합 삼성물산의 출범으로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 중심의 새로운 지배구조를 어렵게 만들어왔던 걸림돌들을 단숨에 치울 수 있게 됐다. 이건희 회장의 공백이 20개월이 넘은 만큼 빠른 시일 내에 삼성이 지배구조 완결을 위한 움직임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삼성전자를 삼성생명이 지배하는 구조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은 분리돼야 한다는 금산분리 논리는 이 구조에는 치명적이다. 현행법은 보험사가 자사 대주주나 계열사 유가증권 보유한도를 총자산 3%로 제한하고 있다. 다만 계열사 증권의 가치는 시가가 아닌 취득가로 정하고 있다. 금융 관련 법규에서 시가가 아닌 취득가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는 보험업법이 유일하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보험업법에만 취득가로 허용된 삼성전자 지분가치 계산을 시가로 바꾸려는 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삼성생명 총자산은 약 220조 원으로 3%면 6조 6000억 원이다. 만약 이 법안이 진짜 법이 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절반가량을 처분해야 한다.
여당인 새누리당 소속 김상민 의원은 금융회사 소유 비금융회사 의결권 제한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내놨다. 개정안은 현행 15%인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제한을 5%로 낮추는 내용도 담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보유 삼성전자 지분 7.21% 가운데 5%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정치권 사정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이 두 법안이 당장 19대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내년 총선에서 정치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다음 대통령 선거 결과도 불확실성의 영역이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재벌개혁이 화두가 되는 추세여서 삼성으로서는 불안 요인이다. 모두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최대주주여서 생긴 잠재위험이다”라고 설명했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통합 삼성물산 출범 전에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다른 계열사에 넘길 수도 없었다. 마땅한 곳이 없어서다. 계열사 가운데 13조 원 가까운 이 지분을 매입할 곳도 없고, 신규순환출자 제한 때문에 쪼개서 매각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오너 일가가 이 지분을 사기에도 금액이 너무 크다”고 설명했다.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을 이재용 부회장에 최대한 가깝게 옮기는 것은 삼성의 새로운 지배구조를 짜는 데 핵심과제였다. 그런데 통합 삼성물산이 탄생하면서 이 숙제를 풀 수 있게 됐다.
삼성물산의 총자산은 34조 원, 자기자본은 18조 원이다. 유동자산만 9조 원에 달한다. 시가 4조 원 상당의 삼성생명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규제가 강화될 경우 이를 받아낼 만한 덩치다. 규제 대응이란 차원에서 보유 중인 삼성생명 주식을 삼성전자 주식과 맞교환(SWAP)한다면 여론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삼성생명 최대주주는 이건희 회장이어서 이 부회장이 그 지분만 물려받는다면 경영권에는 문제가 없다. 금산분리를 위해서도 삼성물산-삼성생명 연결고리는 해소해야 한다. 게다가 삼성생명의 현재 자사주 비율은 발행주식의 5.46%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자사주 비율이 높으면 향후 지주전환 시 지배력 강화에 활용할 여지도 커진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예전의 구 삼성물산도 덩치가 상당히 커 무리한다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가져올 수 있었지만, 이 경우 강제로 지주회사로 전환될 우려가 있었다. 게다가 총수 일가 지분이 적은 상황에서 삼성전자 지분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것은 그룹 경영권을 헤지펀드 등 투기자본에 넘기는 것과 같은 행위가 될 수 있었다”고 풀이했다.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까지 갖게 되면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율이 11.7%까지 높아진다. ‘이재용-삼성물산-삼성전자’의 지배구조가 갖춰지는 셈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삼성전기와 삼성SDI가 삼성물산의 주요 주주로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전기 및 삼성SDI-삼성물산’의 순환출자는 유지된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SDS 지분을 활용한다면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삼성전기와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7.41%의 지분가치는 약 2조 3000억 원이다. 이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SDS 지분 11.25%의 가치는 약 2조 5000억 원이다. 맞교환이 이뤄진다면 이 부회장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약 23.95%까지 높아진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어차피 이 부회장이 상속 및 증여세 마련 등을 위해 삼성SDS 지분을 처분, 현금화할 수는 없다. 헐값 인수 논란 등에 대한 부담이 크다. 순환출자 해소라는 명분을 앞세운 계열사와의 지분 맞교환이 대안이 될 만하다”고 관측했다.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에 대해 20%대 지분만 확보한다면 인적분할 등을 통해 그룹 지배력을 배 이상 높일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삼성전자와 삼성SDS의 합병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엘리엇 사태와 같은 주주들의 반대에 직면할 수 있다. 주총이 필요 없는 소규모 합병을 한다고 해도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 확대를 위해서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 있다. 순환출자 고리도 해소되지 않는다. 지난 4월 2020년 매출 20조 원 달성이라는 비전을 발표한 것도 무색해진다.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전자 등을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인적분할 하는 방법도 여전히 가능하다. 자사주와 현물출자 등을 활용해 현재 최대주주의 지분율을 배 이상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다만 통합 삼성물산의 출범에도 불구하고 풀어야 할 숙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지분을 상속 및 증여받는 데 필요한 세금부담과 두 여동생과의 지분 및 역할 정리 문제다. 두 여동생과의 정리에는 큰돈이 들지 않고 시급한 현안도 아니어서 난제는 아니다. 하지만 세금 문제는 결코 쉽지 않다.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지분가치는 약 10조 원. 세금만 최소 5조 원 이상 필요하다. 삼성가가 3대 넘게 대한민국 최대 부자 지위를 유지해왔다지만 이만큼의 현금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 이 회장 보유지분을 재단에 넘기는 방법도 가능하지만 삼성 측은 이미 “재단을 이용한 우회상속은 없다”고 못박은 상태다. 따라서 일단 분할납부 방식을 택해 배당금과 근로소득 등으로 납부하든지 보유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 납부하는 방식을 택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홍길용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