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서 고춧가루 뿌려도 사장실서 버티기 일관
한화증권이 주진형 사장에 대해 임직원들이 집단반발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한화그룹은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사태의 추이만 지켜보고 있다.
주 사장의 급격한 변화 단행은 내부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더욱이 인적 구조조정을 실시했고 임직원들의 실적·임금 체계를 손보려 했으니 주 사장에 불만을 품는 내부 인사가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분과 관련해 삼성증권 전략기획실 출신의 주 사장은 증권사 CEO(최고경영자)라기보다 ‘구조조정 전문가’가 어울린다는 평가가 존재한다. 실제로 주 사장은 한화증권 대표로 취임한 후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 400여 명의 임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50명에 달하던 리서치센터 인원도 18명으로 줄어들었다.
적자에 허덕이는 회사를 흑자 회사로 돌린 것이 주 사장의 경영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2013년 628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한화증권은 올 상반기 482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순이익도 354억 원에 이르렀다. 주 사장은 불과 2년 만에 수백억 원의 적자 구조를 수백억 원의 흑자 구조로 변모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주 사장의 성과가 크게 평가받지 못하는 까닭은 상당 부분 ‘인원 감축’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주 사장에 불만을 품고 있던 임직원들의 감정이 집단적으로 폭발한 것은 지난 9월 30일. 이날 오전 한화증권 본사 리테일본부 지역사업부장과 지점장 50여 명은 5일부터 실시할 예정인 ‘서비스 선택제’ 시행을 유보해달라며 주 사장의 집무실을 항의 방문했다. 본사 팀장급 30여 명과 일부 프라이빗뱅커(PB)들이 사내 전산망에 집단 항의에 대한 지지성명을 내면서 힘을 보탰다. 사내 전산망에는 주 사장의 퇴진을 촉구한 글도 올라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쯤이면 ‘집단항명’이라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 일은 증권업계 사상 초유의 대표이사에 대한 임직원들의 집단 반발이라는 점에서 그 파장이 심각했다. 게다가 단순히 하나의 제도를 반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 사장에 갖고 있던 임직원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한화증권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
현재 주 사장의 거취는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화그룹이 한화증권의 다음 대표로 여승주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전략팀장(부사장)을 내정함으로써 주 사장의 경질을 기정사실화됐기 때문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주 사장의 임기는 보장돼 있으며 그룹에서는 주 사장의 거취에 대해 언급한 적 없다”고 밝혔지만 다음 대표를 내정한 것 자체가 경질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 대기업 고위 인사는 “임기 막바지도 아니고 6개월이나 남은 상태에서 다음 대표를 내정한 것은 지금 당장 나가란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당초 “연임할 의사가 없었다”는 주 사장은 경질 수순에 들어간 것에 대해 “그럴 줄 알았다”고 전했다.
한화증권 임직원들의 집단반발 사태의 배경 중 하나로 주 사장에 대한 경질 수순을 지목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불만스러웠던 사람인데 갈 길이 이미 정해진 마당에 영이 제대로 서겠느냐”며 “그룹 차원에서 인사와 일처리가 깔끔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이 주 사장에 대해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사태 추이만 지켜보고 있는 데는 주 사장 뒤에 막강한 세력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2013년 9월 한화증권 대표로 취임할 당시 주 사장에는 한화그룹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주 사장도 최근 “(김승연) 회장님의 가족이 나를 한화에 소개했다”며 이를 인정했다. 이 때문에 한화그룹 내에서도 주 사장과 관련해 함부로 나서지 못한 채 난감해 하고 있는 상태다.
사상 초유의 임직원 집단반발 사태를 맞이했음에도 주 사장은 임기와 추진업무에 대해 그룹과 약속받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주 사장은 “한화그룹과 잘 맞을까 우려했는데 실제로 맞지 않았다”고 씁쓸해 하면서도 중도하차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임기를 끝까지 할 것이며 마칠 때까지 할 일을 다 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임직원 집단반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서비스선택제’도 예정대로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6개월이라는 시간은 대표이사로서 여러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일 수 있다. 한화증권의 내부 갈등을 이대로 놔두다가는 상처가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임직원 집단반발로 촉발된 한화증권 내의 주 사장과 임직원의 갈등은 봉합되기는커녕 확전되고 있다.
한화증권은 임직원 집단항명과 관련해 지난 2일 최덕호 영남지역사업부장과 변동환 재경2지역사업부장을 ‘자택 대기발령’을 냈다. 주 사장이 임원 2명에 대해 강력한 인사 조치를 단행함으로써 주 사장과 임직원 간 감정이 격화되고 있다. 평소 주 사장은 임직원들의 생사 문제와 관련해 좋지 않은 발언을 하는 등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온 터여서 이번 인사조치가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한화그룹은 계열사 문제에 대해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남은 6개월을 시끄럽지 않게 보내려면 주 사장에 힘을 실어주든지 아니면 그 반대이든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