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광고 혹독한 추심…때론 주부 울리는 ‘늪’
소득이 없는 주부나 여성들이 간편한 심사절차에 혹해 여성전용대출상품을 이용했다가 고금리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일이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A씨는 소녀 가장이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사업에 실패한 A 씨의 아버지는 “돈 벌러 간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간 뒤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어머니는 지병이 악화돼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고등학생이었던 A 씨는 그때부터 어린 동생 둘을 혼자 돌봐야 했다.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서는 생활이 거의 불가능했다.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A 씨는 지난해 5월 대부업체에서 여성전용소액대출을 받았다.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동생이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당장 150만 원이 필요했다. 직업이 없던 상태라 은행은 대출신청이 어렵다고 했다. 마침 TV에서 한 대부업체의 여성전용대출 상품 광고를 봤고, A 씨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대부업체는 A 씨에게 300만 원 한도까지 대출을 받으라고 권했다고 한다. 해당 대부업체 상담사는 A 씨에게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받아 놓고 갚으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 300만 원 대출을 받아도 이자는 매월 10만 원도 안 되는 데다 여기에 처음 한 달은 이자를 면제해준다는 달콤한 제안까지 했다.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두 개씩 했어도 돈은 빠르게 사라졌다. 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 각종 공과금에 연 34.9%로 받은 대부업체의 대출 이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A 씨는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지금 대출 이자도 잘 갚고 있으니 조금 더 빌려도 괜찮다’는 주변의 유혹을 더욱 뿌리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A 씨는 또 다른 대부업체에서 300만 원을 더 빌렸다.
돈을 빌려준 대부업체는 A 씨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A 씨는 “이자 내는 날이 다가오면 하루에도 몇 번씩 대부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받으면 말없이 끊는 일이 반복됐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전화를 잘 받는지, 연락 끊고 도망친 건 아닌지 확인하는 절차였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이자를 한 번 못 낸 적이 있는데 그때 ‘갚지도 못하면서 왜 빌렸냐’고 비아냥거리더니 그 이후부터는 문자와 전화가 더 자주 온다”고 했다.
A 씨는 한 달 대출 이자만 40만 원가량 내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수중에 남는 돈은 그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마저도 사춘기에 막 접어든 동생들을 위해 쓰고 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교대 시간이 다 됐다”며 일어서는 A 씨에게 미소금융재단 등을 소개해줬다. 해당 재단은 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출연한 기부금과 휴면예금 등의 자금을 가지고 제도권 금융 이용이 곤란한 금융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대부업체 대출을 저리의 은행대출로 바꿀 수 있다. A 씨는 고개를 푹 숙이며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A 씨의 사례는 최근 여성전용대출 시장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은행과 같은 제도권 금융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 여성들이 대부업체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 지난 6일 황주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1분기 기준 대부업체 12곳의 신규 대출 건수 21만 1392건 가운데 여성 대출 건수는 10만 5804건으로, 약 50.1%로 집계됐다. 대출액 규모는 3521억 7500만 원이었다. 여성 고객의 신규 대출 건수는 지난 2012년 24만 3400건(41.8%)에서 2013년 30만 1972건(43.5%), 2014년 38만 3998건(48.1%)로 매년 늘고 있다. 조사 대상은 자산 기준 대부업체 상위 10곳과 여성대출상품 TV광고를 내보내는 3곳이었다.
일부 대부업체들은 여기에 맞춰 여성을 상대로 한 대출상품을 출시했다. 여성 고객 유치에 집중하고 있는 것. 실제로 여성대출상품을 광고하는 미즈사랑의 경우 지난해 광고비만 117억 6000만 원을 썼고, 인터머니가 50억 원, 위드캐피탈이 37억 4000만 원으로 각각 뒤를 이었다. 일부 대부업체는 여성고객을 상대하는 모든 상담원이 여성이며, 추심도 여성이 하고 있다.
최근까지 한 대부업체에서 근무했던 B 씨는 기자와 만나 대부업체들이 여성 고객 유치에 공을 들이는 이유를 “돈이 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여성전용상품을 만든다는 것은 고객을 여성으로만 한정해 대부업체 스스로 시장을 축소한다는 건데, 이들이 왜 그러겠느냐. 심지어 여성들은 예비군, 민방위 훈련 등을 하는 남성들처럼 추적하기도 어려워 돈을 갚지 않고 잠적하기도 쉽다”며 “그런 ‘리스크’가 있어도 여성전용대출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이유’는 여성전용대출에 대한 수요가 점차 늘고 있는 점이다. 황주홍 의원은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기 어려운 여성들의 대부업체 이용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17개 시중은행의 전체 신규 대출 건수(164만 1323건) 가운데 여성 대출 건수(56만 3332건) 비중은 34.3%다. 대부업체의 여성 대출 비중(50.1%)보다 낮다. 은행에서는 직업 유무부터 신용등급 등을 따져 대출하기 때문에 주부 등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여성들이 여성전용대출 상품을 출시한 대부업체를 찾는다. 지난 6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2014 하반기 대부업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대부업체를 이용한 직업군 가운데 주부 비중이 2013년 하반기 6.3%에서 2014년 하반기 8%로 늘었다.
금융소비자연맹 강홍구 금융국장은 “소액금융 이용자의 대부분은 극빈층이 아니다. 상당수가 하위 중산층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시중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으니 소액금융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라며 “대출금도 다른 빚을 갚거나, 생활비나 병원비 등 일반 소비활동에 쓴다. 그럴수록 여성전용대출 시장이 커질 여력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업체들이 여성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터머니(왼쪽)와 미즈사랑의 여성대출상품 광고.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가정주부는 “아이 눈에 문제가 생겨 큰 수술을 받게 됐는데, 남편 사업 실패로 빚을 갚고 있는 중이라 수술비를 신용카드로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할부가 불가능하니 당장 현금이 필요했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여의치 않아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성형수술 등을 위해 여성전용대출을 이용한 사례도 있었다. 성형수술을 위해 해당 대출을 이용해봤다는 30대 여성은 “여차하면 월급을 차압해 원금을 상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수술비, 생활비로 쓰고 남는 돈으로 이자를 갚았다”고 말했다.
전직 대부업체 관계자 B 씨는 “꼭 필요한 곳에 쓰기 위해 대출을 받는 여성 고객들도 있지만, 최근에는 소위 ‘품위 유지비’로 여성전용대출 상품을 찾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라며 “젊은 여성들은 명품 가방을 사는 등 당장 사고 싶은 것들을 사려고 돈을 빌리기도 한다. 주부들의 경우에도 아이들을 위해 고액의 학원비 등에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B 씨는 점차 커지는 여성전용대출 시장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대출을 받아 돈을 어디에 쓰든, 상환 능력이 된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일반 소비를 위해 무분별하게 대출을 받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라며 “여성전용대출 시장 확대를 악용하는 대부업체들도 덩달아 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시 대부업분쟁조정위원회 진태종 팀장(금융감독원 소속)은 “대부업은 양면성이 있다.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서민 대출 제도도 이용하지 못할 정도로 신용 등급이 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은행이나 카드사 등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 대부업체를 이용한다. 대부업체라도 없으면 이들이 불법 사채 시장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전용대출 역시 제도권 금융에서 대출이 어려운 주부나 경력이 단절된 여성 등에게는 일정 부분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일부 대부업체들이 이 점을 악용하거나 여성들이 고금리, 연대보증 등으로 과도한 빚을 지는 경우도 덩달아 늘고 있다”며 “시와 구청에서 지속적으로 점검을 하고 위반사항 적발 시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지만, 소비자들도 주의가 필요하다. 대부업체를 통한 대출이 불가피하다면 소액대출이라도 검증된 대형 대부업체를 이용하거나 한국대부금융협회 등을 통해 정상등록업체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금융소비자연맹 강홍구 금융국장은 “소득이 없는 주부나 여성들의 경우 간편한 심사절차로 무턱대고 대출을 진행했다가 34.9%에 달하는 고금리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며 “대출을 받아 일반 소비를 하면 일정 부분 만족을 얻을 순 있겠지만, 빌린 돈을 이자와 함께 모두 갚으려면 큰 부담이 된다. 대출에는 책임이 꼭 따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추심도 ‘여성 맞춤형’ ‘가족이 알길 바라?’ 저녁시간 집중 전화 최근까지 한 대부업체에서 근무했던 B 씨는 “1금융권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고 대부업으로 넘어온 사람들 가운데 80%가량은 채무상환능력이 없고 이는 여성 고객도 마찬가지”라며 “그래도 대출을 해주는 이유는 연대 보증인이 있기 때문이다. 주부의 경우에는 남편, 젊은 여성들의 경우는 가족이나 남자 친구 등을 보증인으로 세워 대출을 해준다. 특히 주부들의 경우 자동차 또는 전세자금 등 담보로 잡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 A급 고객으로 취급한다. 쉽게 돈을 빌리는 대신 그에 따른 책임이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2012년부터 은행 등을 대상으로 개인과 기업의 연쇄도산 및 신용불량 등으로 인한 각종 폐해를 줄이기 위해 연대 보증인 제도를 자율적으로 폐지하도록 행정지도로 권고했다. 일부 대부업체도 지난 2013년 이 권고에 따라 스스로 연대 보증인 제도를 폐지했지만 여전히 연대 보증인 제도가 유지되는 대부업체도 많다. 해당 권고를 따를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여성전용대출 상품에 대해 다단계 영업 방식을 쓰는 경우도 있다. 앞서의 B 씨는 “기존 여성 고객이 신규 여성 고객을 모집해 올 경우 한 달가량 대출 이자를 면제해 주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A 씨 역시 자신에게 추가 대출을 권한 ‘주변인’도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린 여성이었다고 했다. 추심도 ‘여성 맞춤형’으로 진행한다. 현행 채권공정추심법에 따라 오전 8시~오후 9시까지는 추심전화가 가능하다. B 씨는 “저녁시간에 거는 추심전화는 주부 대출자에게 있어 강한 압박을 줄 수 있다. 남편이나 가족들에게 알려지길 원치 않는 주부들의 심정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자를 제 때 내더라도 ‘돈이 있냐, 언제 낼거냐, 통장에는 왜 돈이 안 들어와 있냐’고 추궁하기도 한다. 상대 여성이 젊거나 머뭇거리면 법으로 금지돼 있는 추심의 경계까지도 오간다”고 귀띔했다. [문] |
소액대출제도 탄생 배경 절대빈곤 퇴치 선의에서 출발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는 선의에서 출발했다.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75)라는 교수이자 은행가는 지난 1973년 20달러가 없어 사채업자의 횡포에 시달리는 인근 주민들에게 자신의 돈을 빌려준 것을 시작으로 소액금융을 통해 돈 없는 사람들의 재기를 유도하는 빈곤퇴치 운동을 벌였다. 처음 사비로 빈민들에게 무담보로 돈을 빌려주던 유누스 교수는 지난 1976년 은행에서 자신이 대출을 받아 빈민들에게 소액대출을 하는 ‘그라민은행 프로젝트(Grameen Bank Project)’를 운영했다. 그 결과 지난 1979년까지 방글라데시의 500여 가구를 절대빈곤에서 구제했고, 이 성공에 힘입어 1983년 그라민은행을 법인으로 설립했다. 극빈자에 대한 무담보 대출이었으나 당시 회수율이 98%에 육박해 그라민은행은 지난 1993년 이후 흑자로 전환했고, 대출받은 극빈자 600만 명의 58%가 절대 빈곤에서 벗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유엔은 이러한 유누스 교수의 캠페인을 지지하면서 지난 2005년을 ‘소액금융의 해’로 선포했다. 유누스 교수는 이런 공로로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뉴욕, 일본 도쿄 증시 상장 소액금융사가 잇달아 생겨날 정도로 소액금융 시장은 매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2008년 소액금융을 도입했다. 소규모 자영업자를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정부는 소액금융 영업을 허가한 것. 이후 금융위원회 또는 지방자치단체 등의 주도로 서민을 대상으로 한 무담보 소액대출 상품이 잇달아 출시됐고, 소액서민금융재단의 민간단체 자금 지원, 민간기부금으로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 상황에선 소액대출 제도가 악용되는 사례가 많아 그 부작용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