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개혁 키잡이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제계에서는 청와대가 이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내년 총선에 출마할 각료로 분류해 후임자 후보군에 대한 검증작업을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사진은 기획재정부 입구.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추석을 코앞에 둔 지난 9월 말,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그간 한사코 부인해온 여의도 복귀 가능성을 시사했다. 국정감사를 위해 국회를 찾았다 기자들과 만난 최 부총리는 내년으로 다가온 제20대 총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 “전적으로 대통령께서 결정할 문제”라면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당으로 돌아가면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중진 의원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 있으면 하겠다”면서 “출마를 위해서는 공직자 사퇴 시한이 있는 만큼 그 시기가 가까워져 오면 대통령께서 고민하시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날 최 부총리의 발언은 올해 말쯤 경제부총리직을 내놓고 새누리당으로 복귀, 내년 총선 준비에 돌입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지난 8월 “경제가 엄중한 상황이라 여의도로 돌아갈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고 했던 것과는 백팔십도 달라진 화법이다. 추석연휴가 끝난 뒤 차기 경제부총리에 대한 하마평이 갑작스럽게 무성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 부총리의 사퇴 시기는 이르면 11월, 늦어도 내년 예산안이 통과되는 12월이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최근 내수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면서 선거에 나설 명분도 어느 정도 확보했다는 평가다. 경제계에서는 청와대가 이미 최 부총리를 내년 총선에 출마할 각료로 분류해 후임자 후보군에 대한 검증작업을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현재 차기 경제부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현정택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수석이코노미스트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최근까지 선두에 섰던 인물은 임종룡 금융위원장이다. 전남 보성 출신인 데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실장을 맡은 전력(?)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임 위원장은 현 정부 출범 초기인 2013년 6월 NH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발탁돼 눈길을 끌더니 2년이 채 못 된 올해 3월 금융수장 자리에 전격 임명돼 화제를 모았다. 그는 NH농협금융 회장 시절 특유의 친화력으로 “외부 인사는 대통령이 와도 못 견디는 자리”라던 회장직을 무난히 수행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금융위원장에 오른 뒤에도 승승장구했다. 특히 박 대통령이 4대 개혁 과제 중 하나로 내건 금융개혁을 앞장서 밀어붙이며 청와대의 마음을 얻었다. 임 위원장은 자신이 참석하는 각종 행사나 강연 등에 ‘금융개혁’이라고 쓰인 배너광고판을 내걸도록 요청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하지만 그가 높이 쳐들었던 금융개혁의 깃발이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 되고 있다. 구호만 요란할 뿐 눈에 띄는 결실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이 최근 “금융개혁의 성과가 없다”고 공개 질타하는 상황까지 벌어지자 금융권에서는 임 위원장의 경제부총리 영전이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현정택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경북 예천 출신으로 경복고·서울대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에서 유학했다. 현 수석은 경제기획원, 재경원, 대통령 경제수석비서, 무역위원장 등을 거친 전형적인 경제통이다.
4대 개혁과제 가운데 노동개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현 수석은 차분하고 원칙을 중시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김대중(DJ) 정부 말기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으로 근무하며 DJ의 높은 신임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그는 한·중 마늘협상 파동으로 중도 하차한 한덕수 경제수석의 후임을 맡으며 역할을 무난히 수행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현 수석은 현 정부에서 요직을 많이 차지한 한국개발연구원(KID) 원장 출신이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당시 그는 “의사는 환자가 원하는 처방보다 환자에게 필요한 처방을 해야 하듯 정부가 원하는 처방보다 필요한 처방을 제시하겠다”며 소신발언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 수석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2013년부터 최근까지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직을 수행해오기도 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대통령을 보좌해 경제 관련 주요 정책을 제시하는 헌법상 기구다.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제 분야 고위 관료 인선이 있을 때마다 거론되는 인물이다. 지난해 초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인선 당시에도 유력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 출신인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의 국제 감각과 전문성을 겸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을 지내며 정부와 조율 능력도 인정받았다.
대구 출생으로 아홉 살 때 아버지 직장을 따라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옥스퍼드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2006년 프린스턴대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국제무대에서 집중조명을 받은 것은 2006년 9월부터. 당시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 참석해 “2008년에 미국 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그가 세계적인 거물급 인물이지만 약점도 있다. 국내에 인맥이 거의 없고, 보수적인 국내 관료들을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국은행 총재 인선 당시에도 이런 점이 발목을 잡았다는 후문도 들린다.
이들 외에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김동연 전 국무조정실장, 박봉흠 전 기획예산처 장관 등도 차기 경제부총리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최근 증권가 정보지에 차기 경제부총리 낙점설이 나돌며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신빙성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금융권 한 고위급 인사는 “박 대통령은 인사에 관해 철통보안을 중시한다”면서 “현재까지 흘러나오는 얘기들은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