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암시 대목 달라진 필체 유서 조작설 ‘모락모락’
코트니 러브가 고용한 사립탐정인 톰 그랜트가 포토카피한 커트 코베인의 유서. 톰 그랜트는 필적이 달라 보이는 마지막 네 줄을 의심했다.
톰그랜트가 커트 코베인의 죽음에 관련된 건, 코베인의 아내인 코트니 러브 때문이었다. 로마에서 돌아온 후 코베인은 마약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클리닉에 들어갔는데, 어느 날 그곳을 몰래 나왔고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에 코트니 러브는 남편을 찾기 위해 사립탐정인 톰 그랜트를 고용했고, 코베인이 죽었을 때도 그는 러브에게 고용된 상황이었다. 졸지에 고객이 사망한 셈이었는데, 이때 톰 그랜트는 코베인의 죽음에서 여러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가장 이상한 건 검시 결과였다. 그가 죽은 지 6일 되던 1994년 4월 14일, 커트 코베인이 방아쇠를 당겼을 때 그는 헤로인에 엄청나게 취한 상황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말하자면, 마약을 벗어나려 했지만 도저히 그 유혹을 이길 수 없었던 코베인은, 클리닉을 탈출해 집으로 와 흠뻑 헤로인에 취했고, 환각 상태에서 평소의 자살 충동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얘기다.
여기서 톰 그랜트는 혈중 헤로인 농도에 의혹을 제기했다. 분석을 담당한 닥터 랜들 베이셀트에 의하면 1리터당 1.52밀리그램의 헤로인이 코베인의 혈액에서 검출되었는데, 이것은 치사량의 서너 배가 되는 매우 높은 수치라는 것. 그랜트는 그렇게 많은 헤로인을 스스로에게 주사한 후에 직접 방아쇠를 당겨 목숨을 끊는 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랜트는, 누군가가 엄청난 양의 헤로인을 그에게 주사해 거의 죽음의 상태에 이르게 한 후 총을 이용해 자살을 위장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랜트에게 반대하며, 코베인에겐 엄청난 양의 약물 투입 후에도 스스로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헤로인에 대한 내성이 있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코베인 사후 10주기를 맞이해 NBC의 뉴스 프로그램인 <데이트라인>에서 사건을 재조명하며 다섯 명의 전문가에게 의뢰를 했는데, 두 명은 코베인에게 내성이 있었을 거라고 말했지만 나머지 세 명은 내성이 있었을 거라고 결론 내리는 건 매우 위험하다고 못 박았다.
그가 남긴 유서도 의혹이었다. 현재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코베인의 유서는, 톰 그랜트가 팩스를 이용해 포토카피를 한 것. 즉 원본을 그대로 스캔한 이미지가 아니기에 필적 감정을 할 때 어떤 오차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랜트는 그 ‘내용’이 더 문제라고 생각했다. 유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전반부엔 이런 구절이 있다. “… 음악을 듣거나 만들거나, 무엇을 읽고 가사를 쓰고 그러는 것에 흥미를 잃은 지 몇 년 되었다. 콘서트의 시작을 알리며 무대에서 조명이 꺼지고 군중들이 함성을 지를 때,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최악의 범죄는 무대에서 100퍼센트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관객을 속이는 것이다….” 즉 그는 더 이상 음악을 할 수 없음을 토로한 후, 팬과 가족(아내 러브와 딸 프랜시스)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에게 열정이 남아 있지 않음을, 그리고 닐 영의 노래 가사를 인용해 “미미해져 잊히는 것보다는 확 타올라 사라지는 게 낫다”고 말한다.
톰 그랜트
경찰의 공식 발표도 의문투성이였다. 사용된 총에선 식별 가능한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 네 개의 지문이 있었지만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경찰은 코베인의 왼손이 총열 부분을 잡고 있었는데, 경찰이 사체에서 총을 떼내는 과정에서 지문이 뭉그러지고 다른 지문이 묻었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유서나 펜에서도 정확한 지문은 발견되지 않았다. 코베인이 죽은 방은 밖에선 잠글 수 없기에 코베인이 안에서 걸어 잠갔다고 했지만, 그랜트는 밖에서도 잠글 수 있음을 발견했다. 가장 기초적인 현장 조사와 증거 보존 등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톰 그랜트는 로마에서의 사건도 의심했다. 죽기 약 1개월 전, 로마에서 코베인은 갑작스러운 약물 쇼크로 코마 상태에 빠져 있다가 살아난 적이 있었다. 당시 코베인의 소속사에선 감기와 피로 때문에 약을 먹었는데 약간 과용이 된 것뿐이라고 했지만, 이후 코트니 러브는 <롤링스톤스>와 인터뷰를 하며 당시 코베인이 자살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그는 약 50알의 알약을 삼켰고, 호텔 방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코베인을 담당했던 의사 오스발도 갈레타는 자살 시도가 아니었으며, 50알의 약을 삼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톰 그랜트는, 코트니 러브가 샴페인에 약을 타 마시게 한 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했다. 만약 코베인이 죽길 바랐다면, 코트니가 왜 병원에 연락했느냐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담당 의사도, 코트니의 적절한 대응이 있었기에 코베인이 살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톰 그랜트는 코베인의 죽음 이면에, 아내인 코트니 러브의 그림자가 어른거림을 계속 언급했다. 그리고 여기엔 결정적인 증인이 한 명 등장한다. 바로 코베인의 변호사인 로즈마리 캐롤이다. 이후 이야기는 다음 주로 이어지며 완결된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