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노무현 정권에 양다리 걸쳤다
# 조희팔 은닉재산 찾아낼까
조희팔로부터 사기를 당한 공식 피해 규모는 2만 4459명, 2조 5620억 원에 달한다. 법원 판결문 등을 근거로 해서다. 그러나 재판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그 액수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은 총 피해액이 8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검찰이 조희팔의 사업 확장 및 도피 과정에 도움을 준 정관계 비호세력에 대한 수사를 재개할 것으로 알려져 후폭풍이 예상된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어찌됐건 단군 이래 최대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조희팔로부터 피해를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만도 수십 명에 달한다고 한다. 지난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 당시 받은 딸의 사망 보상금을 조희팔에게 속아 모두 날린 어머니 등 안타까운 사연도 줄을 이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조희팔 은닉재산은 1200억 원가량이다. 피해 규모에 비하면 턱도 없는 액수다. 그나마 이마저도 피해자 단체 등이 민사소송을 통한 환수 과정에서 드러난 것으로 수사기관이 새로 찾아낸 돈은 그리 많지 않다. 이번에 검찰이 조희팔을 반드시 잡아야하는 당위성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조희팔의 숨겨져 있는 재산을 찾아내 아직도 피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받고 있을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조희팔 수사를 맡고 있는 대구지검 관계자는 “조희팔의 정확한 재산 규모는 아직 파악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다만, 피해액과 여러 첩보 등을 종합했을 때 적어도 수천억 원대 재산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피해자들이 고통 속에서 지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조희팔 일당은 도피 중임에도 불구하고 호화생활을 즐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유 씨는 “조희팔과 강 씨 등은 사설 경호업체 직원들을 고용했고 밤마다 고급 룸살롱에서 유흥을 즐겼다. 회사가 언젠가는 문제될 것을 알고 미리 돈을 해외로 빼돌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조희팔은 수익금 중 대부분을 측근 차명계좌를 이용해 보관해왔고, 이 중 일부를 다시 해외로 송금하거나 부동산 등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재산을 축적했다고 한다.
앞서의 검찰 고위 인사는 “조희팔의 해외 재산을 찾는 것은 꽤 힘든 작업이 될 것이다. 여러 루트를 걸쳐 자금을 세탁했다는 첩보가 있기 때문이다”며 “예를 들면 조세회피지역 두 곳을 거친 뒤 다시 홍콩과 싱가포르 등지의 다국적 금융회사를 거치면 계좌 추적은 쉽지 않다. 그래서 비자금을 관리한 강태용이 입을 여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검찰은 대구지검에 대검찰청 회계분석 전문 인력을 지원해 조희팔 재산에 대한 광범위한 추적에 들어간 상태다.
# 조희팔을 키운 사람들
“내 뒤엔 ‘큰집’이 있다.”
조희팔이 평소 지인들에게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여기서 큰집은 청와대를 의미한다. 물론 조희팔이 허풍을 떨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그러나 피해자들과 측근들에 따르면 조희팔은 평소 광범위한 로비를 통해 정치권 실세들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왼쪽부터 조희팔, 강태용.
경찰은 2008년 조희팔 수사 당시 정치권과의 커넥션에 대한 물증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수사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외압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2008년이면 정권 초로 실세들 힘이 제일 셌던 때다. 경찰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털어놨다. 조희팔과 MB(이명박) 정부 실세들 간 유착관계가 포착됐었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 있는 까닭에서다.
<일요신문>이 당시 경찰과 검찰이 수집했던 내부 자료를 살펴본 결과 MB 정부 실세로 통했던 청와대 최고위급 인사, 장관급 관료, 친이계 국회의원 등이 포함돼 있었다.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조희팔이 별다른 제지 없이 밀항할 수 있었던 배경엔 이들 중 누군가의 비호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희팔은 로비에 돈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중심엔 체포된 강 씨가 있었다. 강 씨는 자신의 인맥과 풍부한 자금을 활용해 로비 전면에 나섰다. 조희팔로부터 뇌물을 받아 구속된 김광준 전 부장검사와 검찰 전직 수사관은 강 씨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조희팔 사건에 연루돼 옷을 벗은 경찰만 10명이 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법조계 주변에선 현직 검사들 이름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과 경찰이 동시에 조희팔 재수사에 나섰지만 과연 몸통까지 건드릴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앞서의 경찰 고위 관계자는 “솔직히 치욕을 당할 만큼 당했다. 검찰 역시 비슷할 것이라고 본다. 잘 공조해서 내부의 조희팔 협력 세력을 발본색원할 것이다. 또 조희팔과 관련 있는 정·관계 인사들도 끝까지 추적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2008년 조희팔 수사 전후의 비호세력뿐 아니라 사업 확장 과정에서 도움을 준 정치권 인사들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경우 수사 범위는 MB 정부뿐 아니라 노무현 정부까지 확대된다. 대구에서 사업을 시작한 조희팔은 점차 부산 충청 수도권 등지로 영역을 넓혀갔다. 이 과정에서 조희팔이 검찰과 경찰은 물론 당시 정치권 실세들에게 ‘줄’을 댔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조희팔은 피해자들 상대로 강연을 할 때 노무현 정부의 몇몇 실세들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같이 찍은 사진도 보여줬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팀에 근무했던 사정당국 관계자는 “조희팔 사업과 관련해 여러 차례 보고가 올라왔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희팔과 당시 여당 386 정치인들 중 일부가 관계를 맺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추후에 크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봤지만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고 떠올렸다. 조희팔 게이트가 지난 두 정권을 동시에 겨눌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