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밥줄 대느라 주민 등골 빠질라
이상은 드라마 <씨티홀>의 한 장면이다.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매년 열리는 지역 축제 등의 행사가 1200여 개나 된다고 한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전 300여 개에 불과했던 지역 행사가 무려 네 배나 늘어난 것이다. 경기 불황으로 기업체에서 여는 행사도 많이 줄어들었지만 세금으로 진행되는 지자체 행사는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공적인 지역 축제로 자리 잡을 경우 커다란 관광 수익을 올릴 수도 있고 다양한 지역 행사는 지역주민의 문화생활 재고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물론 드라마 <시티홀>처럼 부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행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지역 행사가 지자체장이나 지역 유지 홍보장이나 지역 정치인의 선전장으로 전락한 경우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는 사이 가수들의 수익도 향상됐다. 밤무대와 달리 본인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되며 높은 수익까지 올릴 수 있는 지역 행사가 지방자치체 실시 이후 네 배나 늘어났다.
가수들의 인기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밤무대 출연료와 비슷한 수준에서 지역 행사 출연료가 결정된다. 가요 관계자들에 의하면 대략적인 행사 출연료가 다음과 같다. A급 가수들은 1500만~2000만 원, 인기 댄스가수들은 1000만~1200만 원 내외, 잘나가는 A급 트로트 가수는 700만~1000만 원 수준이 인기에 따른 기본적인 출연료다.
반면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나 무명 가수들의 경우 100만~200만 원 정도의 출연료를 받고 무대에 오른다. 한때 잘나가던 가수들이나 방송 노출 빈도가 많이 줄어든 뒤 밤무대나 행사에 매진하는 가수들의 경우 희소성이 떨어져 300만~500만 원 정도의 출연료를 받는다.
이처럼 해당 가수의 인기도에 따라 기본적인 출연료가 결정된 뒤 해당 지역이 어딘지 등의 변수에 따라 출연료가 변한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출연료가 높아지게 마련인데 대전을 기준으로 출연료가 크게 달라진다. 겹치기 출연이 가능한지의 여부도 중요하다. 인접 지역에서 또 다른 지역 행사가 있거나 지방 대학 축제 등이 있어 겹치기 출연을 할 수 있을 경우 서울에서 먼 지역이라 할지라도 출연료가 다소 낮아진다.
행사 주최 측과의 친분도 변수 가운데 하나다. 매년 같은 지역 행사에 출연하며 해당 지자체 또는 대행사와 친분이 두터워지면 예산 규모에 따라 출연료를 조금 적게 받고 무대에 서기도 하는 것. 또한 단순히 현장용 행사가 아닌 방송 중계가 되는 무대의 경우에도 출연료가 조정된다.
역시 출연료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수요 공급의 법칙이다. 수요의 경우 지난 10년 새 지역 행사가 네 배 이상 늘면서 급증했지만 오히려 가수의 수는 줄었다.
음반 시장의 오랜 불황으로 가수들의 배우 변신이 늘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새 방송 활동보다는 지역 행사를 겨냥해 데뷔하는 트로트 가수들이 급증했고 행사용 프로젝트 앨범을 내는 연예인들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시기적인 수요의 급증도 연예인 몸값을 높이고 있다.
한 인기 트로트 가수 매니저는 “지역 축제들이 시기적으로 편중돼 있는데 4월 말에서 5월 초에 꽃 관련 축제가 몰려있고 7~9월엔 여름철 관광지 축제, 9월말에서 10월 초 사이에는 과실류 축제가 집중적으로 열린다”면서 “방송 출연을 위주로 하는 젊은 층이 좋아하는 가수들은 5월 대학 축제 시기가 되면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일 정도의 호황을 누린다며 행사용 가수들은 매년 세 번이나 호황을 맛보게 된다”고 얘기한다.
보통 소규모 지역 행사에는 두세 명의 가수가 무대에 오르고 행사 규모가 큰 경우에는 10여 명 이상이 한 지역 행사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지역 행사마다 적게는 2000만~3000만 원에서 2억~3억 원의 비용이 연예인 출연료로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지역 행사 출연료의 출처는 세금이다. 지자체가 여는 지역 행사는 드라마처럼 지역 행사가 불법 자금 형성을 위한 자리이거나 지자체장 홍보를 위한 자리일 수도 있고 혹은 성공적인 지역 축제가 될 수도 있지만 그 어떤 경우이건 연예인 입장에선 엄청난 수익원이다.
연예인 입장에서 밤무대가 확실한 수익원인 이유는 무자료 거래가 많다는 부분이다. 무자료 거래의 경우 세금 탈루가 가능한 현금 수입인데 종종 국세청이나 수사기관에 적발돼 물의를 빚기도 했다. 지자체에서 하는 지역 행사의 경우 담당자가 공무원이라 무자료 거래가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또 다른 트로트 가수 매니저는 “고액의 출연료를 받는 가수들의 경우 소속사 차원에서 세금계산서 처리가 확실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출연료가 100만~200만 원가량인 신인 또는 무명 가수들의 경우 무자료 거래가 이뤄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연예인 출연료가 아닌 행사비 명목으로 처리하는 방식의 무자료 거래가 이뤄지곤 하는데 공무원이 아닌 대행사를 통해 이런 거래가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대부분의 지역 행사는 대행사를 끼고 진행된다. 대행사가 무대 설비부터 연예인 섭외까지를 전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연예인 출연료 지급 역시 대행사에서 이뤄진다. 적은 출연료를 받는 신인이나 무명 가수들의 경우 소속사 없이 개인사업자이거나 아예 사업자 등록이 안 돼 있는 이들도 있어 세금계산서 발행이 복잡해 무자료 거래가 이뤄지곤 한다는 것.
대학 축제 및 지방 행사 전문 대행사의 한 관계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출연료를 조금 적게 받더라도 무자료 거래를 요구하는 가수들이 많아 대행사가 난처했던 게 사실”이라며 “최근 들어 많이 달라졌는데 몇 년 전 대대적인 밤무대 무자료 거래 단속 이후 연예기획사들의 무자료 거래 요구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한다.
취재 과정에서 지역 행사 관련 대행사와 담당 공무원의 비리가 종종 벌어진다는 충격적인 제보도 접할 수 있었다. 극히 일부지만 지역 행사 담당 공무원과 행사 대행사가 짜고 행사 예산을 부풀려 횡령하는 비리가 벌어지기도 한다는 것.
연예인에겐 이런 지역 행사들이 불황 타개를 위한 마지막 탈출구이나 세금 낭비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자체가 여는 지역 행사가 대부분 문화예술 축제라 일회성의 소모적인 행사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가을 수확 철에 축제가 집중적으로 열리다 보니 품삯이 올라 그렇지 않아도 일손이 부족한 농민들을 더 힘겹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정부는 최근 지역축제를 자율적으로 통폐합하거나 간소화해 절감한 예산을 일자리 창출에 활용한 지자체에 교부세를 확대 지원하는 지역축제 개선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