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출연 미끼로 신인들 ‘쥐락펴락’
▲ 사진 속 글은 고 장자연 유서 내용 중 일부. KBS화면 캡처 | ||
더욱 심각한 부분은 몇몇 연예기획사가 아예 유흥주점을 차려놓고 그곳을 술자리 강요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 장자연 문건 사건’과 ‘성폭행 및 노예계약 사건’ 모두 해당 연예기획사가 자체적으로 유흥 주점을 운영해온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고 장자연 사건의 경우 이미 피해자가 세상을 떠난 데다 고인이 남긴 문건 역시 소위 ‘장자연 리스트’라 불리는 중요 부분은 소각돼 버려 수사 초기엔 실체는 없이 의혹만 증폭됐었다. 이런 상황에서 처음으로 드러난 실체는 고인의 소속사 사무실이었다. 소속사에서 사무실 건물 1층에 위치한 와인 바를 직접 운영했으며 같은 건물 3층에 최고급 인테리어를 갖춘 호화 스위트룸을 마련해 놓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 최근 연예기획사 대표 김 아무개 씨가 구속되면서 불거진 ‘소속 연예인 성폭행 및 노예계약 사건’에서도 연예기획사가 직접 단란주점을 운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곳이 술자리 접대의 장소로 사용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실 그동안 연예계에선 일부 연예기획사 대표나 방송국 PD 등이 룸살롱이나 단란주점과 같은 유흥주점을 운영하며 여자 연예인에게 술 접대를 강요했다는 소문이 종종 있어 왔다. 90년대만 해도 연예기획사들은 단골 룸살롱 몇 곳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연예관계자 등에게 술 접대를 해왔다. 이런 과정에서 아예 해당 룸살롱 업주 등과 친분을 쌓아 지분 투자를 하곤 했는데 이런 형태를 연예기획사의 유흥주점 운영 시초로 볼 수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연예기획사를 운영했던 조 아무개 씨는 “한창 그쪽 일을 하던 90년대 후반엔 PD와 기자, 영화감독과 유명 작가 등에 대한 술 접대 약속이 거의 매일 잡혀 있었는데 늘 같은 곳으로 데려갈 수 없어 단골 룸살롱 서너 곳과 거래를 했었다”면서 “PD나 영화감독 등이 캐스팅 등을 상의하기 위해 여자 연예인을 만날 때 가장 적당한 장소가 밀폐된 룸이 있는 룸살롱 같은 곳”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대중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연예인을 배려하는 차원이기도 했고 퇴폐적인 술 접대 자리도 종종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가장 파격적인 소문의 근원지는 신사동 소재의 한 회원제 비즈니스 클럽이다. 그곳은 당시 방송국 예능 PD로 유명한 인물이 차명으로 차려 놓은 유흥주점으로 알려졌는데 여기서 여자 연예인들 몇 명이 일한다는 소문이 나돈 것. 예능 PD가 워낙 영향력이 있는 인물인 터라 그에게 잘 보여 방송 출연의 기회를 잡으려는 신인 연예인과 소위 한물간 연예인들이 접대부로 일한 것이었다. 또한 단골손님 가운데 가요계 실력자들이 많아 그들을 술 접대하다 우연히 데뷔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수 지망생들도 많이 몰려들었다. 실제로 당시 가요계를 떠나 있던 여가수 A가 그곳에서 일하다 A는 다시 연예계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PD가 운영한다고 알려지면 연예인과 매니저 등 이해관계가 얽힌 연예관계자들이 자주 찾아 매상을 올려줄 수밖에 없음을 악용한 유흥주점들이었다.
최근 문제가 된 ‘소속 연예인 성폭행 및 노예계약 사건’과 유사한 형태로 유흥주점을 운영한 연예기획사도 있었다. 몇 년 전 중소 연예기획사가 대표 부인이 운영하는 룸살롱에 소속 신인 연예인들을 접대부로 활용한다는 소문이 연예가에 떠돈 것. 그들의 논리는 나름 정교하다. 데뷔하는 데 드는 비용을 함께 일해서 벌고 그 과정에서 연예관계자들과의 인맥까지 넓힐 수 있다는 게 해당 연예기획사의 논리였다. 그런 만큼 2차는 나가지 않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실제 그 룸살롱에 다녀왔다는 연예관계자도 여럿 있었지만 별다른 화제를 양산하지 못한 까닭은 당시 해당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연예인이 대부분 신인으로 활동 이력도 거의 없는 사실상의 연예인 지망생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해당 룸살롱에서 일하던 신인 연예인 가운데 한 명인 B가 조금씩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불거졌다. 게다가 그 룸살롱을 다녀온 연예관계자가 B에게 직접 받아왔다는 명함이 몇몇 기자들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명함에는 가명이 적혀 있었다.
당시 해당 유흥주점을 취재한 기자는 “우선 명함에 적힌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웬 남자가 받아 잘못 걸었다고 얘기할 뿐이었다”면서 “직접 해당 룸살롱을 찾아 B가 룸살롱에서 쓰는 가명을 대며 불러달라고 했지만 며칠 전에 그만뒀다는 얘기만 들었다”고 전한다. 유명세를 얻으며 더 이상 B가 그 룸살롱에서 일하지 않고 있었던 것.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B는 소속사와 전속계약 분쟁을 겪으면서 회사를 떠났다. 현재 B는 연예계를 완전히 떠난 상황이고 해당 연예기획사 대표는 매니지먼트사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연예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