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물‘’ 빨러 갔다가 ‘’쓴물‘’만 들이켰네
비디오 대여 시장이 호황이던 시절 한국 에로 업계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매달 30~40편의 에로비디오가 출시되면서 수십 명의 에로배우들이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이 가운데 몇몇 에로배우는 어지간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고 이후 가수로 변신한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2001년 이후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차츰 인터넷망이 확충되면서 인터넷 성인방송과 같은 막강한 경쟁자가 등장했고 비슷한 시기 불법 다운로드도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에로 업계는 물론 비디오 대여 시장 자체가 크게 흔들렸다. 당장에 수십 명의 에로배우가 실업자가 됐다. 인터넷 성인방송으로 자리를 옮긴 이들이 급증했지만 인터넷 성인방송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90년대 후반부터 한·일 에로 업계 사이의 교류가 시작됐다. 일본 인기 에로배우가 내한해 한국 에로 비디오에 출연하고 일본 AV가 한국 로케이션을 오기도 했다. 이렇게 양국 사이에 교류가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에로배우에 대한 일본 측의 입질도 시작됐다.
그렇지만 에로배우의 일본 AV 업계 진출은 불법이다. 일본 AV의 경우 대부분이 실제 정사를 기본으로 한 촬영인데 이는 국내법에 저촉된다. 실제로 일본에서 적나라한 포르노급 AV에 출연한 진주희는 사법 처벌을 면치 못했다. 따라서 초기 에로배우들의 일본 진출은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정식 AV인 에로 비디오가 아닌 ‘이미지 비디오’에만 출연한 것. 이미지 비디오는 ‘동영상 누드’ 정도로 분류할 수 있는데 노출은 있지만 남자 배우와의 베드신은 없는 AV다. 노출 수위도 헤어 누드는 없는 수준. 국내법에 저촉되지 않지만 그만큼 출연료가 낮은 단발성 출연일 뿐이다.
결국 에로배우가 일본에서 자리 잡으려면 국내법 위반을 감수해야 한다. 몇몇 에로배우들은 과감하게 일본 진출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일본 AV 업계의 경우 출연료가 조연급 200만 원, 주연급 500만 원 수준이다. 한국에선 두 편을 2박 3일 동안 촬영하는 데 반해 일본은 하루에 한 편 정도를 촬영한다. 한국의 경우 주연급 여자 에로배우가 일당 70만 원 정도를 받아 2박 3일 동안 두 편을 촬영해 200여 만 원을 받는 데 반해 일본에선 조연급으로 하루만 촬영해도 200만 원 이상을 벌 수 있다. 게다가 제작편수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일본이 많아 일자리도 많다.
▲ 2000년 열린 제 1회 에로 미스코리아. | ||
일본 AV 업계가 한국 에로배우를 스카우트하려는 이유는 한국 여성을 좋아하는 일부 마니아 팬층 때문이다. 이들을 위한 기획물 AV를 제작하는 것. 따라서 출연료도 일본 AV 주연급 출연료인 500만 원 수준을 제시한다. A 역시 상당한 금액을 받고 일본 AV에 출연했다. 그런데 양측의 생각이 달랐다. A는 데뷔작 이후 꾸준한 활동을 원한 데 반해 일본 제작사는 기획물 일회성 출연을 생각했던 것. 다행히 일본 제작사 측이 A의 열정을 감안해 이후 두세 작품에 더 출연시켰지만 그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또 다른 에로배우 B는 처음부터 조연급으로 데뷔했다. 출연료도 회당 200만 원 수준으로 국내보다는 많은 돈을 받았지만 일본은 그만큼 물가가 비싸다. 게다가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기 힘들었고 한국인이라는 희귀성도 출연 횟수가 늘어날수록 줄어들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일본 AV 업계에서 6개월도 못 버티고 유흥업소로 일자리를 옮겼다. 역시 언어 장벽이 높아 큰돈을 벌 수 있는 일본인 대상 유흥가가 아닌 한국인 대상 클럽과 대화가 거의 필요 없는 출장 마사지 등을 전전하며 돈을 벌어야만 했다. B의 행보는 우연히 일본 오사카의 한 한국인 대상 클럽에서 그를 만난 국내 에로업계 관계자를 통해서 알려졌다. 당시 그를 만난 업계 관계자는 “일본에서 4년 정도 지냈다는데 여전히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해 고생이 많다고 했다”면서 “B의 얘기론 일본 AV 업계에 진출했다 결국 유흥업소로 흘러들어온 비슷한 처지의 동료 에로배우들이 여럿 된다고 하더라”고 얘기한다.
이처럼 출연 편수는 많지 않을지라도 일본 AV 업계로 진출한 에로배우들이 꽤 된다. 그럼에도 진주희처럼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며 사법처벌을 받은 이는 아직 없다. 그들 입장에선 다행이지만 이는 곧 그들이 일본 AV 업계에서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들의 흔적이 가감 없이 국내에 알려지고 있다. 성문화 평론가 김창환 씨는 “요즘에는 인터넷을 통해 그들이 출연한 일본 에로비디오가 곧장 국내에 불법 공유되고 있어 더 이상 숨길 수가 없다”면서 “한동안 잘 안보이던 에로배우들이 일본 에로 비디오에 출연한 모습을 보고 업계 관계자들도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고 설명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