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규모 12만 명이 ‘철통경호’
2014년 12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최고지도자 경호부대인 호위사령부 직속 포병부대를 시찰하며 강도 높은 훈련을 지시했다. 연합뉴스
김일성 시대만 해도 북한 호위사령부의 병력은 3만~4만 명 수준이었다. 물론 이 역시 다른 국가의 경호 기관이나 경호부대와 비교한다면 큰 규모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던 호위총국이 1990년을 전후해 6만~7만 명 규모로 벌크 업에 들어갔다.
그 배경은 이러하다. 이미 아버지 김일성 밑에서 후계자로서 실질적 통치에 나서고 있었던 김정일은 이 시기 소련의 몰락으로 시작된 공산권의 붕괴를 몸소 겪게 된다. 특히 김정일은 두 가지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한다. 하나는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처형이었다. 알려졌다시피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1989년 12월 당시 군중과 정규군의 혁명으로 인해 처형당한다. 그는 김일성과는 ‘의형제’를 맺을 만큼 돈독한 관계였다.
루마니아에는 정규군과는 별도로 차우셰스쿠만을 호위하는 비밀부대가 존재했다. 일명 ‘세쿠리타트(Securitate)’라 불렸던 해당부대는 차우셰스쿠가 고아들을 선별해 오직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결사조직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이러한 선발원칙도 북한 김일성에게서 배워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루마니아 차우셰스쿠의 말년 독재체제 유지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북한에서 ‘수입’했던 셈이다. ‘세쿠리타트’는 차우셰스쿠가 처형을 당한 뒤에도 끝까지 지하요새에서 저항하다 최후를 맞는다. 김정일이 이 장면을 북한 내 호위사령부 구성원 간부들에게 반복해서 보여줬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하지만 김정일이 호위사령부의 확대를 결정짓게 된 일은 두 번째 것이 더 결정적이었다. 1977년 집권 이후 쿠데타로 쫓겨난 1991년까지 에티오피아에서 200만 명을 학살한 아프리카의 전설적 독재자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의 당시 사건이 그것이다. 차우셰스쿠만큼이나 김일성과 가깝던 멩기스투는 북한의 의복(중산복) 착용을 따라하고, 군관교육까지 북한에 맡길 정도로 김일성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윤정린 호위총국장의 팔장을 끼며 친근함을 표시하고 있다.
당시 김정일에 있어서 루마니아의 사례가 이상향이라면, 에티오피아의 사례는 반드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건이었다. 오로지 독재자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호위대가 부패하고, 부실해 총칼을 거꾸로 겨눈다면 독재에 크나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김정일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김정일은 국제사회에서 발생한 앞서의 사례, 특히 에티오피아의 사례에 큰 영향을 받아 이 시기 기존의 호위사령부를 확대 개편하고 내부적으론 구성원들의 출신성분 및 교육을 강화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게 된다. 이것이 북한 호위사령부가 비대해지게 된 첫 번째 계기였다. 이때부터 호위사령부는 각 부대가 핵심 북한 주요 군단들의 쿠데타를 대적하기 위한 수순에 들어가게 된다. 사령부 내 전투부사령관 직제까지 새로 내오며 대대적인 개편을 하게 된다.
북한의 호위사령부는 이어 두 번째 계기로 다시 한 번 확대된다. 1990년대 초엽에 발각된 러시아 ‘프른제군사대학’ 출신들로 이루어진 쿠데타 모의와 1995년 함경북도에 위치한 6군단의 주요간부가 시도한 ‘쿠데타 모의시도’ 탓이었다. 프른제사건은 그런대로 사전에 발각되어 진압됐지만, 6군단 사건은 군단장 몰래 군단 정치위원 산하 대부분의 고위급 간부들이 쿠데타 자금을 모으기 위해 무역사업을 꾀하다 보위부에 포착된 일련의 사건이었다. 당시 프른제 사건과 관련하여 15명 정도의 장성 및 고급 군 간부들이, 6군단 사건의 경우 40명에 달하는 관련 장성 및 고급 군 간부들이 처형당했다.
김정일은 이 일을 계기로 호위사령부 산하에 기계화 및 특수 저격·경보병 부대를 두고 구성원을 또 다시 7만~8만 여명으로 확대하는 등 개편에 나선다. 2013년 12월 현재 북한의 호위사령부는 무려 12만 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호위부대로 거듭났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호위사령부는 김일성이 사망하고 나서 호위총국으로 격하되었다. 이후 2008년 다시 사령부급으로 승격됐다가 김정일이 사망하고 난 2012년 호위총국으로, 지난 2013년엔 한 단계 위인 ‘호위사령부’로 격상된 것으로 보고된다. 그러나 다시 지난 2014년 하반기 다시 호위총국으로 격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경호조직 자체에 힘이 축소된 것보단, 조직 간 세력 균형을 염두에 두고 특히 수령과 후계자가 동시에 존재할 때와 수령이 사망하고 후계자가 다시 수령이 되는 등 일련의 일시적인 조정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오히려 꾸준히 호위부대의 화력밀도와 경호능력은 지속적으로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현재 총국 급으로 내려간 뒤에도 성원의 인원이 줄거나 산하 조직 자체의 조정은 없었다.
역대 간부들을 본다면, 1980년대까지는 호위사령관이 오백룡 상장과 전문섭 상장이, 이후 호위사령부로 승격된 이후 조선인민군 원수 리을설이 사령관으로 있을 정도로 김일성에게 충신들만이 호위총국 및 호위사령관 직을 맡았을 정도로 비중이 컸다. 오히려 총참모부나 인민무력부 책임간부보다 큰 인물들이 역임했다. 최근에는 리을설 원수가 사령관 직무를 수행할 당시 참모장을 하던 윤정린 대장이 호위총국장 직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령관 밑 정치위원은 1990년대에는 리동춘 대장(항일무장투쟁 시 소위 정치공작원출신인 리제순의 아들)이 정치위원을 했지만 이후 김성덕 상장이 현재 정치위원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적으로 이렇게 북한 ‘호위사령부’의 확대 개편은 지도자 호위에 대한 개념을 확대시킨 결과다.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의 경호대 혹은 호위대 개념의 핵심은 어찌됐건 지근거리에서의 ‘지도자 신변보호’가 최우선이다. 하지만 북한의 호위사령부는 그 개념을 평양 전체로 확대시켰던 것이다. 더 나아가 1995년 쿠데타 모의사건을 반면교사 삼아 ‘주요 군단급 부대를 감시하는 담당부대’의 개념으로 까지 확대됐다.
필자가 최근 입수해 정리한 호위사령부의 내부조직은 다음과 같다. 현재 호위사령부는 4개의 부, 3개의 국, 4개의 처, 12개의 전투 및 건설 여단, 15개의 직속 연·대대(중대) 급 부대, 그리고 수도방어사령부(일명 91훈련소)가 소속되어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0월 10일 열린 조선로동당창건 70돌 경축 열병식. AP/연합뉴스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선 여전히 호위사령부 1호위부가 전통적인 북한 지도자들의 핵심 호위부대로 파악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사실이다. 1호위부는 이미 영원한 주석, 영원한 당 총비서 및 국방위원장으로 남은 1대와 2대 지도자 김일성, 김정일이 묻혀있는 금수산기념궁전(현 태양궁전)을 지키고 호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호위사령부의 핵심은 2호위부(일명 조선인민군 제974군부대로 불림)다. 김정일·김정은 시대들어 최고지도자와 그 가족들을 실제 지근거리서 호위하는 임무는 2호위부가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호위사령관과 더불어 유일하게 공식행사장, 특히 최근 김정은이 참석하는 1호 행사에서 총을 가지고 들어가는 이는 중장(한국의 소장급)급 2호위부장이다.
최근 상황을 요약해보자면, 현재 김정은 집무실엔 상시 3명 2개조, 즉 6명이 3교대로 돌아가며 24시간 호위하고 있다. 이 6명은 격술을 포함해 우리 식으로 보면 종합무술 10단 이상에 달하는 특공무술 능력자들이다. 여기에 외측 근무자들을 포함하면, 이렇게 김정은의 신변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는 약 300~500명에 이르는 대대급 규모로 파악된다. 이들은 심지어 김정은이 볼 일을 보는 순간까지도 지근거리서 철통 경비에 나선다고 한다. 이들은 북한 내 정치국 위원급 이상으로 높은 대우를 받는다.
이 부대 안에는 2호위부장과 더불어 정치위원, 조직부장 등 6명의 당중앙위원회 위원 급 요원들이 배정될 정도로 군은 물론 당적으로도 최고의 정예부대이다. 뿐만 아니라 1 및 2호위부 주요 요원들뿐만 아니라 일단 호위총국 내 모든 장병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모두 입당할 수 있는 특혜를 주며, 제대한 이후에도 일반 군부대에서 제대한 이들에 비해 1계급 혹은 2계급 이상의 특혜를 주는 등 사회적으로 우대가 높다. 그 밖에 3호위부와 4호위부는 각각 최고인민회의 및 부위원장 급 간부들, 내각 및 위원장 급 주요간부들의 호위를 담당한다.
또한 김정일과 김정은 시대, 군부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편제된 호위사령부 산하 12개 여단은 북한 특유의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12개 여단은 각 군단 급 군부대를 상시 감시하고 유사시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배치됐으며, 전부 기계화된 장비로 상시 무장한다. 한 예로 유사시를 대비하기 위해 호위사령부 산하의 한 여단은 평양 김일성 광장 연단 밑에 상시 장전된 탱크중대를 배치해 놓고 있다. 이 탱크는 평시에 특수 제작된 장막으로 가려져 있지만, 유사시 그대로 뚫고 나와 발포 할 수 있다.
호위사령부 내 12개 여단 중 2개 여단은 평양 시내에 대대별로 분산 배치돼 있으며, 이외에 8개 여단은 지방의 김정은이 이용하는 초대소들과 특각들을 중심으로 경비와 지역 내 군부대들의 쿠데타 시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분산·배치돼 있다.
김정은 시대들어, 호위부대의 지도자에 대한 호위업무는 더욱 전략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첫째는 10년 전, 선대 김정일이 시작한 평양 지하 요새 건설이 2013년 6월께 완성됐다. 이는 분명 과거 한국전 당시 미 항공기의 공중폭격에 호되게 당한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내부 정보에 따르면, 이미 평양 전역을 촘촘하게 이동할 수 있는 지하공사가 완료됐다고. 이 지하요새를 이용한다면 탱크 및 장갑차가 한 번에 수백 대가 이동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의 통제와 관리는 전적으로 호위사령부의 몫이다.
축포부대의 편제도 유심히 지켜볼 대목이다. 축포 부대는 열병식을 포함한 각종 1호 행사에서 축포를 쏘아 올리는 부대다. 일종의 의장대이며 과거엔 인민무력부 대외협력국 산하였다. 그런데 이 축포부대가 김정은 시대들어 호위사령부 산하로 들어갔다. 내부 정보원에 따르면, 이는 김정은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즉, 축포부대의 한 부대원이 혹여나 축포행사시 공포탄 대신 진탄을 장전해 지도부를 겨눌까 싶어서다.
또 한 가지 최근 목격된 변화는 호위사령부 부대원들의 탄창이 새롭게 교체됐다는 점이다. 과거 부대원들은 백두산 자동권총 두 정과 개당 15발의 탄알이 들어있는 예비탄창 5개를 차고 다녔다. 도합 90발의 탄알을 휴대하고 다녔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 부대원들의 탄창이 60발의 탄알이 든 대형 탄창 3개로 늘어났다. 즉, 호위사령부의 몇 가지 변화를 눈여겨 볼 때, 군 통제와 본인의 신변보호에 김정은이 얼마나 신경을 쓰는 눈치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일반 행사시에는 방탄용으로 특별 제조된 똑 같은 벤츠 리무진 8대를 상용하며, 이는 어느 차에 김정은이 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특히 벤츠 GL63AMG(SUV)를 애용한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필자 이윤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