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은 죽어서도 차별받았다
평화공원에 위치한 평화기념상. 현장에서 본 동상은 평화를 상징한다기 보단 다소 폭력적이고 위엄을 강조한 느낌이었다.
그나마 남겨진 일본 속 한민족의 흔적은 편린뿐이었다.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의 출구 부근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흑백의 새 그림이 전시돼 있었다. 기무라 씨는 “조선인 원폭 피해자들의 참상에 충격을 받고 그려진 그림이다”고 설명했다. ‘까마귀-제14부’라는 이름이 붙은 작품은 일본인 화가 마루키 부부가 1972년 그린 그림으로, 원폭자료관에는 그 일부만 전시돼 있었다.
기무라 씨는 도쿄 마루키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 전체를 담은 사진을 보여주며 “확실치는 않지만 그림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게 일부만 전시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원작에는 까마귀 떼가 치마와 저고리를 얹고 어디론가 날아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가 한수산은 장편소설 <까마귀>를 펴냈다. 전시관의 그림 설명에는 작가인 마루키 부부가 쓴 글이 적혀 있었다.
“한국, 조선인도 일본인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피폭을 입은 참혹한 모습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원폭이 떨어진 뒤 제일 마지막까지 사체가 남은 것은 조선인들이었다. 일본인은 많이 살아남았지만, 조선인은 너무 적어 어쩔 수 없었다. 까마귀는 하늘에서 날아와 조선인의 시체 위에 앉아 눈알을 쪼아 먹었다. 죽은 시체까지도 차별받은 조선인, 죽은 시체마저 차별한 일본인. 함께 피폭을 입은 아시아인. 아름다운 치마저고리가 날아올라 혼이라도 조선과 고향으로 돌아가길.”
모순의 정점은 평화공원에 위치한 ‘평화기념상’이다. 평화공원 한가운데는 거대한 반라의 남성 동상이 세워져 있다. 높이만도 10미터에 달하는 크기로, 현장에서 본 동상은 평화를 상징한다기 보단 다소 폭력적이고 위엄을 강조한 느낌이었다. 우람한 근육질의 팔로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옆으로 뻗어 있다. 쌍꺼풀이 없고 턱이 발달한 전형적 동양인의 모습으로 눈을 감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오른손은 하늘에서 떨어진 원폭의 위험성을, 왼손은 평화를 상징하고, 감은 눈은 희생자에 대한 추모를 상징한다.
동상을 만든 이는 나가사키 출신의 조각가 기타무라 세이보로 전시에 군국주의자들과 군신상을 만들었다. 기타무라 세이보는 평화기념상을 완성하며 “여기 인종을 초월한 인간 / 때로는 부처 때로는 신 / 나가사키가 시작된 이래 최대의 영단과 정열 / 이제 인류 최고의 희망의 상징”이라는 작가의 말을 남겼다. 기무라 씨는 “동상 어디에도 평화의 이미지는 찾을 수가 없다. 작가의 말 역시 너무 애매모호하다”며 평화기념상의 존재에 의문을 표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