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유네스코 등재는 꼼수” 열변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의 사무국장 시바타 도시아키 씨가 회원들을 상대로 일본의 군함도 유네스코 등재 문제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시바타 씨의 부모님은 모두 원폭 피해자로, 인권모임에서 20년째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권모임은 원폭 피해 문제와 재일 조선인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책을 펴냈다. 제7집까지 펴낸 이 책에는 당시 나가사키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원폭·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생생한 구술 증언이 담겨있다.
이날 모임의 주제는 최근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군함도 문제였다. 삼삼오오 모여든 일본인 참가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2시간여에 걸친 시바타 씨의 강연을 들었다. 이날 강연은 한국에서 온 참가자들을 위해 기무라 씨가 통역을 맡았다.
군함도는 태평양전쟁 말기,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로 동원돼 석탄 채굴을 도맡으며 비인간적인 노동에 내몰렸던 현장이다. 1943년 당시 500여 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일했으며, 비좁은 갱도를 파내려가며 작업을 해, 질식과 갱도 붕괴의 위험에 놓여 있었다.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데서 ‘지옥섬’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곳이다. 군함도는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시바타 씨는 군함도를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해 일본이 저지른 ‘꼼수’를 가리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비유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얘기로, 나그네를 집에 초대해 철제 침대에 눕힌 뒤 침대 길이보다 키가 작으면 다리를 잡아 늘리고, 크면 다리를 잘라버려 나그네들을 죽였다는 이야기다. 말도 안 되는 기준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아집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일본은 군함도를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해 군함도 내의 1910년 이전 지어진 부분만 따로 떼어내 미쓰비시 조선소 등 7개 시설과 함께 ‘메이지산업유산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나라와 중국 정부가 군함도의 강제징용 역사를 가리려는 일본의 시도에 대해 반발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위원회는 등재를 반대하는 나라가 있다면 세계유산을 등록하지 않는다. 때문에 가혹한 강제징용이 이뤄졌던 1930년대를 빼버렸다. 이렇다보니 군함도를 상징하는 콘크리트 건물은 단 한 곳도 포함되지 않았다. 가장 처음 지어진 건물이 1917년에 완공됐으니 이는 해당사항이 아니다. 이번에 등재된 세계유산은 1910년 이전에 지어진 일부 방파제와 갱도 입구뿐이다. 시바타 씨는 “1910년으로 한정한 이유는 그해가 한일강제병합이 있던 해기 때문이다. 너무 가식적이다. 이것이야말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아니고 뭐겠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1시간 30분여의 강연이 끝나고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일본인은 “한국말을 배우고 있으니 한국어로 소감을 전하고 싶다”며 “남북분단의 책임은 전범국인 일본에도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잊고 여러 이유를 들어 군사화를 하고, 이런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모임의 회원인 한 일본인 여성은 “오늘 모임에는 인권모임 회원보다 자발적으로 참석한 이들이 많았다. 사실 일본 내에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런 역사 문제까지 한발자국 더 나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수는 적지만 끊임없이 역사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이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