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스타 앙리, 베컴 앞에서 튀려다 ‘자책골’
연예 리포터들도 국민의 한 사람이라, 국위선양 하고 돌아오는 스포츠 스타들을 만나면 흥분하고 좋아하기는 매한가지다. 동종업계(?) 연예인들만 만나다 보니, 오히려 스포츠 스타들을 만나게 되면 마치 일반인이 연예인 만나듯 떨리는 팬의 자세로 행동하게 된다고. 이런 모습은 그들의 첫 질문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2005년 축구선수 최용수의 결혼식 때의 일이다. 현장에 모인 월드컵 스타들을 취재하기 위해 출동한 KBS <연예가중계>의 김생민 리포터는 당시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활약 중이던 박지성을 보고 기쁜 마음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리고선 대뜸 던진 첫 마디가 “반갑습니다~ 혹시 저 아세요?”였다고. 뿐만 아니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김태진 리포터 역시 지난 2007년 피겨여제(이제 피겨여신일지도…) 김연아 선수를 광고촬영 현장에서 만나 인터뷰를 했다. 김태진 리포터 역시 김연아 선수에게 던진 첫 질문은 “대한민국 최고의 피겨스타이신데… 혹시 저를 아시나요?”였다. 황당한 질문에도 김연아 선수는 친절하게 “네. TV에서 봤어요”라고 답을 해줬다. 이말 한마디로 인해 이날 김태진 리포터는 그 어떤 연예계 톱스타를 인터뷰했을 때보다 더 뿌듯해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를 만났다는 기쁜 마음이 때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기도 한다. 프랑스 국가대표인 축구스타 티에리 앙리의 기자회견장에서 있었던 VJ 윌리의 돌발행동이나 최근 내한한 영국 국가대표인 축구스타 베컴에게 패션에 관한 질문을 던진 한 연예 리포터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당시 앙리와 베컴은 우회적으로 불편함을 표시한 바 있는데, 이는 국내 스타들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가진 파주 트레이닝 센터에서 가진 공식 언론 인터뷰. 이영표 선수의 인터뷰 차례에서 불현듯 한 연예 리포터의 돌발질문이 나오자 당황한 이영표는 “어느 신문사에서 나오셨냐?”고 물었다. 그런 뒤 기자가 아닌 연예 리포터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영표는 “(리포터 아닌) 기자들만 질문해 달라”는 말로 해당 연예 리포터에게 면박(?)을 주기도 했다.
이런 몇몇 연예 리포터들의 돌발행동과 이에 대한 스포츠 스타들의 지적을 바라보는 연예 리포터들의 시각은 어떨까. 공중파 연예 정보프로그램의 한 고참급 리포터 A는 “앙리의 기자회견장에서의 사건을 보고 얼굴이 빨개지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도 “국제적인 망신 등의 보도를 접할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그는 “연예 리포터의 취재 방식에서 비롯되는 실수”라며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연예인 인터뷰에선 돌발상황이나 돌발질문에 대한 연예인들의 기민한 대처와 순발력이 시청자들의 호감을 사는데 반해 스포츠 스타들과의 인터뷰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인터뷰어(interviewer·인터뷰하는 사람)가 인터뷰이(interviewee·인터뷰에 응하는 사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데 그런 점에서는 분명 아쉬웠다”며 “개별 인터뷰와 기자회견장에서의 질문은 엄연히 구분해야 한다”는 충고도 덧붙였다. 개별 인터뷰의 경우 인터뷰이가 사전에 허락한 인터뷰이기 때문에 조금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다양한 질문을 던질 수 있지만 기자회견장은 공식적인 자리인 까닭에 연예 리포터라도 질문을 던질 때 신중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 앙리, 베컴 | ||
스포츠 스타들을 만난다고 연예리포터들이 무조건 들뜨는 것은 아니다. 때론 그들의 낯선 모습에 실망하고 등을 돌릴 때도 있다. 김태진 리포터는 야구선수 C와 국제적인 스타 D의 모습에 실망감을 느꼈다고 어렵게 털어놓았다. 몇 년 전 C가 대학교에서 후배들에게 특강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김태진 리포터. 당시 C의 대학 선배인 연예인까지 동행해 취재에 나섰지만 C의 고압적인 태도에 김태진 리포터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고 이야기한다.
사전에 인터뷰 약속이 돼있음에도 불구하고 C는 시종일관 카메라를 가리키며 당장 치우라는 말을 연신 반말조로 얘기했다. 이 모습에 동행한 C의 대학 선배 연예인조차 놀라고 말았다. 결국 이날의 인터뷰는 C의 강력한 보이콧으로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김태진 리포터는 “뉴스 프로그램이 아닌 연예정보 프로그램에 대한 불편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미리 인터뷰 약속을 했음에도 현장에서 그가 보인 태도와 매너는 무척 아쉬웠다”며 당시 정황을 설명한다. 또한 이날 이후 김태진 리포터은 물론이고 동행한 연예인과 제작진 등이 모두 프로야구 경기를 관람할 때 유독 C의 모습을 외면하게 된다는 얘기까지 들려줬다.
국제적인 스포츠스타 D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D의 광팬이었던 탓에 김태진 리포터는 인터뷰와 관계없이 자신의 응원 메시지를 담아 정성껏 운동복을 선물로 준비했다. 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건넨 것도 잠시. D와 그의 매니지먼트관계자는 “협찬을 받고 있는 용품업체가 따로 있다”며 김태진 리포터의 선물을 거절했다.
그런가하면 케이블에서 연예 리포터로 활약하다 현재는 공중파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방송인 E는 국내 스포츠 스타 F와의 인터뷰를 안 좋은 추억으로 손꼽는다. 당시 F는 막 결혼을 발표했기 때문에 방송인 E는 무작정 농구 코트로 찾아갔다. 그렇지만 F와 인터뷰가 사전에 약속된 상황이 아니었던 터라 E는 무작정 그의 뒤를 쫓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경기마저 아쉽게 F의 팀이 패하고 말았다. 이에 격분한 F는 경기가 끝난 직후 E를 불러 자신의 차에 태웠다. 그리곤 혹시 마이크를 몰래 숨겨와 켜고 있는지 확인한 뒤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다시는 눈에 띄지 말라는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F의 욕설과 협박에 E는 담당 PD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E는 이날 받은 충격으로 연예 리포터 생활을 그만두고 휴식기를 가진 뒤 어렵게 방송인으로 변신했다.
마치 견원지간을 보는 듯한 스포츠 스타와 연예 리포터들. 하지만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을 서로 이해하면 좀 더 재미있고 보람찬 일들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주영민 연예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