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은 지난 2003년 11월11일 창당했다. 여야 어떤 당도 갈등이 없는 곳은 없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나 민주노동당처럼 이념 문제에서 확연한 색깔을 가진 정당이 아니라 보수와 진보가 얽혀 있기 때문에 내분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열린우리당 창당 이래 크고 작은 ‘사건’들을 정리해보았다.
- 2004년 4월3일 총선 12일 전 문성근씨의 ‘잡탕당·분당’ 발언으로 정동영 중심의 통합파와 친노세력 간의 첫 번째 노선 투쟁 본격화
- 2004년 4월15일 총선 승리 이후 ‘잡탕당’ 파문 수습, 정동영 의장 체제 당분간 유지
- 2004년 5월 통합파 천정배 신임 원내대표 선출 과정에서 재야파 이해찬 탈락으로 분열 심화
- 2004년 5월 통일부 장관 자리 놓고 정동영- 김근태 양 계파 수장끼리 대결
- 2004년 6월5일 재·보궐 선거 패배, 재야파는 통합파 신기남 의장에게 책임 물어 갈등 격화
- 2004년 6월15일 재야파 김근태 장관, 원가 공개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며 갈등 유발. 이광재 등 친노세력이 재야파 공격하며 세력화 나서
- 2004년 6월 이라크 파병 문제로 보수- 진보 세력 간 이념 대결
- 2004년 8월 신기남 부친 친일 문제로 낙마, 재야파 이부영 의장 체제 들어서면서 통합파 비상대책위 구성 무산으로 갈등
- 2004년 10월 국가보안법 철폐 등 4대입법 처리과정에서 통합파- 재야파 갈등 격화
- 2004년 10월30일 재·보궐 선거 패배로 또 다시 책임론 분출
- 2004년 12월 국보법 변칙 상정 처리 둘러싸고 재야파와 안영근 등 안개모측 갈등
- 2005년 4월2일 전당대회에서 통합파 ‘대리인’ 문희상 의장 체제 출범 과정에서 재야파와 극심한 당권 투쟁
- 2005년 4월3일 재·보궐 선거 패배로 또 다시 실용- 개혁파 간 노선투쟁
- 2005년 5월 재·보궐 선거 패배로 난닝구(실용파)- 빽바지(개혁파) 논쟁 가열
- 2005년 6월 안개모 정장선 안영근 의원 등이 노무현 대통령 극렬 비난한 뒤 노선 투쟁
- 2005년 6월 한국전력 이전 놓고 당정간 고성 오가며 설전
- 2005년 8월 노무현 대통령 연정론에 대해 당 워크숍에서 또 다시 노선 투쟁
- 2005년 11월 ‘10·26 재선거’ 패배 뒤 ‘대통령 오만, 예스맨 더 못해’ 등 당내 갈등 또 다시 본격화. 분당까지 거론하는 사태로 발전
국힘 '탄핵 반대' 당론 유지하되 표결 참석 가닥…이탈표 놓아주나
온라인 기사 ( 2024.12.14 15: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