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동취재단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서울대 철학과 재학시 인연을 맺었던 장택상 전 국무총리를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만 26세로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 기록이다. 하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이 사사오입 개헌을 통한 정권연장을 추진하자 김 전 대통령은 곧바로 탈당해 민주당에 입당했다.
박정희 정권의 엄혹한 유신 시절에도 김 전 대통령은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유명한 말처럼 끝없이 투쟁을 계속했다. 치열하게 군부독재와 맞섰던 김 전 대통령은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지난 1969년 당시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에 치열하게 반대하던 김 전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암적 존재요, 잡으라는 공산당은 안 잡고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정보부가 개헌 음모에 가장 깊이 관련하고 있다. 김형욱 정보부장에게 충고한다. 민족의 영원한 반역자가 되지 않기 위해 무리한 짓 하지 말라”는 발언을 했다.
그 날 저녁 청년 두 명이 귀가하던 김 전 대통령에게 질산을 던지려 했으나 차문이 잠겨 있어 대신 차에다 던졌는데 도색이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을 강한 어조로 비난하고 있었던 터라 정권의 테러로 추측됐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이후 지난 2006년 유세 중 커터칼 테러를 당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병문안 간 김 전 대통령은 “나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초산 테러(질산 테러) 등 테러를 많이 당한 사람이라 이번 일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해 거칠 것이 없는 캐릭터를 다시 한 번 각인시킨 바 있다.
김 전 대통령은 1971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대선후보경선에 참여하여 1차 경선에서 최다득표를 했지만 결선투표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그는 고배의 아픔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남다르게 지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2·12 쿠데타로 등장한 신군부의 강요에 의해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 정치활동이 금지되자 민주산악회를 만들었다. 민주산악회는 민주화추진협의회 창립, 통일민주당 창당으로 이어져 1985년 12대 총선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단일화 협의 불발로 낙선, 연이어 1988년 총선에서도 제2야당으로 주저앉는 시련을 겪자 누구도 예상 못한 초강수를 낸다. 지난 1990년 1월 12일,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 민주정의당 총재인 노태우 대통령,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가 민주자유당을 창당하기로 하는 ‘3당 합당 선언’을 한 것이다.
3당 합당은 김 전 대통령에게 거대 집권여당 당권 장악과 영남이라는 든든한 지역기반을 등에 업게 했지만 배신자라는 이미지도 만들었다. 김 전 대통령이 3당 합당 당시 “구국의 차원에서 통일민주당을 해체합니다. 이의 없습니까? 이의가 없으므로 통과됐음을…”이라고 말하는 순간 갑자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어나 오른손을 번쩍 들며 “이의 있습니다. 반대 토론을 해야 합니다”라고 외쳤다. 마치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하던 과거 젊은 김 전 대통령처럼 노 전 대통령도 탈당을 감행한다.
3당 합당을 기반으로 제14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금융실명제 실시, 하나회 척결, 제5공화국 책임자 처벌,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등을 통해 8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성수대교 붕괴, 대구 가스폭발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다 측근비리까지 터져 나왔고 급기야 외환위기까지 초래하자 문민정부의 지지율은 급강하했다. 그 때문인지 김 전 대통령은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습니다”고 퇴임사에서 밝히기도 했다.
퇴임 이후에도 김 전 대통령은 직설 화법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2012년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한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김 전 지사가 “이번에는 토끼(김문수)가 사자(박근혜)를 잡는 격”이라 하자 김 전 대통령은 “그건 사자도 아니다. 칠푼이”라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김 전 대통령의 자택이 위치한 상도동을 따서 붙여진 상도동계 출신 인사들은 김 전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활발히 활동을 이어갔다. ‘상도동계 막내’를 자처하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포함해 서청원 최고위원 등이 현 새누리당 지도부를 맡고 있다. 상도동계는 아니지만 김 전 대통령이 발탁한 정치인도 많다.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손학규 전 고문, 이인제 의원,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이 그들이다.
김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정치권에서는 애도의 물결이 번지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고 김영삼 대통령은 9선 국회의원이자, 원내총무(원내대표) 5번, 야당대표 3번, 여당 대표를 거친 의회주의자로서 우리 국회에도 늘 새로운 교훈과 통찰력을 안겨주고 있다”며 “대한민국사의 큰 별이자 민주화의 주축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이루 말할 수 없이 비통한 심정이다”고 밝혔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지금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 민주화 운동을 이끄셨던, 또 이 땅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내셨던 김영삼 대통령께서 떠나신 것이 너무나 아쉽다”며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 김영삼 대통령님의 민주주의에 대한 정신, 철학을 우리가 다시 기리고 계승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 후배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더 잘해야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이 ‘정치적 대부’이기도 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저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다. 그래서 조용히 가시는 길을 정성을 다해 모시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이 많이 편찮으셨기 때문에 자주 찾아가 뵙지 못했다며 빈소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나라라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주화를 이끈 큰 지도자였다. 그의 죽음이 산업화, 민주화 시대 이후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할지, 다시 한 번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야 할 과제를 안겨줬다”고 평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