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을 회복하라’삼두마차 채찍질
LG전자가 정도현·조준호·조성진 사장의 3인 각자대표체제로 바뀌었다. 구본준 부회장(아래 사진)은 이사회의장으로 자리를 옮겨 사업 총괄 면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LG그룹은 지난 26일 2016년 임원인사를 실시했다.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과 권영수 LG화학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해 각각 LG디스플레이와 LG유플러스 최고경영자(CEO)로 올라섰다. 사장으로 승진한 사람도 8명이다. 사장단 인사만 놓고 보면 지난해보다 승진자와 계열사 간 이동이 많다.
LG그룹 관계자는 “그동안 단독대표체제에서 사업방향과 투자 등 굵직한 의사결정을 했다면 이제는 사업부문별 제품개발·마케팅 등 각자 분야에서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것”이라며 체제 변경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로써 LG전자는 지난 5년간 이어오던 오너경영을 포기했다. LG전자는 지난 2010년 구본무 회장의 동생 구본준 부회장이 맞으면서 그때까지 유지해오던 전문경영인 체제를 버리고 오너경영을 택했다. LG전자의 위기를 강력한 리더십으로 돌파해보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지난 5년간 구 부회장의 승부수가 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비록 ‘G시리즈’ 등을 선보이며 뒤늦게나마 스마트폰 시장에 합류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실적 개선으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전통 강자였던 TV를 비롯한 가전 부문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태양광 모듈이나 전기차 부품 쪽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한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재계 관계자는 “구 부회장이 LG전자를 위기에서 구해냈다고 평가하기 힘들다”며 “진입에 성공하는가 싶었던 휴대폰 부문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며 이로 인해 LG전자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LG 관계자는 “태양광 모듈 부문과 전기차 부품 부문을 제 궤도에 올려놓는 등 구 부회장 취임 이래 지난 5년간 아쉬움보다 성과가 더 많다”고 강조했다.
LG전자 주가는 현재 주당 5만 원대다. 위기라던 2010년 주당 10만 원 근처에서 오르락내리락하던 주가가 5년 동안 오르기는커녕 오히려 반 토막이 났다. 그나마 4만 원대까지 추락했다가 다소 회복한 가격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유수의 IT업체들의 주가가 2010년과 비교해 상승한 점을 감안하면 구본준 부회장의 지난 5년간 경영 성적표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시장에서는 LG전자와 관련해 이런저런 루머가 끊이지 않고 있다. 매각설이 그 중 대표적이다. LG전자는 지난 7월 구글 피인수설에 시달리더니 최근에는 SK 피인수설로 또 한 번 홍역을 치렀다. LG나 SK나 “전혀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부인했지만 이 같은 소문에 휩싸인다는 것만으로도 LG전자가 시장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으며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증권가에서는 근거 없는 인수-피인수설이 터지면서 관련 주가가 들썩이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LG전자가 혹시 이에 휘둘린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적지 않다. 실제로 LG전자가 구글에 인수된다는 소문이 퍼진 지난 7월 말 LG전자 주가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이 같은 소문이 ‘한탕을 위한 작전’이라기보다 해프닝으로 보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중소형주라면 모를까 시가총액이 10조 원에 달하는 LG전자를 상대로 작전을 벌인다는 것은 무리”라고 잘라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LG전자는 화학과 함께 LG그룹의 중심이자 자존심인데 LG가 전자를 매각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삼성전자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 LG전자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는 것은 그만큼 LG전자의 위상이 추락했다는 방증이다”고 말했다.
LG전자는 또 과거 협력업체 대표를 상대로 사찰·청부고발 등 횡포를 자행했던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비난을 사고 있기도 하다. LG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며 회사와 관련 없는 개인적인 일”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사찰·청부고발 등과 관련된 내부 문건이 발견된 이상 완전히 발뺌하기 힘든 상황이다.
LG전자는 LG그룹의 상징이자 핵심 계열사다. 구본무 회장도 여러 차례 그룹의 중심이 전자와 화학에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지난 2008~2009년 정점을 찍은 LG전자는 2010년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의 대응 실패 여파가 전통 강자였던 가전 부문 쪽으로 번져가는 형국이다.
지난 5년간 실시했던 오너 단독대표체제도 큰 빛을 보지 못했다. 내년부터는 다시 전문경영인 체제로 돌아간다. 또 스마트폰과 가전으로 대표되는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기업에서 태양광 모듈과 전기차 부품 등 B2B(기업과 기업 간 거래) 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체질 변화에 나선 LG전자가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