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친반연대와 차원이 다르다”
‘반기문 대망론’이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반 총장 싱크탱크로 추정되는 정치세력이 마포구에 위치한 한 오피스텔(사진)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모습이 포착됐다. 고성준 인턴기자
친박계가 꾸준히 군불을 때 온 ‘반기문 대망론’의 실체에 대해 그동안 정치권에선 회의적 시선이 적지 않았다. 일단 반 총장 스스로가 단 한 번도 대권과 관련해 입을 열지 않았다. 이는 반 총장이 과연 권력 의지를 갖고 있느냐라는 의구심으로 이어졌다. 대선 레이스에서 후보자의 권력 의지는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힌다.
반 총장 경쟁력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정글과도 같은 정치판에서 버티지 못 할 것이란 얘기였다. 멀게는 고건 전 총리, 가깝게는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사례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여의도에 입성하기 전엔 ‘신드롬’을 일으키던 인사들이었지만 결국은 현실 정치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그러나 반기문 사무총장이 지난 11월 18일 방북을 한다는 중국 <신화통신> 보도가 나오자 정치권은 들썩거렸다. 반 총장 대선 행보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졌던 이유에서다. 반기문 대망론이 빠르게 재점화하는 순간이었다.
윤호석 정치평론가는 “반 총장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반 총장은 정치권 상수가 됐다. 방북을 통해 어떤 성과를 내놓느냐에 따라 반 총장의 향후 입지가 좌우될 수 있다. 사실상 선거 운동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며 “그것도 다른 잠룡들은 엄두도 못 낼 방북 카드 아니냐. 반 총장이 만약 이를 염두에 뒀다면 정치 고수라고 부를 만하다”고 분석했다. 반 총장 방북 여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어찌됐던 정치권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실제로 방북 소식이 알려진 후 반 총장 지지율은 급상승했다. 11월 26일 <머니투데이>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반 총장은 차기 대선 유력주자 중 그 누구와 붙더라도 과반 득표를 기록하며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새누리당은 물론 새정치연합 소속으로 출마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반 총장이 새누리당 후보일 경우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와는 55.0% 대 33.9%, 박원순 서울시장과는 51.0% 대 38.1%로 예측됐다. 반 총장은 새누리당 텃밭인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에서 우세를 보였고, 호남 지역에서는 문 대표를 6%포인트(p)가량 앞서기까지 했다. 반 총장은 야당 지지성향이 강한 20~40대에서도 문 대표 및 박 시장과 대등한 수치를 기록했다.
반 총장은 새정치연합 후보로 출마해 여권 유력주자 김무성 대표와 일대일로 붙을 경우에도 압승을 거뒀다. 반 총장은 55.1% 지지율을 얻었고, 김 대표는 31.7%에 그쳤다. 무려 23.4%p 차이다. 반 총장은 김 대표와의 대결에서 20대 지지율 70%를 기록하는 등 20~40대 젊은 층에서 압도적으로 앞섰다. 또 충청권과 호남지역, 수도권 대부분 지역에서 김 대표를 눌렀다. 야권, 그것도 마땅한 차기 주자감이 없는 비노 진영에서 반 총장 영입론이 확산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반 총장은 대선과 관련해 지금까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대망론 역시 정치권의 자가발전 성격이 짙다. 반 총장을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 포함시키는 것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다. 반 총장이 대선 출마를 안 하면 모두 ‘공염불’일 뿐이다. 그런데 이처럼 방북을 계기로 또 다시 반 총장 행보가 파장을 던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그의 출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게 우세한 관측이다.
새누리당 비박계 중진 의원은 “100% 나온다. 나뿐 아니라 정치권 인사들 거의 그렇게 생각한다. 중도에 낙마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시작은 할 것”이라며 “본인은 싫어도 출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높다. (유엔 사무총장 임기가) 끝나는 대로 본격적인 채비를 갖출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대선이 가까이 오면 흔히들 ‘정치 떴다방’이라고 불리는 단체들이 기승을 부린다. 이들은 대선주자를 활용해 정치적·경제적 이득을 챙기려 한다. 정치 테마주와 연결된 곳도 있다”면서 “반 총장이 지금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현상 아니겠느냐”라고 되물었다.
얼마 전엔 반 총장 이름을 딴 ‘친반연대’가 세간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친반연대는 11월 6일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창당 준비에 한창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반 총장 동생 반기상 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친반연대를 결성한) 사람 자체도 모르고 황당한 얘기다. 자중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게 제 희망”이라고 밝혔다.
반 총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은 당사자 동의 없이 특정인에 대한 지지를 표방하는 정당 명칭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친반연대를 겨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은 “특정인 유명세를 활용한 정당명칭은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전달해 공정한 선거를 해치고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친반연대가 반 총장 의사와는 무관하게 만들어졌을 것이란 판단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일요신문>은 여의도와 가까운 마포구 모처에서 반 총장을 지지하는 인사들이 은밀히 만나는 모습을 포착했다. 이들은 한 사업가 소유의 오피스텔에서 일주일에 2~3회 모여 반 총장의 대선 전략 등을 수립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반 총장 출마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여기엔 반 총장과 가깝게 지냈다는 충청권 인맥을 비롯해 전직 외교관, 정치권 전략가들이 포함돼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점은 박 대통령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친박 원로급 인사도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박과 반 총장 간에 ‘핫라인’이 개통돼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해당 오피스텔의 존재를 잘 알고 있는 반 총장의 한 측근은 “평소엔 비어있는 사무실이다. 상주 인력이 없다. 멤버들이 약속을 정해 사무실로 모여 여러 현안에 대해 견해를 주고받는데 대부분 반 총장 관련”이라면서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어 은밀히 만난다”라고 귀띔했다. 이 모임도 친반연대와 같은 부류가 아니냐고 하자 그는 “우리는 실제로 반 총장과 친분이 있다. 대부분 반 총장과 직통으로 전화할 수 있는 관계”라며 발끈했다. 이어진 그의 말이다.
“당초엔 반 총장 퇴임 후를 대비하기 위한 취지였다. 그런데 대선 후보로 거론되면서 우리가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왔다. ‘반기문 회고록’ 준비도 그 중 하나다. 회고록 발간을 기점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할 수 있다. 만약 (반 총장이) 대선에 출마한다면 지금 오피스텔에 나오고 있는 인사들이 반기문 캠프 주축 인력이 될 것이다. 오피스텔 존재를 반 총장이 대충은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논의한 것들은 여러 번 전달했기 때문이다. 대선에 나오려면 정치기반이 미미한 반 총장으로선 조직과 전략이 필요하다. 설령 출마하지 않더라도 반 총장을 위해 뛸 것이다. 무엇을 하든 반 총장의 싱크탱크가 되겠다는 게 참석자들의 생각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