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에 걸린 ‘미꾸라지’ 건질 생각 있긴 있나
중국에서 붙잡힌 ‘2인자’ 강태용의 국내 송환이 계속 늦어지면서 수사당국의 수사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일고 있다. 작은 사진은 조희팔(왼쪽)과 강태용.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조희팔 사기극에서 중추 역할을 담당했던 조희팔의 오른팔 강태용이 지난 10월 9일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강태용의 은신처인 강소성 우시시의 한 아파트 앞에서 잠복 중이던 중국 공안이 불법 체류 혐의로 강태용을 붙잡은 것. 충남 태안군 안면도 마검포항에서 중국으로 밀항한 조희팔보다 한 달 앞선 2008년 11월에 밀항한 강태용의 7년여 도피 행각이 이로써 막을 내렸다.
외교부가 영사관을 통해 강태용의 체포 소식을 접수한 건 체포 이튿날인 10월 10일이다. 당시 대구지방검찰청은 강태용의 국내 송환 일정을 일주일 이내로 예상하면서 조희팔 사건 재수사가 강태용의 송환 이후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강태용의 송환이 일주일 이내에 이뤄지지 않자 대구지방검찰청은 10월 19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중국 공안과 협의가 아직 진행 중이어서 소환 일정을 현재로서는 특정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 강태용 석방설의 실체는 무엇?
강태용의 국내 송환이 계속 미뤄지면서 최근에는 강태용이 구류 기간 만료 이후 석방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불법 체류 혐의로 우시공안국에 구류된 강태용은 30일 동안의 혐의 조사를 마치고 지난 11월 8일 구류 기간이 만료됐다. 이후 남경공안국으로 이송됐다는 얘기도 있지만 국내 수사당국은 강태용의 구류 만료 이후 행적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밝히고 있지 않다. 중국 출입국관리법상 공안기관은 형사소송법이 아닌 경우 구류 기간을 30일로 정하고 있으며 추가 범죄 혐의가 있을 경우 60일 연장한다. 중국의 형사소송법상 구속기간은 60일이며, 1차 연장 제한일은 30일이다.
중국 우시공안국의 한 공안은 지난 11월 3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우시에는 국제공항이 없어 강태용을 남경공안국으로 이송할 예정”이라면서 “외국인 범죄자의 보호와 보안, 그리고 통제 등의 이유가 이송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국인 제보자 A 씨는 강태용의 남경공안국 이송에 대해 ‘이송을 빙자한 석방 및 도피 공조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강태용은 추가 혐의 없이 불법 체류 혐의만 조사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단순 불법 체류 혐의자의 경우 일반적으로 강제 추방된다. 예외적으로 중국 공안에 현지인이 보증을 한 후 자진 귀국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 강태용은 자진 귀국 신고를 한 뒤 또 다시 도피행각을 벌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구류됐을 당시에도 공안국 특별감찰실의 독방에서 지낸 점을 미뤄 중국 공안에 거액을 제공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중국 공안이 이송 과정에서 강태용이 도피했다는 거짓 정보를 알릴 수도 있다.”
수사당국은 강태용의 석방설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대구지방검찰청 관계자는 “강태용은 구류 만료 후 중국 공안 측의 추가 혐의 조사로 1차 연장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다만 중국 공안으로부터 서신이나 전화 등의 채널로 통보 받거나 직접 확인한 사실은 아니다”고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도 “공식 입장을 밝힐 수는 없으나 최근 강태용의 구류 기간이 연장된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그렇지만 강태용과 같은 불법 체류 혐의자의 경우 연장 없이 강제 추방되는 경우가 일반적이긴 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조희팔 사건의 피해자단체 측은 “수사당국이 조희팔 사건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일관되게 보여 왔고 재판에 넘겨진 조희팔의 최측근들 역시 혐의에 비해 적은 형량을 선고받았다”면서 “강태용이 (중국에서) 이미 석방됐다는 가정을 전혀 배제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최근 <동아일보>는 강태용이 12월 첫째 주에 김해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그렇지만 대구지방검찰청 관계자는 “중국 공안과 강태용의 송환에 대해 조율 중이라 송환 확정일은 미정인 상태”라고 밝혔다. 대검찰청 대변인실 사무관 역시 “중국 공안 측으로부터 강태용이 송환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 적색수배, 실제로 내려졌나?
더욱 눈길을 끄는 의혹은 경찰청이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강태용의 적색수배를 요청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인터폴 회원국 간에는 외교 경로 없이 광범위하고 신속한 공조가 가능하나, 국내 수사당국이 중국 공안에 체포된 강태용의 행적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노출하고 있지 않다. 이를 두고 중국 공안 측의 공조가 없기 때문이라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KBS <시사기획 창> 제작진이 경찰청에 강태용의 적색수배와 관련된 정보공개 요청 공문을 보냈으나 ‘인터폴 수배에 관한 구체적인 수사 내용 및 관련 수사 서류는 공개 대상이 아님을 양지 바랍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더욱 충격적인 부분은 강태용이 이미 지난 8월에도 중국에서 불법 체류 혐의로 체포됐었다는 점이다. 중국 우시시의 한 공안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강태용이 체포됐지만 인터폴 적색수배 명단에 이름이 없어 현지인의 보증으로 풀려났었다고 밝혔다.
왜 경찰청은 ‘인터폴 수배에 관한 구체적인 수사 내용 및 관련 수사 서류는 공개 대상이 아님을 양지 바랍니다’라고 밝혔을까. 이에 대해 인터폴 담당 부서인 경찰청 외사국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공개수배제도에 대한 법령 및 관행 개선 권고’(2010년 6월) 요청에 따라 인터폴 적색수배 명단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경찰청은 인터폴 홈페이지의 적색수배자 명단을 삭제해줄 것을 인터폴에 요청했다고 한다.
경찰청 외사국 관계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수배범의 수배 해제 이후 인터넷 신상정보 노출이 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해 경찰청에 개선 방안을 요청해왔고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면서 “인터폴에 적색수배 명단이 공개되지 않은 이유도 이와 같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인터폴 홈페이지에는 아직도 27명의 한국인 적색수배자 명단이 검색된다. 하지만 조희팔과 강태용의 이름은 검색되지 않았다. 따라서 실제로 적색수배자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인터폴 적색수배는 일반 형법을 위반해 체포 영장이 발부되고 범인 인도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 발행한다. 적색수배 요청 기준 가운데에는 ‘50억 원 이상 경제사범’이 포함돼 있고 강태용은 여기에 해당돼 인터폴 적색수배가 가능한 국제범죄사범이다.
피해자단체 관계자는 “수사당국이 강태용의 인터폴 적색수배와 관련된 정보를 일체 공개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면서 “적색수배를 하지 않았거나 수배 요청을 강태용이 체포된 이후에 했기 때문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구지방경찰청 관계자는 “강태용은 인터폴 적색수배자가 확실하다”면서 “적색수배 확정 일자 및 세부 정보에 대해서는 알려줄 수 없다”고 해명했다.
# 강태용 송환 일정 앞당길 순 없나?
또 한 가지 의혹은 왜 수사당국이 강태용의 송환 일정을 앞당기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이를 위해선 인터폴을 통해 중국 공안에 강제 송환을 요청하는 방법과 외교부와 법무부를 통해 범죄인 인도 청구서를 제출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송환 업무를 담당하는 대검찰청과 대구지방검찰청은 강제 송환 요청 및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강태용이 중국 공안에게 붙잡힌 이후 다단계 업체에서 총괄실장으로 일한 ‘3인자’ 배상혁(강태용 처남)을 비롯해 조희팔 내연녀까지 줄줄이 검거된 상태다. 연합뉴스
경찰청 외사국 관계자는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하면 국내 송환 일정이 더욱 지연될 수도 있다고 판단해 법무부를 통해 중국 공안에 청구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면서 “강태용의 송환 일정은 중국 공안의 혐의 조사가 마치는 대로 이뤄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강제 송환 요청 권한이 있는 대구지방검찰청 측은 “협의 중인 사항이라 강제 송환 요청 여부에 대해 입장을 밝힐 수 없다”면서 “강태용의 송환 업무는 경찰이 아닌 검찰 소관이다. 인터폴 적색수배자 발령 이외에는 강태용의 송환과 관련해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인터폴을 통한 실무상 공조 내용 가운데에는 국외도피사범의 강제송환이 있다. 강제 송환은 국가중앙사무국 운용규칙에 의거해 외교경로 절차 없이 인터폴의 공조로 국제사범을 인도받는 방법이다. 자국 영역에서 외국인을 강제로 퇴거시키는 주권 제한의 성격을 가진 강제송환은 인터폴의 정보공유망 ‘Ⅰ-24/7’을 통해 범죄인 인도 청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기동성을 갖춘 실시간 공조가 이뤄진다.
반면 범죄인 인도 청구는 수사기관, 법무부, 외교통상부 등의 국제법상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장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도주 우려가 있는 국제사범의 경우 범죄인 인도 청구서 제출을 전제로 긴급 인도 구속 청구서를 인터폴에 제출해 국내 송환을 앞당길 수도 있다. 하지만 경찰청 외사국은 긴급 인도 구속 청구 역시 장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해 청구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희팔 사건의 피해자단체 관계자는 “수사당국이 조희팔 사건을 재수사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며 “조희팔 사기에 적게 가담한 인물들만 수사할 것이 아니라 핵심 측근인 강태용부터 하루 빨리 국내로 송환해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덧붙여 “로비리스트 역할을 수행했던 강태용이 국내로 송환되면 조희팔의 생사 여부뿐만 아니라 로비명단이 공개될 것”이라며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이후에야 강태용이 국내 송환 절차가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시혁 기자 evernuri@ilyo.co.kr
잠깐 - 인터폴 적색수배란 190개 회원국이 가입한 인터폴의 수배 유형은 적색, 황색, 청색, 흑색, 녹색, 주황색의 6단계다. 수배 유형 중 가장 높은 단계인 적색수배는 일반 형법을 위반해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범인 인도 목적으로 발행된다. 현재 경찰청 외사국은 우리나라 국적 적색수배자 명단에 대해 수배자 인권 보호 차원에서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인터폴에 수배자 명단 공개 중단을 지난 2010년에 요청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현재 인터폴 홈페이지 ‘Wanted Persons’ 검색창을 통해 우리나라 국적 적색수배자 27명의 명단 확인이 가능하다. 현재 인터폴 홈페이지에 공개된 적색·황색수배자는 1만 8375명이며, 주요국 적색수배자는 미국 970명, 중국 761명, 베트남 183명, 캐나다 119명 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