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한 기아감독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그렇다고 사진기자까지 대기하고 있는 상태에서 취재를 취소하기가 어려워 ‘취중토크’를 강행하기로 했고 김 감독이 ‘붙잡혀’ 있다는 모교 동국대 부근의 한 노래방을 찾아갔다. 야구부 동문들과 어울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열창하는 김 감독한테선 순수와 열정이 물씬 풍겨났다. 덕아웃에서 매섭게 야구장을 응시하던 김 감독과 노래방에서 애교있는 댄서로 변한 모습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지만 후자쪽이 훨씬 ‘민간인’ 김 감독다웠다.
이미 ‘취중’ 상태가 된 상대방과의 인터뷰는 쉽기도 하고 어려운 부분도 있다. 김 감독 옆에 있던 후배가 이 정도로 술에 취한 김 감독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고 말할 만큼 김 감독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래도 모든 질문을 정확히 읽어내고 때론 너무 가려서 대답을 한다는 생각이 들만큼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는 흔적이 역력했다.
김 감독은 올 시즌에 대해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LG와의 플레이오프를 상기시켰더니 물론 한 순간 한 순간을 떠올리면 속쓰리고 가슴 아픈 장면들이 있겠지만 경기가 종료된 동시에 다시 ‘리플레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을 특징짓는 표현 중에 ‘보스 기질이 강하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을 잘 끌어 모으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물불 안가리며 리더로 행동했던 면면들이 김 감독한테 ‘보스’라는 수식어를 달게 해줬던 것 같다. 비록 감독 2년차밖에 되지 않은 ‘준신인’이면서도 선수시절의 ‘과거사’에다 현재의 카리스마가 합해져 김 감독을 보스로 둔갑시켰는지도 모른다.
가까이서 본 김 감독은 무척 소탈했다. 소탈한 성격치고 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처음엔 소주 한 병이 주량의 전부라고 버텼는데 사실 김 감독의 주량은 측정하기가 힘들 정도다. 선수 때는 술도 안마시고 여자 근처엔 가보지도 않았으며 현역에서 은퇴한 후 처음으로 술을 배웠다고 ‘뻥’을 쳤지만 진실을 속일 수는 없었다.
특히 술자리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야구선수를 밤무대 연예인 취급하는 것 같이 쉽게 접근해오면 절대 참지를 못했다. 따라서 뜻하지 않는 장소에서 예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져 구단 관계자들의 애간장을 녹이기도 했다.
“정말 한성질 했어요. 덤비는 사람들은 모두 상대해줬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운동선수에 대한 비하나 경기 결과를 놓고 멋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게 되면 참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쓸데없는 성질은 부리지 않아요. 감독 되고 나서도 그렇게 살면 ‘방 빼라’고 할 걸. 지금은 옆에서 시비 거는 사람이 있어도 웃으면서 넘겨요. 그런데 성질 죽이기가 정말 힘들더라구.”
김 감독답지 않게 맥주를 시켰다. 더 이상 독한 술을 마셨다가는 인터뷰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맥주는 거의 손대지 않았다. 취재원과 어느 정도 비슷한 수준을 맞춰보려는 기자가 거푸 ‘원샷’을 하며 취하기를 기대했지만 ‘폭탄주’에다 ‘소폭’을 섞어 마시고 온 사람과는 ‘근본’이 달랐다.
잠시 후 커피를 주문했다. ‘취중토크’하면서 커피가 등장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 감독은 커피를 마시고 기자는 맥주를 마시는 이상한 형태의 인터뷰는 계속됐다. 김 감독은 삼성 김응용 감독에 대한 질문에 대해선 가급적 말을 아꼈다. 괜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해태시절 감독과 선수 사이로 가족의 계보를 이뤘다가 경쟁 관계의 야구 감독으로 만난 부분에 대해 남다른 느낌이 있을 것 같아 계속 대답을 요구했다.
김응용 감독과는 다른 색깔로 만나는 스승이 있다. 두산의 김인식 감독이다. 김 감독이 해태에서 코치로 활약할 때 맺은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김성한 감독이 감독 초년병 시절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김인식 감독이 알게 모르게 큰 힘이 돼줬다. 아무리 개인적인 친분이 두텁다고 해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과 만난다면 절대로 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란 말로 남다른 승부욕을 과시하는 김 감독이다.
인터뷰를 하다가 갑자기 김 감독이 “나 무섭지 않아요?”하고 물어온다. 기습적인 질문이라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배시시 웃음만 흘리고 있는데 “무섭다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 그런데 운동장에선 몰라도 사석에선 무서운 사람이 못된다”며 ‘감독’이란 타이틀을 뗀 김성한에 대해 설명한다.
“외부에서 보면 거칠고 강하게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아요. 음악 나오면 가볍게 몸을 흔들며 기분도 내고 와이프한테 쩔쩔매는 공처가에다 아이들 앞에서는 기를 못펴는 아주 평범한 성격이거든. 가족들한테 항상 빚지고 사는 기분이라 큰 소리를 칠 수 없는 거예요. 선수들은 아마 상상도 못할 걸.”
김 감독은 지금까지 큰 슬럼프가 없었다고 한다. 선수, 코치, 그리고 감독이 된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며 살아온 야구 인생이었다. 그래서인지 ‘파리 목숨’으로 비유되는 감독 자리에 대해 연연해하지 않는다. 내년 시즌이 끝나면 재계약 여부가 판가름나는데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젊은 감독이라면서 감독 자리를 연장하기 위해 번트 대고 작전에 의지하는 야구는 하지 않을 겁니다. 야구팬들이 좋아하는 야구를 해야지.”
인터뷰가 끝나가자 처음으로 김 감독이 ‘원샷’을 권한다. “자, 한번 잡아 당기시고∼”하는 말 솜씨가 주당계의 프로다웠다. 내년 시즌이 끝난 뒤엔 제대로 한번 ‘맞장’을 떠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