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시간 날아온 에콰도르 수사나, 2년째 출전 베트남 하퀸안 열정 보여…불모지 이란 후리아에 시선집중도
7라운드 스위스리그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대회에서 중국의 리우텐이가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리우텐이는 “같은 고향(후난성) 출신의 뤄시허 9단이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을 보고 감명받아 바둑을 시작했다”며 “아마추어 바둑도 한국 선수들이 강하다고 들었는데 이번에 한국 선수와 만나지 못해 아쉽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 대표로는 지난 8월 루마니아서 열린 제39회 세계청소년대회 시니어부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태헌이 출전했지만, 4라운드에서 일본의 가와구치 쓰바사에게 발목을 잡힌 데 이어 마지막 7라운드에서도 대만의 충첸엔에게 패해 4위에 머물렀다.
이번 대회에는 역대 가장 많은 5명의 여자 선수들이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오스트리아 대표로 출전한 릴리후와 에콰도르의 산체스 수사나, 이란의 란즈바르 후리아, 베트남의 하퀸안, 필리핀의 바시낭 선샤인이 그 주인공들. 태백 현장에서 그녀들의 바둑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스트리아 쌍둥이의 꿈은 프로기사
이번 대회 최연소 참가자 릴리후(7)는 깜찍한 모습으로 대회기간 내내 선수들의 사랑을 받았다. 동행한 체리후와 쌍둥이라는 릴리후의 어머니는 일본 여자 프로기사이자 유럽바둑연맹(EGF)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리팅 씨다. 언니 릴리후는 2단 정도의 기력이고, 동생 체리후는 4급 정도라고 한다.
프로 기사가 목표라는 쌍둥이 자매의 일상을 묻자 평소 오스트리아 바둑클럽에 나가 실전대국을 하고, 대국이 끝나면 엄마에게 복기를 받는 방식으로 훈련하고 있다고 한다. 엄마의 훈육방식이 꽤 엄격한 듯 보였다. 바둑을 지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대기실에 들어왔다가 한쪽 구석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복기를 하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미소를 지었다. 릴리후의 바둑을 지켜본 심판위원장 김성래 6단은 “나이에 비해 기력이 상당한 수준”이라며 놀라워했다.
이번 대회 참가를 위해 비행기로 40시간을 날아왔다는 에콰도르 대표 산체스 수사나(33)는 심리학을 전공한 사회학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대학 시절 바둑을 처음 접했다는 그는 “친구가 쓴 바둑과 신경심리학에 관한 에세이를 보고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인터넷 5단 정도의 기력을 지닌 그는 거의 매일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 있는 바둑클럽에 나가 바둑을 즐긴다고 한다. 현재 에콰도르의 바둑 인구는 50~60명 정도라고 밝힌 그녀는 “이번 대회 출전권이 걸린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해 한국으로 왔다”며 “현재 대학원에서 사회학과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할 예정인데, 이 과정이 끝나면 에콰도르의 젊은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적인 바둑, 이란 여성들에게 어울리는 스포츠
이번 대회 가장 눈길을 모은 선수는 이란 대표 란즈베리 후리아(16)였다. 이란의 전통 복장인 히잡을 쓴 그녀는 바둑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란은 바둑 불모지다. 아직 정확한 바둑 인구도 파악되지 않았고, 세계바둑연맹에도 가입돼 있지 않아 확실한 정보가 없다. 10년 전 아시아바둑연맹(AGF)에서 서대원 당시 회장과 김달수 사무총장이 이란을 방문해 체육부 차관을 면담하고, 이란바둑협회의 체육단체 등록 승인을 요청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 이후 상황은 불분명하다.
란즈베리 후리아는 “육체적 접촉이 빈번한 다른 종목에 비해 정적인 바둑은 이란 여성들에게 잘 어울리는 스포츠”라고 말했다. 수도 테헤란에서 학교 선배들에게 바둑을 배웠다는 그녀의 기력은 10급 정도다. “실력이 부족해 대회 참가는 꿈도 꾸지 못했지만, 바둑을 즐기는 인구가 적어 올해는 참가할 기회가 주어졌다”며 수줍게 웃었다.
베트남의 하퀸안(18)도 지난해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광주에서 열린 대회에서 ‘베트남 최정’으로 화제가 됐던 하퀸안은 올해 5승 2패의 성적으로 8위에 올라 작년보다 더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인접한 라이벌 국가 태국의 카루에하와니트 위치리치(9위)보다 순위가 앞서 기쁨을 더했다. 1년 만에 다시 만난 기자에게 “바둑은 여전히 재미있지만 예전처럼 실력이 잘 늘지 않아 고민”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필리핀의 바시낭 선샤인(30)도 60명의 선수들 중 꼴찌를 각오했지만 56위로 예상 밖의 성과를 거두며 기쁜 얼굴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