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3일 있었던 현대자동차 증정식. 대표팀의 4강 신 화 달성에 현대차측은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에게 약속보 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차량을 선물했다. 임준선 기자 | ||
월드컵 16강 진출 당시 언론들은 대한축구협회가 약속한 16강 1억원(4강 진출시 3억원)의 포상금 외에 정부가 별도로 1억원씩의 포상금을 더 지급하기로 했다고 떠들었고, 대부분 선수들이 이 같은 보도내용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경기 후 선수들이 받은 포상금은 세금을 빼고 난 2억9천만원짜리 수표 한 장씩.
뒤늦게 ‘세금이 이리도 많은가’ 궁금해진 선수들이 협회에 문의한 결과 답변은 엉뚱했다. 지급된 4강 진출 포상금은 협회가 당초 약속한 3억원씩이 전부라는 것. 정부가 지급할 것으로 알려진 나머지 1억원은 계획에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한두푼도 아닌 포상금 1억원 얘기는 어디서 나와서 어디로 들어가버린 것일까.
정부와 축구협회 관계자는 “애당초 1억원의 상금을 추가로 지급하겠다는 내용은 공식 결정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추가 1억원 얘기는 언론에서만 확정적으로 보도했을 뿐, 축구협회나 문화관광부 어디에서도 책임있게 결정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황당한 사건의 진상은 이렇다. 정부 포상금 문제가 처음 언급된 곳은 문화관광부가 월드컵 지원을 위해 발족시킨 ‘필승대책위원회’의 어느날 회의에서다.
정부와 축구협회, 축구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필승대책위원회’는 2000년 말 문화관광부의 주도로 발족한 자문단 성격의 기구. 월드컵을 앞두고 정기적인 회의를 열어 정부 지원이 필요한 중요 사안들을 논의하고 결정해 왔다. 파주 트레이닝센터 건립이나 참가선수들의 병역면제 혜택 등을 결정해 정부에 건의한 것도 바로 이 기구다.
위원회는 발족 직후인 지난해 1월, 대표팀의 16강 진출시 선수 포상문제를 지원방안의 하나로 언급했고 이후 비공식적으로는 1인당 1억원 정도가 적당하다는 대다수 위원들의 공감도 이뤄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최소 23억원에서 30억원까지에 이르는 거금을 지출할 근거가 될 만한 ‘결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관계자를 거치고 언론을 거치면서 우리 대표팀의 16강 진출이 이뤄진 무렵에는 ‘정부지급 포상금’으로 시나브로 굳어져 버린 것. 그러나 아무도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필승대책위원회 참가 위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알아보자.
●정부 포상금 1억 누가 얘기했나?
필승위원회에 참여한 위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 포상금 이야기는 끝까지 ‘논의단계 수준’이었다. 위원 중 한 사람은 “처음 정부쪽 관계자가 16강 진출에 따른 포상금에 대해 이야기했고 위원들도 1억원 정도면 적당하다는 데 대체로 공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포상금이 ‘정부 포상금’이라고 표현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다른 위원들도 ‘포상금’과 ‘1억원’ 얘기가 나온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 포상의 주체가 구체적으로 언급된 적은 없으며 액수 또한 구체적으로 결정한 적은 없었다고 일치된 증언을 했다.
한 위원은 “처음 논의할 당시에도 포상금 문제는 좀 두루뭉수리했다”며 “전체적인 예산에 포함되는지 따로 책정되는지에 대한 논의도 없었다. 아마 거기서 혼선이 온 것 같다”고 전했다. 문광부 실무 관계자는 “회의록이나 언론 배포자료에도 ‘정부 포상금’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정부에서 나간 말이 절대 아니다”며 “포상금 논의가 정부를 중심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 지난 5일 정몽준 회장이 선수단 대표로 나온 황 선홍 선수에게 포상금을 주고 있다.우태윤 기자 | ||
문광부측은 이에 대해 NCND(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문광부 관계자는 “회의 후 모 언론에 ‘정부 포상금 1억 지원 예정’ 혹은 ‘확정’이라고 보도됐다. 그래서 각 언론사들이 문광부에 사실확인을 요구해왔고 우리는 그때마다 ‘결정된 사항도 없고 지급 계획도 없다’고 분명히 확인해 주었다. 그런데도 언론에서는 계속 3억+정부 포상금 1억이라고 보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일보>와 <한겨레>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이 ‘정부 포상금 지원’을 기정사실처럼 보도했다. 책임질 주체가 없는 포상금 계획이, 당사자들의 분명한 부인 속에서도 단지 언론의 대세몰이식 보도에 따라 사실처럼 굳혀진 것이다.
●정정보도 신청 왜 안했나?
그렇다면 ‘정부’ 당사자인 문화관광부는 왜 이 같은 언론의 일방적 보도에도 정정을 요구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만 있었을까. 문광부 관계자는 “이 보도가 나온 것은 우리 팀이 잘 싸워 16강 진출이 이뤄져 국민들도 열광하는 때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굳이 정정보도를 요구해 찬물을 끼얹을 수가 없었다. 시기적으로 그럴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입장이 곤란해 적극적인 방어에 나설 수 없었다는 얘기다.
●선수들은 돈을 받을 수 있을까?
문제는 어떻게 해결돼야 할까. 언론 보도를 통해 기정사실화된 추가 포상금 1억원을 꼭 지급해야 한다면 문광부측은 축구협회가 책임질 일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문광부 관계자는 “대표팀에 대한 포상의 주체는 축구협회”라며 “현 시점에서는 정부측으로선 포상금 지급이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필승대책위원회 위원들의 의견은 책임을 진다면 정부나 축구협회가 져야 되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도 적극적인 의견은 아니다. 상황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선 이 문제의 진상을 책임있게 밝힐 수 있는 당시 필승대책위원회 의장은 이홍석 문화관광부 차관보인데 지난달 체육복표 수탁사업자 선정 관련 의혹사건으로 구속된 상태. 코칭 스태프를 제외한다 하더라도 23명에 대한 포상금 23억원의 재원을 회의기록이나 결정사항 같은 공식 근거 하나 없이 정부가 마련하기란 불가능하다.
축구협회도 정부쪽에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정부가 주도하는 기구에서 언급된 사항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포상금 문제로 축구협회가 거론되는 것조차 이해하기 힘들다. 정부에서 할 일을 왜 우리가 하나”라며 항변했다. 그는 “축구협회는 이미 약속한 돈을 다 지불했고, 이와 별개로 들어온 성금을 더 나누어주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환경은 사회적 변화 때문에도 달라져 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월드컵 폐막에 때맞춰 일어난 서해 교전의 전사자 위로금으로 지급된 돈이 1인당 6천만원이다. 지금 상황에서 미리 약속된 것도 아닌 추가 포상금을 위해 또 다시 추가재원을 마련하는 것도 이치에 어긋난다”고 또다른 문제점을 짚었다.
상금은 아니지만 정부는 이미 젊은 선수들에게는 16강 선물로 병역혜택도 부여했다. 이미 지급된 포상금도 다른 나라의 사례로 볼 때 상당히 높은 수준의 것이라고 축구협 관계자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