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박항서, 정해성, 김현태 코치 | ||
월드컵 이후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과 각종 행사 참여 등으로 분초를 쪼개는 바쁜 일과가 계속되면서 쉬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막상 해단식을 치르고나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미묘한 감상들이 자리하게 된다. 히딩크 감독과 함께한 지난 1년6개월은 그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행간에 들어 있는 다양한 느낌과 감정과 경험들이 세 사람의 축구 인생을 아주 다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표팀에서는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했었다. 말하고 싶어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코칭스태프들의 증언을 토대로 모아본다.
처음엔 외국인 감독 밑에서 무조건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우선 말이 통하지 않다보니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이기가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히딩크 감독이 데려온 코치들과도 벽이 생겼다. 그러나 코칭 스태프에서 불화가 발생하면 선수들이 동요할 수 있다는 생각에 꾹꾹 누르고 참았다.
지난해 체코와의 경기를 마치고 박항서 코치와 히딩크 감독은 곧바로 독일로 건너갔다. 유럽경기를 관전하기 위해서였다. 하루는 외부적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박 코치가 독일의 한 레스토랑에서 히딩크 감독과 저녁식사를 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감독에게 몇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며 운을 뗀 박 코치는 제일 먼저 골프를 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골프에 대한 한국인들의 정서를 설명하며 귀국 후 언론에 골프치는 모습이 노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귀국하자마자 축구협회 미팅을 끝내고 이용수 기술위원장과 박 코치를 대동하고 골프투어에 나섰다. 박코치로선 열이 날 수밖에. 순간적으로 자신의 부탁을 무시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서야 히딩크 감독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누구한테도 간섭받지 않겠다는 고집스런 신념을.
선수들의 선후배 관계가 언론으로부터 집중적인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다. 수직적인 선후배 관계가 청산돼야 그라운드에서 창의적인 플레이가 나올 수 있다는 감독의 지시가 있었지만 사실 고참 선수들 입장에선 그리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젊은 선수들은 능력 위주로 선수를 평가하는 감독 스타일에 쉽게 적응했지만 고참들은 약간의 갈등을 느꼈다.
훈련 들어가면 체력이 한발 앞선 젊은 선수들로부터 태클당하거나 가벼운 부상을 입고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가벼운 말투와 행동들을 보고 느끼면서 무척 속이 상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운동장에서만큼은 모든 걸 오픈하더라도 훈련이 끝난 뒤에는 정도를 벗어나는 언행을 삼가자고 홍명보가 칼을 빼들었다. 그라운드 밖에서만큼은 지킬 것은 지키자는 주의였다.
대표팀에 코치들이 많다보니 국내 코치들의 역할과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박항서 코치는 감독과 선수의 중간 역할을, 정해성 코치는 워밍업과 러닝 전담이었고 김현태 코치는 골키퍼 전담과 선수단의 의상 코디네이터(?)로서의 책임을 부여받았다. 의상 코디네이터란 선수들이 식사나 운동할 때, 또 사복이 허용될 때 등 옷차림에 대해 이틀에 한번씩 통일된 복장을 결정하고 선수들에게 일일이 통보해주는 일이다.
▲ 정해성 코치가 선수들과 함께 뛰고 있다. | ||
지난 2월인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전지훈련중 김 코치는 처음으로 히딩크 감독과 의견 충돌을 일으켰다. 언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히딩크 감독이 그날따라 필드 플레이어가 아닌 골키퍼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셔터를 누르는 사진 기자들을 보고 기분이 상했던 것. 자신한테 쏟아져야할 스포트라이트가 엉뚱한 곳으로 향한 데 대해 김 코치에게 감정적인 지적을 했고 김 코치는 선수들 앞에서 타당치 않은 이유로 무안을 당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내 거취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만큼 감독의 돌발 발언에 황당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곧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 나 또한 좋지 않은 감정을 오래 갖고 싶지 않아 곧 기분을 풀었다. 그 이후로 골키퍼에 관한한 내 의견을 절대적으로 존중해줬다. 뒤끝이 없는 분이라 일하기가 그나마 수월했다.”
3명의 한국인 코치 중 가장 마음 고생이 심했던 사람은 정해성 코치였다.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을 맡을 당시 수석코치로 일했던 사람이 히딩크호에서는 트레이너가 할 일을 맡고보니, 말은 안했지만 심기가 불편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 코치는 한국 축구를 위해 자존심을 잠시 눌러두기로 했다. 음지에서 묵묵히, 그러면서도 열정적으로 뛰어다니기로 한 결심이 좋은 결과로 나타나자 누구보다 정 코치 자신이 감격스러웠다고.
차두리와 몸을 부딪혀 갈비뼈에 금이 간 상태에서도 선수들의 워밍업을 위해 운동장에 뛰쳐나갈 만큼 책임감과 사명감이 컸던 정 코치는 16강 진출이 확정된 날 늦은 밤 숙소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태까지 참고 온 보람이 있네. 16강 못갔더라면 정말 속상해서 울고 싶었을 거야.”
선수들의 병역문제가 해결되기까지도 감동스런 뒷얘기가 있다. 포르투갈전을 마치고 16강 진출의 기쁨에 들뜬 선수들이 라커룸에 들어섰을 때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내려와 격려해주실 거라는 전갈이 왔다. 순간적으로 긴장된 상황이었다.
박선숙 청와대 대변인이 먼저 라커룸에 들러 선수들에게 이런저런 부탁을 하고 있는데 주장 홍명보가 말을 꺼냈다. “대통령께서 내려오시면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는데 말해도 될까요?” 박선숙 대변인이 그렇게 하라고 얘기했고 마침내 대통령이 라커룸에 도착했다.
일일이 선수들과 악수를 나눈 뒤 격려를 하는 와중에 홍명보가 어렵게 용기를 냈다. “대통령께 간절한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면서 한국 축구의 장래를 위해선 선수들의 외국 진출이 활발히 이뤄져야 하는데 병역 문제만 해결해 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은 홍명보의 진심을 받아들였고 즉석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알아보겠다는 답변을 남겼다. 진짜 얼마 되지 않아 23명 선수들 중 군미필자에게는 병역면제혜택을 주겠다는 공식 발표 가 나왔다.
홍명보는 주장이면서도 행동을 몸소 실천하는 모범생이었다. 훈련 초기에 히딩크 감독은 식사시간에 선후배들이 섞어서 앉기를 희망했지만 잘 이뤄지지 않았다. 그때 홍명보가 직접 나서서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러면서도 항상 비주전으로 분류된 김병지와 윤정환 등을 끼고 앉았다. 그들의 어려움을 직접 듣고 해결해주면서 아웃사이더가 아닌 팀 동료로서의 유대감을 유지하려는 작은 노력들이 코치들 입장에선 너무 대견해 보이기만 했다.
한국인 코치 3인방은 국민대축제가 벌어진 7월2일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으로 국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눈앞에서 확인하고는 엄청난 감격에 눈물이 솟구쳤던 것이다. 앞으로 이런 날이 또 찾아올까. 지난 1년6개월간의 경험과 추억들이 앞으로 전개될 한국 축구에 어떤 모습으로 승화될지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