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기자 미래칼럼: 2016.4·13 총선진단⑥ 문재인 노무현 김대중
문재인, 이제 노무현 위패를 내려놓고, 정치 굿판을 떠나라.
노무현의 부산친구가 노무현의 정치 정체성을 말할 실력 없어
노무현 운명 정체성, 역사 앞에 언행일치를 실현한 첫 대통령
호남, 김대중과 노무현을 역사속에서 껴안아, 5년간 추모 끝내
안철수 전국 신당 결행 경우, 45석 탈당, 선거 뒤 제1 야당 전망
김대중·노무현 계승할 실사구시·격물치지 세력 반드시 출현할 터.
예를 들어,
김구는 독립전쟁의 아버지이다.
이승만은 건국의 지도자이다.
박정희는 역사와 국민을 배고픔에서 해방시킨 독재자이다.
김대중은 국난을 이겨내고 평화통일의 터를 닦은 지도자이다. 그렇다면, 노무현은 누구인가?
노무현 서거이후, 5년 동안 문재인은 노무현은 누구라고 말하지 않았다. 노무현 죽음을 덧입고 정치 위패를 안고 있는 문재인이 노무현의 정체성을 말할 수 없었다면, 이는 그의 역사철학의 빈곤을 반증한다. 역사철학이란, 뒤를 잇는 사람의 발걸음은 앞서 걸어간 사람의 발자국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는 현실과 책임의 통찰이다.
내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더라도, 내가 살인하면 아버지는 살인자의 아버지가 된다. 증조 할아버지가 친일분자였더라도, 증손주가 배지를 달면 국회의원의 할아버지가 된다. 뒤를 잇는 사람에 따라 앞서간 사람의 정체성이 진화되거나 퇴행한다.
아예 알기 쉽고 간단명료하게 질문을 만들어 문재인 대표에게 묻는다. 노무현은 사람 사는 세상을 추구했으나 자결한, 사람냄새를 물씬 풍기던 우리들 자화상인가? 아니라면, ‘문재인의 부산친구 노무현’인가?
문재인이 첫 번째라고 답변한다면, 되묻는다. 5년 동안 검증된 문재인은 우리들의 자화상,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져 있다. 어찌된 일인가?
정치인 문재인은 노무현 죽음의 역사성을 해석할 실력이 없음을 드러냈다. 노무현의 죽음은 자살인가, 자결인가에 따라 그 인과관계와 미래적 교훈이 달라진다. 노무현 죽음이 자살이라면, 더 이상 논의할 아무런 문제나 가치가 없다.
그러나 노무현의 죽음이 자결이라면, 반드시 그 속 뜻을 발굴해야 한다. 노무현의 자결은 양면성을 지닌다. 그 죽음의 함수는 깨끗함과 더러움, 선과 악, 삶과 죽음이 공진하는 세상을 깨달은 데 있다. 노무현은 3김정치의 막내이고자 했으나, 새로운 정치는 커녕 과거완료형으로 매듭지어진 현실을 깨달았다.
국민과 역사 앞에 오롯이 성공한 지도자로 섰다고 생각한 순간, 최소한 혁명의 절반은 실패했음을 알고 좌절했다. 이명박 정권이 들춰 낸 가족과 친인척, 측근인사들의 비리는 그를 지켜준 도덕적 자존감과 양심적인 혁명동력을 빼앗아 버렸다.
국민과 역사 앞에서 발가벗겨진, 노무현정치가 절대 선에 이르지는 못해도, 악은 아니었다는 평가의 명분과 최소한의 기준이 무너졌다. 노무현은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는 혼합된 세상을 깨닫고 난 뒤, 모든 것 묻어두자고 이명박 정권에게 선언했다. 인간이 목숨을 던지는 행위는 인간의 언어를 초월한, 신을 향한 메시지이다. 그 유서에서 죽음도 삶의 한 요소이고, 미움을 갖지 말라고 적시한 이유이리라.
숨은 메시지를 열람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간 노무현의 자결은 인간이자 권력자로서 자신이 넘어서지 못한 실패와 한계를 인정했다. 3김의 낡은 정치청산은 혁명이 아니라 역사적 진보로 이뤄진다는 점, 노무현 스스로가 친인척과 주변의 비리라는 구태정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 등이다.
3김 정치의 끝물이라고 선언할 때 만 해도 자신만만했다. 안희정·염동연 구속은 3김정치 구악의 굴레를 벗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박지원, 임동원 구속, 정몽헌 회장, 남상국 사장 등의 죽음은 김대중 정권의 폐단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여겼다. 무엇보다도, 열린우리당 창당이 3김 정치를 청산이라고 힘주어 주장했다.
그러나 노무현 노선의 독선과 한계를 자인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2007년 10월 노무현은 뒤늦게 김대중의 남북전략과 정책기조로 환원했다. 노무현과 김정일 간 남북정상회담의 메신저는 김대중의 후예 정동영 통일부장관이었다. 노무현 집권 동안 2004년 4월 총선을 제외한 모든 선거에서 패배했다. 열린우리당은 해체되었고 민주통합신당이 창당되었다.
퇴임 뒤,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은 유일한 정치적 자산인 도덕성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이명박 정권은 친인척과 측근인사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옭아죄었고, 그 물증들이 드러나 속속 구속 수감된다.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대검에 출두하는 수모를 겪고 만다. 3김정치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노무현 자신의 처지를 확인했다.
인척과 측근비리의 수사 공개는 죽느냐 사느냐의 양단간의 선택의 길로 내몰았다. 노무현 자신이 내걸었던 “사람 사는 세상, 상식이 통하는 사회,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은 홀로 광야에서 외친 과거완료형으로 끝난 현실을 확인했다.
이제 노무현은 삶이냐 죽음이냐는 양단간의 선택지에 설 수 밖에 없다. 노무현이 정계에 발을 들이면서 목숨을 걸고 구현하려 했던 정치혁명 과정이 절반쯤 실패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공적은 간데없고 절반의 실패만이 도드라졌다. 노무현 정치의 근본적 오류는 어디에 있었는가?
첫째, 청산대상으로 취급했던 김대중 정치는 비판적 계승의 역사과정이었다. 임기전반부, 모조리 뒤엎고 잘라내었으나, 뒤에 김대중 노선으로 환원될 수밖에 없었다. 대북한 전략과 정책기조가 그 대표적이다.
둘째, 호남은 노무현 현실 정치의 지지기반이었다. 일시적으로 김대중 호남정당을 뒤엎는 데는 성공했으나, 임기가 끝나면서 잘못된 노선으로 드러났다. 노무현 지지가 곧 3김정치 청산이라는 구호는 일시적인 호응만 얻었다. 영남권으로 정치적 지지기반의 확장은 이루지 못했다. 영호남 지역갈등이란 지역적 현상이 아니라 역사적 딜레마임을 깨달았음직하다.
셋째, 노무현은 김대중을 연결하고, 자신을 이을 새로운 정치세력과 동력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통찰했다. 그리고 노무현 최후의 선택지는 삶이 아닌 죽음이었다. 노무현으로써는 실패한 절반을 극복하려는 목적성과 지향성이자, 새로운 사회생명체적 동력의 부활을 위한 승부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명박 정권의 법정에 나서는 나약함과 비굴함을 거부하고, 죽음 앞에 목숨을 내어 놓음으로써, 정치인 노무현이 행한 절반의 실패를 솔직하게 죽음으로 인정하고, 판결했다. 이제 노무현 죽음의 의미가 도출된다.
요한 갈퉁의 구조적 폭력을 인용할 필요도 없다. 노무현은 죽음으로써 자신의 과오와 절반의 실패를 인정했다. 노무현은 솔직하고 간명하게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시간들을 매듭지었다.
독재자 박정희가 키운 정치괴물 전두환·노태우도 국비를 소모해가며 연장하는 것이 생명이다. 생명은 그 만큼 소중하고, 죄인들에게 죽음은 마주치기가 무섭기 때문이다.
자신 주변의 과오와 절반의 실패를 인정한 깨끗하고, 간결한 행위로써 목숨을 던진 자기 판결. 더 이상 보복과 대결, 반목과 복수로 역사를 천박하게 진행하지 말라고 보여줬다. 우리 정치사에서 적어도 노무현 만은, 자신에게 책임을 진 언행일치의 지도자이다.
노무현의 운명정체성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언행일치를 이룬 대통령이다.
그의 죽음이 남긴 이 숨겨진 유훈을 발굴하여 긍정적 에너지로 승화· 동력화 시키는 것은 오롯이 남은 자들, 산자들의 몫이다. 그의 몸이 산산히 부서지고 나자, 국민들은 ‘흠결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며 애도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국화꽃 500만 송이를 심었다. 그러나 꽃의 향기는 대지의 긍정적 에너지로 열매 맺지 못한 채, 썩고 말았다. 그 후예들은 5년 동안 노무현 장례식, 문상정치 만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웠다.
일요신문 DB
그러나 2015년 현재 대법원 판결까지 완결된 한명숙 전 총리는 사법부의 재심사까지 요구하겠다며 사법부를 넘어서며 집착한다. 문재인의 이런 태도는 자신의 한계와 결함 앞에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져 역사와 권력구조를 경각시킨, 노무현 정신과 부합되는가? 문재인 개인의 입장과 노선을 노무현 얼굴로 덧 씌워 가는 행동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얘기다.
2015년 말 새정련 분당사태에서, 문재인은 ‘실패한 노무현’의 정치적 발걸음을 답습한다. 첫째, 지지기반 호남의 고유한 권력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문재인은 당사에 사진은 걸어 놨으나 김대중의 역사철학과 경제비전의 역동적인 상관성을 계승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김대중은 IMF환란위기 극복은 정적인 박정희 경제분신인 박태준 세력을, 극복이후에는 박정희 정권에서 경륜을 닦은 진념을 세웠다. 실사구시와 실용의 인사의 전형이다.
역사적 과정과 맥락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을 연결시키면 손학규, 정동영, 천정배, 안철수는 모두 적이 아닌 정치적 자산들이다. 더욱이 지금 문재인을 따르는 인사들은 친노인지, 친문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는다.
문재인의 세 번째 실패는 판단의 오류이다. 안철수의 정체성은 근본적으로 강철수가 될 수 없는 간철수로서 문재인과 친노의 밥으로 묘사하며, 조롱했다. 철수가 철수한다고 해도 동반탈당은 고작해야 10여명 안팎에 불과할 것으로 착각했다. 입에 담을 가치조차 없는 소영웅주의와 공상에 사로잡힌 학자연하는 자들의 감언이설과 곡학아세에 현혹된 결과다. 그런가?
예언컨대, 안철수가 탈당하면, 4.5차례에 걸쳐 최저선 45명 안팎이 탈당하여 분당된다. 안철수의 힘은 그가 탈당하여 신당세력을 구축하면, 이미 호남신당이 아닌 전국정당이 된다는 데 그 상징성이 있다. 4·13총선에서 호남민심을 획득하지 못하면, 서울수도권 새정련 세력은 선거를 치룰 수 없을 정도로 그 기반이 무너진다. 안철수는 이미 호남의 마음을 읽고, 돌이킬 수 없는 강철수를 선언했다.
새정련 소속 의원들의 속내는 다급하고 타들어 간다. 기호 2번으로 선거전을 시작하지만, 득표결과는 3등이라는 데 있다. 호남은 물론, 호남출신 인사가 당 하부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서울 수도권 새정련 후보자는 지구당의 와해는 물론, 당선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새누리당 압승 속에 제 2당은 안철수 신당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새정련은 2위 싸움에서 패배하는 것은 물론, 친노를 모자라서 친문 정당으로 쪼그라드는 것은 시간문제다. 서울수도권 현역의원들의 행동이 현저히 위축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구당 대부분의 주요 당직자들이 호남출신이다. 이들에게서 나오는 무언의 압력은 오금을 저리게 한다. 지난 10월 서울 동대문을 지역의 지구당원들이 현역의원을 배제하고, 버스 수십대에 나눠 타고 등산길에 올라, 산악회를 독자적으로 조직한 사례가 그 것이다.
호남세력을 제외하고, 서울 수도권에서 선거를 치룰 수 있는 친노가 어디 있겠는가? 호남을 제외하면 여당 후보와 전선자체가 형성되지 않고, 2위권을 안철수 신당에 내주고, 3위권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시 핵심적 본질로 돌아가자. 문재인에게 노무현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적어도 친노라면, 노무현 자결의 참 뜻, 과오와 성공, 좌절과 희망을 스스로 구명해야 한다. 그가 남긴 메시지의 참 뜻은 아프더라도 겸허히 수용하고, 새로운 철학과 동력을 발굴하여 재출발해야 한다.
문재인 정치의 어두운 역설은 노무현 죽음을 문재인과 일부 친노세력의 것, 나아가 친문으로 환원시킨 데 있다. 노무현의 자결은 이 땅의 모든 민주주의 세력의 아픔이자 고통이다. 문재인은 통괄적인 역사성 속에 숨겨진 노무현의 유훈은 보지 못했다.
이런 맥락에서 문재인은 정치적 외눈박이다. 노무현의 정치 정체성은 문재인의 고향 부산 친구, 한 사람으로 환유될 수 없다. 5년 뒤 시간은 말해줬다. 노무현의 운명정체성은 절반의 실패를 인정하고 자결로서 언행일치를 결행한 최초의 국가 지도자이다.
노무현 정치기반은 김대중과 호남과 민주세력, 더하기 알파로서 노무현 지지자임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노무현이 정치적 모태인 김대중과 호남과 민주세력은 지나간 10년(노무현 5년, 문재인 5년)을 말없이 껴안아 줬다.
그리고 호남은 5년간에 걸친 노무현 한(恨)의 애도기간을 끝냈다. 지난 2015년 4월 재보선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무소속 천정배를 살려줌으로써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알고 보면 호남에게는 문재인도 정치적 자산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문재인 만 모르는듯 하다.
호남에게, 노무현의 정치 정체성은 김대중의 정치적 계승자, 호남의 정신적 아들, 민주세력이 열매 맺은 그 무엇, 목숨을 바쳐 말을 행동으로 일치시킨 양심있는 지도자였다. 호남의 노무현에 대한 마음은 문재인보다 훨씬 호흡이 길고, 한이 깊고, 차원이 다르다.
그러나 문재인 품안에 있는 노무현 위패는 호남에게 문재인의 부산 친구 노무현일 뿐, 호남과 아무런 상관성이 없다. 호남이 간직한 양심 실천인 대통령 노무현의 위패는 광주 망월동 묘역에도, 경남 진해 고향 땅 묘역에도 현재진행형으로 살아 숨 쉰다.
문재인은 자신 만이 절대선이라고 강변한다. ‘실패한 노무현’의 재판이다. 그 강변 앞에 새로운 정치는 있을 수 없다. 천정배, 정동영, 손학규, 안철수, 이종걸, 주승용, 박주선이 모두 김대중과 노무현의 역사적·정치적 자산이다. 김대중·노무현이 문재인을 반대하면 모두 절대 악이고, 반역사적이라고 단죄할 수도 없고 단죄 되지도 않는다. 결정권은 국민과 지역 유권자들에게 있을 뿐이다.
문재인 대표는 자신의 손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분명 한 몸이거늘, 손바닥과 손 등은 정반대여서 죽어 흙이 될 때까지 만나지 못한다. 어느 한 쪽만 손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외눈박이가 되고 만다.
오늘의 이해관계는 보지만 역사를 보지 못하면 현실주의적 외눈박이요,
통괄적 역사의 과정은 보지만 오늘을 보지 못하면 이상주의적 외눈박이다.
노무현 자결의 숨은 메시지는 주변의 모든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 결집시켜 포옹하고, 스스로를 엄정히 판결하고, 자신의 미래를 언행일치가 된 사람으로 결행했다. 박정희나 김대중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담대한 결단이다.
문재인은 어떤 자격과 역량으로 친노를 일부 친노로, 나아가 친문 세력으로 축소·기형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누가 문재인에게 노무현의 옷을 덧 입으라고 자격을 부여했는가? 노무현이 죽음으로 경고한 ‘실패한 노무현’은 곱씹지 않고, 장례식의 국화꽃 500만송이 만을 팔아먹는 정치 장사꾼으로 비춰질 수 있다.
세월호 정국, 심야 식당 길거리에서 사회적 약자인 대리운전자를 쥐 잡듯이 멸시하던,
그 국회의원 배지의 야멸찬 권력은 노무현인가? 그런가?
의원회관에 카드 단말기를 비치하고 책장사를 해 댄 배지는 노무현인가? 그런가?
자식들 로스쿨 학점을 따주려고 직위를 이용한 배지는 노무현인가? 그런가?
일일이 열거하기도 민망스럽다. 이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친노를 외치면서, 장벽을 치고 노무현 위패를 독점한,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이 지적한, 악마들이다.
이 비유가 옳다면, 그 대표명사는 바로 문재인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 역사에서 대통령 비서실장 경력 뿐인 사람이 하루아침에 제 1야당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는가? 김대중·노무현을 덧입고, 안철수 지지도를 덧셈하지 않았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문재인이 이제 안철수에게 이 집은 내 집이니 나갈 테면 나가라고 한다. 국민적인 의구심이 생긴다. 문재인 가슴에서 노무현 위패를 내려 놓으면 무엇이 남는가? 노무현 비서실장을 하던, 노무현 부산 친구 문재인이라는 이름표 하나가 남을 뿐이다. 분당되고 나면 국민적 신뢰를 잃은 문재인이 어떤 지역구에 출마할 수 있겠는가?
문재인은 이제 운명적인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겸허하게 노무현의 정치적 위패를 내려 놓고, 진보와 야권 대열, 정치권에서 사라져야 한다. 새벽 길 한 방울 풀잎 이슬마저도 자신이 사라질 때를 안다. 내려놓고 비우고 떠나야만 노무현 정신이 되살아 새롭게 구현된다.
비우고 떠날 때 만, 침묵하는 참된 노무현의 사람들과 공동체가 돌아올 수 있다. 사람냄새 나는 사람들, 노무현 실패를 인정한, 순박하고 겸손한, 노무현의 친구들이 돌아온다. 배가 좀 고프고, 몸이 피곤해도 노무현과 함께 사람 사는 세상을 외치던 순결한 눈동자들.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뒤 여한 없이 사라진 채, 그리고 입을 다물어 버린 다수의 마음들. 문재인과 세칭 자임 친노가 아무리 노무현의 얼굴을 먹칠하여도, 노무현의 진정성 만은 자신 심장의 박동에서 지우지 않은 가슴들이 있어, 돌아온다.
하늘은 반드시 예비한다. 김구와 김대중과 노무현으로 계승되는 역사와 시대정신, 그 지지기반인 호남의 역사성은 말없이 가꾸며 지켜간다. 하늘이 예비하고 준비된, 실사구시와 격물치지의 숨겨진 김대중·노무현 후계들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권력이란 인간의 선거공학이나, 의지대로 구현되지 않는다. 문재인은 내려놓고, 비우고 돌아보지 말고 떠나야 한다. 그래야만, 김대중·노무현의 숨은 진정한 후예들이 차분히 스크럼을 준비한다. 시간은 조금 더디게 올 뿐 이다. 선택과 행동은 스스로의 몫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말해준다.
박요한 선임기자/정치학박사 yohanletter@ ilyo.co.kr.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니라.”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한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성경, 마 5:4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