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메르스 아닌 나라가 죽였다”
김 씨는 감기증상으로 삼성서울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메르스에 감염됐다. 오른쪽 원 안은 김 씨 가족 모습이다. 박은숙 기자
“병원에 있는 동안 ‘메르스로 인해 중국인 관광객이 오지 않는다’ ‘경제가 죽어간다’라는 보도를 봤다. 정체모를 죄책감을 느꼈다. 내 남편이 나라를 망친 걸까. 단 한 명을 격리하기 위해 환자도 받지 못하고 전체 병동을 폐쇄해야만 했던 병원에 미안해야 하는 걸까. 아직도 그 답은 찾지 못했다.”
김 씨의 아내 배 아무개 씨(36)의 말이다. 지난 17일, 기자와 만난 배 씨는 차분했다. 그리고 담담히 그와 남편이 겪은 일을 떠올렸다.
지난 2014년 4월, 김 씨는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받았고 같은 해 11월 말 자가조혈모세포이식(골수이식)에 성공했다. 관해(암세포가 보이지 않음) 판정을 받았다. 정기적인 추적 관찰을 이어나가고, 이후 5년 동안 재발하지 않으면 완치 판정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악몽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됐다. 지난 2015년 5월 27일 김 씨가 감기증상으로 삼성서울병원 외래 진료를 받으러 가면서부터다. 당시 병원은 “이식 환자들에게 발견되는 비정형성 폐렴일 수 있다. 증세가 나쁜 건 아니지만 입원해서 지켜보자”고 말했다. 하지만 입원실 자리가 없어 응급실 의자에 앉아 3일을 기다렸다.
같은 기간, 그 장소엔 ‘메르스 슈퍼전파자’인 14번 환자가 머무르고 있었다. 14번 환자는 첫 메르스 환자인 1번 환자와 같은 시기 평택성모병원의 같은 병동 다른 병실에 입원한 환자다. 당시 보건 당국은 지침에 적힌 ‘2m, 1시간’ 이라는 기준에 따라 1번 환자와 같은 병실을 쓴 환자만 격리했다. 그 결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던 14번 환자는 단일 감염원 가운데 가장 많은 확진자를 발생시켰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김 씨였다. 김 씨는 지난 6월 6일 격리되고 다음 날인 7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김 씨에게 찾아온 것은 메르스만이 아니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머문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 하지만 당시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은 김 씨에게 “림프종 재발이 의심되지만, 당장 치료가 필요한 상태는 아니다. 일단 메르스부터 잡자”고 전했다고 한다. 이후 김 씨가 자리를 옮겨간 음압병실이 있는 서울대병원의 의료진도 같은 판단을 했다.
여기에 지난 6월 중순 이후 보호자 면회마저 금지됐다. 홀로 음압병실에서 림프종,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김 씨의 상태는 점점 나빠져만 갔다.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림프종 재발이 확실하다고 판단했고, 지난 7월 17일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다만 메르스에 감염됐으니 그동안 김 씨가 쓰지 않았던, 면역력을 떨어뜨리지 않는 항암제를 쓴다고 했다.
심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항암치료는 중단됐고 용량을 줄여서야 재개했다. 약이 잘 듣는 듯했지만, 또 연기됐다. 이번엔 상태가 호전되는 것 같으니 메르스부터 잡자는 이유였다. 이후 이 상황은 반복됐다. 항암치료를 하다 호전되면 메르스 치료를 위해 중단했고, 다시 증세가 악화되면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여기에 음압병실에서 격리된 채 받는 치료는 일반 암환자에 비해 제약이 있었다. 김 씨의 아내 배 씨는 “일반 암환자가 받는 기본적인 검사인 CT 등 검사실로 이동해야하는 검사는 받지 못했다. 격리된 상태에서 받을 수 있는 검사만 받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또 다른 곳에서 커졌다. 지난 8월부터 김 씨의 메르스 PCR 검사(가래 등 환자의 검체에서 극소량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증식시키는 방법) 결과가 음성과 양성을 오가기 시작한 것.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이 메르스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위해 단상으로 향하는 모습. 그는 차관급으로 격상이 유력하다.
아내 배 씨에 따르면 질본 관계자는 지난 11월 20일 가족과의 면담에서 “당시 질본과 서울대가 동시에 PCR 검사를 했다. ‘연속해서 2번이 서울대, NIH(질본 국립보건연구원)가 똑같이 나올 때 해제한다’는 기준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적용됐을 8월 4일판 질병관리본부 메르스 지침을 보면, 이 관계자가 말한 ‘병원과 질본 검사 동시충족’ 기준은 없었다. 당시 다른 메르스 감염자들은 앞서의 지침이 규정한 ‘24시간 간격으로 2회 음성기준’을 병원과 질본 중 ‘한 쪽’에서만 충족하면 입원해제 됐다.
결국 지난 8월 24일 김 씨의 가족이 나서 “격리해제 기준을 정해달라”고 강력히 항의하자 서울대 병원과 질본은 김 씨에 대해 다른 환자와 같은 24시간 간격 2회 음성 기준을 적용한다. 그리고 지난 9월 30일과 10월 1일 서울대 병원과 질본 두 곳에서 각각 음성 2회 결과가 나왔고, 질본은 10월 1일 김 씨의 격리를 해제했다. 사실상 김 씨는 더 이상 메르스 전염력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앞으로도 김 씨는 음성·양성이 반복해 나올 수 있으니 PCR 검사는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였다.
김 씨는 집으로 돌아와 4세 아들과 함께 밥을 먹는 등 자유롭게 생활했다. 그런데 퇴원 8일 뒤인 지난 10월 11일, 김 씨가 림프종 증세로 움직이기도 어려울 만큼 위중한 상태가 됐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삼성서울병원으로 향했고, 이 병원 응급실을 거쳐 서울대병원 음압병실에 다시 격리됐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삼성서울병원에선 메르스 PCR 검사를 다시 진행했다.
지난 10월 12일 서울대병원과 질본의 PCR 검사 결과 양성 판정이 나왔다. 하지만 같은 날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브리핑에서 김 씨에 대해 “메르스 전염력이 거의 0%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환자 체내에 살아있는 바이러스가 증식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유전자 조각이 발견된 것이며 검사수치가 양성·음성 경계 값에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 씨에게서 양성반응이 유발된 정체에 대해 당시 의료진과 질본 브리핑을 통해 밝힌 것은 쉽게 말해 ‘죽은 바이러스 조각’이다. 살아있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죽은 바이러스가 남긴 유전자 조각 때문에 유전자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는 얘기다. 유전자는 생물체나 바이러스가 죽더라도 그 물질이 남아있으면 검사에서 반응이 나타난다.
실제로 이후 김 씨는 양성과 음성 결과를 반복해 보이게 된다. 하지만 종전과 달리 음성이 2~3일씩 연속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질본은 김 씨의 격리를 해제하지 않았다. 감염력은 매우 낮지만 그렇다고 ‘제로’는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작은 확률 속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보수적 접근이었다. 여기에 지침에는 양성 결과가 나온 환자를 격리하는 내용은 있었지만, 음성·양성을 반복하는 환자에 대한 지침은 없었던 것도 격리 해제가 되지 않은 또 다른 이유 중 하나였다.
림프종 증세는 계속 악화됐다. 김 씨 가족은 질본과 서울대 병원 사이에서 격리 해제 기준을 다시 마련해달라고 이리저리 호소하는 상황이 됐다. 서울대병원에 격리해제 기준을 논의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묻자, 지난 10월 21일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아내 배 씨에게 질본 담당자 전화번호를 줬다.
그날 이후로 담당자에게 전화와 문자 등을 수없이 남겼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가족과 지인에게도 부탁했지만 그들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19일, 처음으로 가족에게 이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김 씨) 지인 여러분이 하도 연락 하셔서 하루 이틀 메시지 차단을 해놨다. 이후 연락 주신 분들이 환자분 가족 분인지 잘 몰랐다”고 설명했다. 반면 질본은 앞서 발표한 보도자료와 브리핑 등에서 “가족 등에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고 밝혔다.
물론 격리해제를 판단하는 주체는 보건 당국이다. 하지만 김 씨의 아내 배 씨는 “질본은 책임을 떠넘기기만 했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20일, 질본은 가족의 면담 자리에서 “제로라는 말씀은 질본의 다른 전문가들이 못한다. 제로라고 하셨으면 벌써 격리 조치 해제했다. 사실 이 분(김 씨)에 대해서 일단 어느 정도까지 계속 음성이 명확하게 몇 번 나와야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배 씨는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100% 책임지지 않는 한 격리해제는 없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면담에서 질본 관계자는 환자 탓을 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11일) 서울대병원으로 바로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 부분이 참 아쉽다. 서울대병원은 진료하시던 분들이라 이 상황을 아는데, 삼성병원에선 PCR 검사를 하니 보건 당국 입장에서는 방역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병원현장에서 메르스 PCR 검사가 일단 진행된 이상, 정해진 절차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3달 동안 PCR 결과가 오락가락했던 김 씨의 상태를 알았던 질본이었다.
질본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면담이 끝나고, 결국 골수이식 결정이 나왔다. 하지만 이미 림프종 증세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돼 있었다. 병원은 지난 11월 24일 남편이 더 이상 가망이 없다며 연명치료를 중단할 것을 권했다. 고통스러운 치료를 계속하느니 편안하게 마지막을 보내주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지난 11월 25일 오전 3시 6분, 남편 김 씨는 세상을 떠났다. 배 씨는 “남편은 그 날까지도 내 손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그만큼 살고 싶은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이날도 질본은 배 씨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배 씨는 보건 당국의 애도를 보도자료로 접했다.
김 씨 아버지가 죽은 아들에 보내는 메시지. 아내 배 씨가 죽은 남편에 보내는 메시지. 4살 아들은 아직 아빠의 죽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김 씨를 끝으로 메르스는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정부는 오는 23일 메르스 종식 선언을 할 예정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지원했고,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은 차관급으로 격상이 유력하다. 피해 병원 등에는 1800억 원대의 보상금이 지급된다. 메르스 사망자에 대해선 장례비 외의 별도의 대책은 현재까지 없다.
최근 배 씨는 아들의 심리치료를 고민하고 있다. “가족 전체를 뒤덮은 우울한 분위기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 같다. 지난 반 년 동안 아빠와 엄마 없이 지냈고, 아들 이름만 나오면 눈물짓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며 자연스럽게…”라며 눈물을 지었다.
질병관리본부를 상대로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역시 아들을 위해서다. 그는 “아들이 나중에 크면 다 알게 될 텐데, 그 때 아들이 물어볼 때 ‘아빠 덕분에, 그리고 아빠 대신에, 엄마가 세상에 알려서 이 나라가 조금은 변했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