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만 빼고 야권 다 모여라”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20대 총선이 ‘일여다야’ 구도로 재편되자, 천정배 신당은 ‘호남+알파’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11월 18일 열린 개혁적 국민정당 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한 천정배 의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정동영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올해 1월 새정치연합을 탈당하며 독자적 신당 창당 승부수를 던졌지만, 인물 영입에 실패하면서 4·29 관악을 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새로운 정치세력의 태동은커녕 분열의 낙인만 찍힌 채 그는 정치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나 와신상담을 하고 있다.
천정배 신당도 사정은 비슷했다. 인물난에 시달리던 천정배 신당은 지난 11월 11일 느닷없이 새정치연합과의 통합 논의 논란에 휘말렸다. 새정치연합 주류 측 인사는 “당에서 천 의원과 몇 차례 접촉했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복당 형태는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 통합 선거대책위원회 합류를 명분으로 통합 신당을 띄울 시나리오를 공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천 의원이 창당 선언 당시 새정치연합을 향해 “너나 잘하세요”라고 일갈했던 상황과는 판이했다. 논란이 일자 천 의원은 즉각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천 의원은 일주일 뒤인 11월 18일 전윤철 전 감사원장과 윤덕홍 전 부총리가 추진위원으로 참여하는 ‘창당추진위원회’ 출범식을 열었다. 대변인에는 한때 새정치연합 86(80년대 생·60년대 학번)그룹과 함께했던 장진영 변호사를 영입했다. 장 변호사는 지난여름 천 의원 측 인사로부터 대변인직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수개월간 난색을 표하며 합류를 고사했다.
그러자 천 의원이 직접 나섰다. 장진영 변호사는 끝내 수락했다. 천정배-장진영 연결고리는 신당의 수도권 선거전략. 천 의원 측은 당시 ‘수도권 연대-호남 독자’를 골자로 하는 청사진으로 장 변호사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 야권분열은 필패인 만큼 야권연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20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을을 양보지역으로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장 변호사는 지난해 7·30 재보선 당시 서울 동작을 지역에 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김한길·안철수 체제는 ‘기동민 전략공천’ 카드를 낙점했다. 지역 터줏대감인 허동준 전 지역위원장은 당 대표실을 점거하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당 내부는 쑥대밭이 됐다. 전략공천을 받았던 기동민 후보를 비롯해 장진영 변호사와 강희용 새정치연합 대변인 등이 모두 출마를 접었다. 이후 장 변호사는 86그룹과 공조를 하면서 20대 총선 동작을 출마를 타진했다. 86그룹 한 관계자는 “천 의원 측이 장 변호사에게 (동작을 공천을) 약속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14일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10단지 경로당을 방문한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선 연대 대상이 바뀐 것이다. 수도권과 중도·무당파, 2040세대 등 스윙보터(Swing Voter·특정 정당이 아닌 이슈나 정책에 의해 이동하는 계층)에 높은 지지를 받은 안 의원의 탈당으로 수도권 독자노선 카드를 전면에 내걸고 정면 돌파할 수 있게 됐다.
20대 총선 막판 새정치연합과 야권연대를 논의하더라도 안 의원과 단일대오만 형성한다면, 지분 확보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천정배 신당은 △기존의 수도권 독자노선 △천·안 연대나 통합으로 양보지역 확보 등의 다양한 카드로 문재인 체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여론조사도 천정배 신당의 수도권 점령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4~15일 이틀간 전국 19세 이상 성인 1050명을 대상으로 차기 총선 정당 지지도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0%)를 한 결과, 안철수 신당은 서울과 호남에서 20%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전체 결과는 새누리당(37.6%), 새정치연합(25.2%), 안철수 신당(16.7%), 정의당(5.9%), 천정배 신당(1.9%) 순이었다.
서울에선 새누리당이 32.5%로 가장 높은 가운데, 새정치연합(23.5%)과 안철수 신당(23.0%)이 박빙 구도를 보였다. 정의당은 7.4%, 천정배 신당은 0.2%였다. 천정배·안철수 단일대오의 시너지효과에 따라 새정치연합이 뒤로 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여기에 정의당까지 ‘비 새정치연합’ 연대에 가세한다면, 천정배 신당은 천군만마를 얻게 된다.
경기·인천에선 ‘새누리당(35.5%), 새정치연합(28.3%), 안철수 신당(15.7%), 정의당 (7.2%), 천정배 신당(0.2%)으로 조사됐다. 호남에선 새정치연합(32.1%), 안철수 신당(22.2%), 새누리당(20.2%), 천정배 신당(8.0%), 정의당(7.1%) 순이었다. 호남 역시 천정배·안철수 단일대오나 정의당의 비 새정치연합 전선 형성에 따라 판이 뒤바뀔 수도 있다.
변수는 안 의원 행보와 새정치연합 비주류 그룹의 탈당 규모다. 일단 안 의원은 독자신당 창당에 방점을 찍었다. 이태규 정책네트워크 ‘내일’ 부소장을 비롯해 박인복 새정치연합 전략홍보본부 부본부장, 박왕규 ‘더불어 사는 행복한 관악’ 이사장, 김경록 경희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홍석빈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정용해 전 전국공무원노조 대변인, 김지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왕주현 전 민주당 교육부장 등 10여 명은 이미 ‘신당창당준비모임’을 가동했다. 안 의원 측 관계자는 “지난 대선 때와 이후 미완성에 그친 신당 창당 작업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17일 새정치연합 비주류 3인방 문병호 유성엽 황주홍 의원에 이어 20일 김동철 의원이 탈당을 선언했다. 탈당그룹이 20∼30명에 육박할 경우 김한길 새정치연합 전 공동대표와 박영선 의원, 김부겸 전 의원,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김성식 전 의원,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을 아우르는 중도신당 창당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천정배 신당과 ‘당 대 당 통합’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탈당그룹이 10명 이내에 그친다면, 안철수 신당과 천정배 박주선 박준영 신당 그룹은 자칫 컨벤션효과를 상실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각자도생할 수도, 고육지책으로 비 새정치연대 작업에 나설 수도 있다. 감동 없는 연대·통합에 그친다면, 역대 선거 때마다 한쪽에 몰표를 주는 이른바 ‘전략적 선택’을 한 호남 민심이 신당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결국 ‘안철수의 선택’에 천정배 신당의 운명이 달린 셈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