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무릎 수술 후 처음으로 그라운드를 밟아 봤어요. 솔직히 그라운드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에요. 모처럼 접한 그라운드는 정말 색다른 감흥을 던져 주더군요.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은 ‘이제 공을 찰 수 있는 거냐?’며 관심있게 물어왔고 히딩크 감독도 ‘몸이 좋아졌냐’며 안부를 물었는데 글쎄, 내 상태가 이래서인지 그들의 관심이 마냥 고맙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입단 후 제대로 뛰지도 못한 선수를 잊지 않고 챙겨주는 부분은 더할 나위 없이 감동을 주지만 한국에서처럼 ‘정’을 느낄 수 없는 문화로 인해 여전히 난 고군분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이)영표형의 이적 소식을 전해 들으며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만약 내가 임대로 왔다가 지금의 상황에 처했더라면 앞이 안보일 정도의 암흑시대가 됐을 거라는…. 이적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임대용 재활 선수의 입장은 상상만으로도 참담한 기분이 들 정도니까요. 늦었지만 영표형의 이적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어요. 엄격한 기준과 잣대가 적용되는 무대에서 영표형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자랑스러워요. 내가 못한 부분을 120% 발휘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참, 내일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CF를 찍는 날이에요. 한국에도 보도된 것 같은데 모 보험회사에서 히딩크 감독과 날 주인공으로 CF를 만들기로 했고 내일 아침 6시부터 촬영에 들어가요. 컨셉트는 재활중인 나를 히딩크 감독이 따뜻한 격려와 용기를 전하며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내용이에요.
원래 사진 찍는 걸 싫어하는 내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게 엄청 부담스럽네요. 벌써부터 긴장되는 걸 보면 창피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겠어요. 모델료가 궁금하시다고요? 모델로는 나서지만 돈은 한푼도 못받는답니다.
구단에서 챙기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유는 입단 계약할 때 초상권과 관련해서 첫 광고만큼은 구단에서 관여한다는 내용이 있었나봐요. 우리 에이전트와 구단과의 약속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혹시 알아요? 그 광고가 잘되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광고 모델을 해달라고 섭외해 올지.
재활훈련중인 선수 입장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된 일이겠죠. 말은 이렇게 해도 만약 본격적으로 공을 차게 된다면 아무리 좋은 CF라도 당분간은 어려울 거예요. 나한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죠.
수술할 당시가 ‘신생아’였다면 지금은 ‘유치원생’ 정도라고나 할까?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고 아프지 않는 그날을 손꼽으며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4월23일 에인트호벤에서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