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엘류 감독 | ||
“지는 것도 등급이 있다. 오늘 경기는 대표팀이 아니라 마치 대학팀 경기를 보는 듯했다.”
“도대체 감독의 색깔이 무엇인지, 감독이 의도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8일 우루과이와의 A매치가 끝난 뒤 믹스트 존에서 만난 대표팀 관계자들은 기자들 앞에서 경기 내용과 결과에 대해 분통을 터트렸다.
김진국 기술위원장이 라커룸으로 걸어들어오는 쿠엘류 감독한테 “도대체 차두리를 끝까지 기용하는 이유가 뭐냐”며 거칠게 항의하려다 주위의 만류로 무산됐다는 말도 나돌았다.
경기를 마치고 나온 선수들은 마치 무슨 큰 죄라도 지은 듯 고개를 푹 숙이고 기자들의 질문을 피해갔다. 경기중 허벅지 부상을 당한 최용수는 손사래를 치며 질문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이을용은 “질 만했으니까 졌다”고만 말하고선 버스에 올라탔다.
“한·일전에 비해 정신적인 응집력이 부족했다”는 설기현의 멘트 외엔 경기에 대한 솔직한 소감을 들을 수가 없었다. 뒤따라 나온 코칭스태프도 ‘할 말’ 없기는 마찬가지.
9일 새벽 1시께, 경기를 마치고 파주로 돌아간 코칭스태프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우루과이전에 임한 대표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코칭스태프 내부에서 일고 있는 쿠엘류 감독에 대한 ‘회의론’의 실체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경기 내용이 너무나 형편없었기 때문인지 그들의 멘트는 예상을 뛰어넘는 강한 비판들이 주를 이뤘다.
이번에도 역시 차두리는 대표팀의 ‘뉴스메이커’였다. 히딩크 감독 시절부터 쿠엘류 감독에 이르기까지 감독의 신임과 팬들의 비난을 받는 과정이 너무나 비슷하다. 즉 감독은 스피드와 돌파력이 뛰어난 차두리를 믿고 기용하지만 그 결과는 감독의 무능력과 선수에 대한 엄청난 비판으로 이어진다.
쿠엘류 감독은 한·일전에서 보여준 차두리의 플레이를 보고 실망했음에도 차두리를 다시 우루과이전에 선발 출장시켰다.
한 코치는 “차두리와 설기현을 고집하는 건 외국 감독의 특징이다. 이천수가 아무리 미꾸라지처럼 뛰어다녀도 감독 입장에선 차두리를 능가할 만한 선수로 보이지 않을 것”이라며 쿠엘류 감독의 ‘두리 사랑’을 설명했다.
▲ 우루과이전에서 미숙한 골 결정력을 보여 불명예스런 논 란의 중심에 선 ‘폭주기관차’ 차두리.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실제로 쿠엘류 감독은 우루과이전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일전과 변동이 없는 베스트 멤버 구성에 대해 “한·일전은 승리한 경기였다. 이긴 선수들을 베스트 멤버로 기용하는 건 당연하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한 코치의 설명에 따르면 한·일전 때와 우루과이전을 앞뒀을 때의 훈련 프로그램이 거의 똑같았다고 한다.
“일본에 갔을 때 훈련장 한가운데가 깊게 파여 있는 바람에 양쪽 사이드에서만 할 수 있는 훈련을 했다. 그런데 파주에서도 계속 사이드에서만 훈련하더라. 이번엔 대표팀 소집 이후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훈련을 했다. 그러나 훈련의 높낮이가 없고 거의 매일 50% 이상도 되지 않는 훈련량으로 인해 선수들이 실전에서 무척 힘들어했다.”
대표팀 관계자에 따르면 다른 시합에 비해 훈련기간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인 훈련을 하지 못했고 이영표의 결혼과 송종국의 피로, 박지성의 허벅지 부상 등으로 인해 대표팀 전체가 어수선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특히 월드컵 멤버들이 대거 합류하면서 국내파 선수들은 해외파의 ‘들러리’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인지 일찌감치 훈련을 포기하는 듯한 행동을 보여줘 코칭스태프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한 코치는 쿠엘류 감독한테 미팅 때마다 대표팀 운영이나 선수 선발과 관련해서 여러 의견을 제시하고 주장을 피력했지만 번번이 무시 당하고 얼굴 붉히는 모습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감독의 권한에 대한 도전이 아니다. 한국 코치들이 왜 있는지 쿠엘류 감독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코치들의 의견이 수용되지 않는 상황에선 더 이상 이야기하기가 싫어진다.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수 선발에 관해서도 쿠엘류 감독은 ‘신성불가침 영역’처럼 코치들의 접근을 엄격 차단한다고 한다. 물론 미팅 시간엔 여러 가지 의견을 듣고 메모까지 하지만 경기 전날 미팅할 때 다시 모이면 감독이 이미 선수 구성을 마친 상태에서 코치들에게 통보하는 형식이 되다 보니 코치들 입장에선 사기와 의욕 저하만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우린 감독과 한 배를 탔기 때문에 앞으로도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 밖에서 보기엔 코치들이 직무유기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겠지만 우리도 답답할 따름이다.”
대표팀 한 코치의 자조섞인 이야기엔 분명 중요한 ‘뭔가’가 담겨 있었다. 그 실체가 무엇이 될지는 일단 아르헨티나전에 쿠엘류 감독이 어떤 밑그림으로 임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르헨티나전까지 비슷한 프로그램과 전술로 대표팀을 이끌어 나간다면 이후 가족을 만나러 포르투갈로 떠나는 쿠엘류 감독의 휴가가 결코 ‘달콤한’ 시간만은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