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벽두 야권빅뱅 시작됐다
범야권 지지층 결집의 승부처인 ‘인재영입’ 경쟁에 불이 붙었다. 당의 원심력에 직격탄을 맞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더민주) 대표도, 제2의 안풍을 노리는 안철수 무소속 의원도 물러설 수 없는 게임이다. 이른바 진검승부의 장이 펼쳐진 셈이다. 신년 벽두, 더민주 비주류 좌장인 김한길 의원이 탈당을 선언하며 사실상 안철수 신당행에 몸을 실었다. 안 의원을 포함 9번째 현역 의원 탈당이다. 이에 문 대표는 ‘표창원 카드’에 이어 벤처기업인 김병관 웹젠 이사회 의장을 영입하며 맞불을 놨다. 정당정치가 약한 한국 정치에서 인물 구도의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1992년 ‘무균질’ 박찬종을 시작으로,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현상’까지, 제3후보론을 뒷받침한 것도 비교우위에 선 인물구도와 무관치 않다.
새해벽두부터 야권 분열이 속도를 내고 있다. 3일 비주류 좌장 김한길 의원이 탈당을 선언해 사실상 안철수 신당에 몸을 실었다.
특히 정당이 이념과 가치가 아닌 영·호남 지역구도에 의한 이합집산의 산물일 경우 인물은 이미지 정치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각 정당의 이념과 정책은 특정 인물의 영입 통해 드러난다. 인재영입 경쟁으로 프레임 선점은 물론, 선거 변수인 세대별 투표나 이슈파이팅 등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명암은 있는 법. 본격적인 검증 무대의 판이 깔린다면,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인재영입 FA’의 거품 논란도 이 지점과 맞닿아있다.
문·안(문재인·안철수) 인재영입 전쟁의 신호탄은 문 대표가 쐈다. 호남 의원들의 탈당 러시로 제1야당 원심력이 극에 달했던 지난 12월 중순, 문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기다려봐라. 조만간 깜짝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도 “생각지도 못한 인사일 것”이라며 “당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 대표 측은 이 인사의 실명에 대해선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 연합뉴스
여의도 정가의 이목은 급속히 문 대표에게 쏠렸다. 앞서 12월 4일 문 대표가 당의 인재영입위원장을 직접 맡기로 한 터라, ‘1호 인사’는 곧 문 대표의 실력과 직결됐다. 당 안팎에선 문 대표가 ‘타이밍 정치’를 통해 국면전환을 꾀할 것이란 얘기도 심심치 않게 돌았다. 이윽고 총성 없는 전쟁을 알린 ‘12월 27일 대전’의 막이 올랐다. 문 대표와 안 의원은 서로 시간차 공격을 하면서 범야권 주도권 경쟁을 시작했다.
안 의원이 27일 오전 11시 신당 기조 발표를 예고하더니, 문 대표는 11시 20분 ‘표창원 카드’를 전격 공개하면서 맞불을 놨다. 안 의원이 ‘공정경제’로 노선 경쟁에 불을 댕기자, 문 대표가 인물구도로 범야권 선점효과를 노린 것이다. 안 의원은 1월 10일 창당준비위원회 발족을 예고하면서 힘 빼기를 시도했다.
이들의 시간차 공격은 신년 초부터 불붙었다. 김한길 의원이 지난 3일 오전 11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패권에 굴종하지 않으면 척결대상으로 찍히는 정치는 변해야 한다”며 탈당을 공식 선언하자, 더민주는 2시간 뒤인 후 1시 30분 국회 당 대표실에서 김병관 의장의 입당식을 했다. 탈당 키맨인 김 의원이 신년 초 일단 독자 탈당에 물꼬를 틈에 따라 야권 분당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될 전망이다. 다만 안 의원 탈당 2주일간 새로운 인물 없이 구민주계만 탈당한 데다, 동교동계의 대규모 탈당도 예고돼 있어 ‘새정치’의 빛이 퇴색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신당 내부에서는 ‘묻지마식’ 영입은 곧 공멸이란 인식 아래 문호개방은 확대하되, 공천 기준은 높이는 이른바 새정치와 세력화의 균형점 모색에 돌입하기로 했다. 이에 문 대표 측은 야권 원심력이 증폭될 때마다 새로운 인재영입을 통해 안철수 신당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위기 돌파용이다.”
야권의 한 전략가는 문 대표의 ‘표창원 카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은 제18대 대선을 하루 앞둔 2012년 12월 16일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직을 벗어던졌다. 연일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를 촉구하며 범야권의 신인물로 떠오를 때다. 선명성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된다. 당의 원심력이 커지자, 2040세대에 인지도가 높은 표 원장을 앞세워 당의 원심력을 약화하려는 ‘다목적 포석’의 의미도 있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표창원 카드는 안철수 의원이 합리적 개혁 노선을 전면에 표방한 상황에서 차별화를 꾀하는 한편, 집토끼 결집으로 민주개혁진보 진영을 끌어당겨서 야권의 구심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겠느냐. 향후 정의당과의 통합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야권연대 대상인 정의당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표 원장은 더민주뿐 아니라 정의당에서도 공을 들인 인사였다. 정의당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대선 직후 심상정 대표 등 다수 관계자가 꾸준히 표 원장 영입을 위한 물밑 작업을 개시했다. 하지만 비례대표 순번 문제로 영입 협상이 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진성당원제인 정의당의 특성상 당원 투표 없이 비례대표 번호를 약속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표 원장도 더민주 입당 과정에서 “정치를 함께하자며 연락하고 제안했던 안철수 김한길 전 대표, 천정배 의원, 정의당, 박준영 전 전남지사 등 여러 선배 정치인께 무례하게 거절한 점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진보진영 관계자는 “표 원장이 안 해도 될 말을 했다”고 꼬집었다. 안 의원도 표창원 영입 제안 여부에 대해 “대선 직후 독자 신당을 만들 때”라고 평가 절하했다. 표창원 카드가 향후 총선 승리를 위해 필수적인 야권연대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더민주 비주류 관계자는 “표창원 카드가 궁극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표 원장의 ‘입’이 돌출 변수로 작용할 경우 당의 악재로 전락한다는 점이다. 경기 용인 출마설이 나돈 표 원장은 오세훈 대항마 가능성이 제기되자, “박 대통령하고 붙으라고 해도 붙겠다”며 과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의 공세가 역풍을 맞은 일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왼쪽부터 이철희 소장, 조순 전 부총리, 장하성 교수.
다른 하나는 총선 승부의 ‘종착지’인 중도층 공략에 적합한 인물인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더민주 비주류 관계자는 “통합과 혁신을 요구했더니, 진보층 인사를 영입했다. 진보 지지층 강화가 통합과 혁신에 대한 답인지, 문 대표가 입을 열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문 대표는 2040세대와 진보층에 인지도가 높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을 총선기획단장으로 하는 ‘인물 플랜B’는 물론,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등의 영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호남특위 위원장으로는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와 한승헌 변호사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한편에서 문 대표 측은 중도층 공략을 천명하면서 조순 전 경제부총리,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 장하성 고려대 교수,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등에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경제인 영입으로 중도외연을 확장, 수권정당화를 꾀하려는 전략이다. 진보층 복원 전략과 중도층 외연 확장 전략의 상층으로, 시너지효과가 미비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중 다수는 안 의원 측의 영입 대상자와 겹친다. 안 의원 측 문병호 무소속 의원도 “경제인사가 영입대상 1순위”라고 밝혔다. 양측이 차별화를 꾀하면서도 인물 영입은 겹치는, 모순을 자초한 셈이다. 문 대표가 지난 대선 때 안철수 캠프 핵심 브레인이었던 ‘장하성 영입’에 공을 들이자, 안 의원 측은 “정치 도의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지난 12월 30일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고 김근태 전 의장 4주기 추도미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어색한 표정으로 마주 앉은 모습. 최준필 기자
특히 문 대표 측은 안철수 캠프 출신인 ‘광주 인사’ 이상갑 변호사도 삼고초려 중이다. 안 의원 측은 지난 대선에서 활동한 김성식 박선숙 전 의원을 시작으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 등을 한데 묶는 작업을 아이디어 차원에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돌려막기 인사’인 셈이다.
권은희 무소속 의원의 합류가 유력한 천정배 무소속 의원 측은 영입전에서 한 발 뒤처졌다. 현재 홍보위원장 영입 등 외부인사 영입을 놓고 내부 갈등이 만만치 않다는 후문이다.
정치권에선 문민정부 이후 인재영입에 성공한 케이스로 △1996년 총선 직전 신한국당과 새정치국민회의 영입 대전 △2012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등을 꼽는다. 1996년 당시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는 김한길 신기남 정동영 천정배 추미애 등을 영입했다. 그러자 신한국당은 이회창 박찬종으로 맞불을 놓았다. 2012년 대선 땐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김종인 이상돈 및 20대 이준석을 비대위원으로 임명하면서 혁신 경쟁의 주도권을 선점했다.
문 대표와 안 의원 모두 2040세대 끌어안기에 나섰지만, 이념과 노선 구분 없는 과열된 인재영입으로 컨벤션효과를 볼지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묻지마식 FA 영입전으로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줄 수도 있다. 문·안의 과열된 영입전이 과연 누구를 웃게 할 것인지 새해 벽두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