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동선수로서는 치명적인 당뇨를 앓으면서도 꿋꿋한 의지를 불태워온 심성보가‘내우외환’ 에 시달리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지난 8일 LG로부터 ‘웨이버 공시’된 좌타자 심성보(31)는 10일 기자와 만나 구단으로부터 버림받은 ‘진짜 이유’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았다. 즉 지난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김 감독이 해임되면서 평소 ‘김 감독 아들’이라고 불렸던 심성보의 운명도 함께 ‘아웃’되는 걸로 정해져 있었다는 것.
심성보는 오랫동안 당뇨병으로 고생하면서도 야구 생활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 강한 애착과 미련을 갖고 있었다. 야구에 대한 애정도 컸지만 야구를 그만뒀을 경우 경제적인 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운동 생활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웨이버 공시가 발표된 이후 2, 3개 팀에서 그에게 연락이 왔는데 첫 마디가 “몸은 괜찮냐”는 질문이었다고 한다. “당뇨병을 앓고 난 이후 지금 몸 상태가 최고로 좋다”고 말한 심성보는 2군 생활 중 코치와의 불화, 불우한 가정환경, 이혼, 그리고 사기를 당해 월급이 차압되는 등 형용키 어려운 고단한 삶의 무게에 대해 하나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심성보는 여전히 방출된 가장 큰 이유를 김성근 감독과의 인연을 구단에서 인정하기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쌍방울 시절부터 사제간의 정을 키우며 믿고 따랐던 김 감독이 팀을 떠난 이후 심성보는 제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지난 동계훈련 때 몸이 안좋다는 코칭스태프의 판단에 따라 제외되는 설움도 맛보았다. 또 개막 1주일 만에 2군으로 내려가는 수모도 겪었다.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난 게으름을 피우는 선수가 아니다. 이런 몸으로 운동하는 사람이 어떻게 게으를 수가 있나. 다만 혈당 수치가 떨어져 힘이 빠질 때 훈련 속도를 조절했다. 당뇨로 기운이 빠진다는 걸 너무 잘 아는 코칭스태프가 게으름 피운다고 몰아붙이는 게 정말 섭섭했다.”
2군으로 내려가서도 그는 게임에 나가지 못했다. 역시 몸이 안됐다는 이유로 벤치만 지키고 있어야 했다. 돌파구를 찾다가 생각해낸 것이 투수로의 전향. 천안북일고 시절 투수로 활약했고 대학 때도 마운드를 지킨 경험이 있어 조금만 노력하면 가능성이 있다는 자신감도 한몫했다.
당뇨병을 앓고 난 후 러닝이나 웨이트트레이닝을 모르고 살던 사람이 투수로 전업하기 위해 재활군으로 내려가 다른 투수들과 똑같은 훈련량을 소화해냈다. 2주 동안 웨이트트레이닝과 가벼운 캐치볼만 하며 몸을 만들고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2군으로 올라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등판을 했다.
“피칭 연습이 전혀 안된 상태였다. 캐치볼만 던지다가 갑자기 피칭을 하려니까 제대로 될 리가 만무했다. 5점을 주고 내려왔는데 김용수 코치가 바로 부르더라.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너 힘들지. 다시 재활로 내려가라’였다. 투수 출신의 코치가 피칭 연습을 못한 선수한테 등판을 강행시킨 이유가 진짜 뭔지 모르겠다.”
그후 심성보는 재활과 2군을 오락가락했고 투수인지 타자인지 구분이 안가는 훈련을 해야 했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엔 김 코치와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포기하고 팀을 나와 있다가 방출 통보를 받게 된 것이다.
“어차피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이렇게 그만두는 건 정말 억울하다. 구단 입장에선 선수 한 명 자른다고 티도 안나겠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나도 죽고 우리 가족도 죽는 것이다.”
심성보는 올 시즌 매달 5백만원 정도의 월급을 지급 받았다. 그 중 3백만원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카드회사로 넘어갔다고 한다.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1억여원 정도의 빚을 졌고 월급이 차압 당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나머지 2백만원의 돈에서 시골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다섯 살 난 아들의 양육비를 보내주고 나면 생활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는 것.
“지갑에 만원짜리 한 장 없어 밥을 굶은 적도 있었다. 기름 넣을 돈이 부족해 차를 두고 지하철로 다니기도 했다. 월셋방도 구할 형편이 안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잠을 자고 있는 처지다.”
심성보는 99년 한창 당뇨로 고생할 때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아내와 이혼을 했다. 아들을 내줄 수 없다는 아버지의 강한 반대로 부모님이 양육을 맡았는데 젖먹이 아이를 안고 눈물을 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자신의 잘못으로 아내와 헤어졌다는 자책감도 그를 심하게 흔들었다.
사회 경험도 없고, 모아 놓은 돈 한푼 없이, 오직 야구만 알고 살아온 심성보는 정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넋두리다. 당뇨 환자가 야구까지 못하게 되면 폐인이나 마찬가지라며 씁쓸하게 웃는 모습에서 절망감이 배어났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매달리고 있는 돌파구는 바로 야구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