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희섭(시카고C)캐리커처=장영석 기자 | ||
연패의 늪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던 서재응(뉴욕)이 8월 중순부터 다시 승수를 챙기기 시작하는 것은 물론 이 즈음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가 최근 메이저리그로 다시 올라온 ‘쾌남아’ 최희섭(시카고)과 봉중근(애틀랜타) 등도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러냈다.
올 한 해 루키 신분으로 메이저리그의 화려함을 맛본 이들에게 어쩌면 이 짧은 ‘악몽’ 이상 가는 ‘보약’은 없었을 것. 그라운드를 질주하다가 한두 번씩 ‘벙커’를 만났던 이들 3인방의 실감 나는 위기 탈출기를 들어본다.
최희섭은 지난 8월 중순 코치로부터 ‘마이너리그행’을 통보 받았을 때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고 한다. 언젠가는 감독이 자신을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낼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 그동안 엉킨 스윙폼도 제대로 잡고 지난 6월의 머리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도 완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에 마이너리그행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분까지 좋을 리는 없었다. 빅리그에 있을 때도 피 말리는 주전 경쟁 싸움을 벌어야 생존할 수 있었는데 아예 메이저리그에서 멀어지면 언제 또 다시 ‘별들의 세계’에 합류하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던 것.
“잠시 거쳐갔다 오는 곳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어느 누구나 겪는 것이고 마이너리그에서 내 야구 인생을 마감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크게 위축되지 않을 거라 마음먹었다. 주위에서 정신적으로 평안하도록 도와줬고 전화위복의 기회를 삼으라고 충고했는데 정말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최희섭은 ‘메이저리그의 루키들 중 90%가 시즌 중에 마이너리그를 경험한다’는 사실도 희망을 잃지 않게 하는 요인이었다고 토로한다. 올 시즌 초 3할대의 맹타로 팀 타선을 이끌었던 코리 패터슨도 지난해 루키 시즌 동안 두 번이나 마이너리그를 경험했다는 이야기도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됐다.
최희섭은 “설령 또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간다고 해도 실망하거나 화내지 않을 것이다. 부상만 아니라면 난 언제든지 올라갈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 서재응(뉴욕M) | ||
“올라가는 건 힘들었지만 내려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야구 외적인 일들로 지쳤다, 구질이 다 파악이 됐다, 더 이상 보여줄 게 없다’는 등 매스컴의 지적들이 장난 아니었다. 그런 지적들을 다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때론 수용하기 힘들 때도 있었다.”
서재응은 자신의 판단에 모든 걸 맡겼다고 한다. 피칭이 예전 같지 않다거나 힘이 떨어졌다거나 상대 타자들한테 구질을 읽혔다는 등의 생각은 하지 않았고 오로지 자신감 회복과 마운드에서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게끔 마인드 컨트롤을 되풀이했다고. 마인드 컨트롤의 가장 큰 조언자는 바로 한국에 있는 아버지 서병관씨.
“힘들 때마다 아버지와 전화통화를 했는데 때론 혼나기도 하고 때론 용기도 얻고 눈물도 흘리면서 그렇게 나를 찾아갔다”는 서재응의 목소리는 어느새 촉촉히 젖어 있었다.
지난 4일(한국시간) 뉴욕 메츠와의 원정경기를 마치고 경기장에서 나오다 기자의 전화를 받은 봉중근은 여전히 씩씩했다. 특히 그날 빅리그 복귀 6경기 만에 등판해 ‘1이닝 무안타 2볼넷 무실점’을 기록한 탓인지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트리플A에서 14일간 생활했는데 처음 5일간 정말 힘들었다. 메이저리그에 있다가 내려가 보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트리플A에 있는 선수들의 시선에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어 행동거지를 매우 조심했다.”
봉중근은 예전(마이너리그 시절)에 아무 생각 없이 경기 후 공을 줍고 선수들의 장비를 챙겨줬던 일이 이번에는 마치 하기 싫은 숙제를 하듯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털어놨다.
“왼손 타자한테 약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트리플A에 있는 동안 왼손 타자하고만 연습을 했다. 그래서인인지 이젠 배리 본즈를 앞에 세워 놓고도 떨림 없이 제대로 된 피칭을 할 자신이 있다.”
봉중근은 트리플A 선수들과 잘 지내기 위해 연습이 끝나면 식사도 사주고 술도 같이 마시며 인간적인 정을 나누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다 그곳 생활이 익숙해지고 그들과 정이 들만 하니까 메이저리그로 올라가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봉중근은 “짧은 마이너리그 생활 동안 서울의 여자 친구와 애틀랜타의 한 목사님으로부터 정신적인 도움을 받았다”면서 지금 당장은 겁날 것도, 두려운 것도 없다며 오랜만에 큰소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