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저보다 경민이가 술이 더 세요.”
방수현의 뒤를 이어 ‘셔틀콕의 여왕’이란 타이틀을 안고 있는 라경민(27). 수수하고 참한 외모와는 달리 김동문의 ‘증언’대로 술도 세고 말도 잘했으며 감성이 풍부한 천상 여자였다. 배드민턴 코트를 벗어나 태릉 선수촌 부근에서 기자와 만나 모처럼 혼합복식이 아닌 ‘단식전’에 나선 라경민과의 취중 데이트를 공개한다.
“사스 때문에 대회가 연기되는 바람에 시합 일정이 정말 빡빡해요. 이번에 유럽 갔다오면(라경민은 13일 네덜란드로 출국했다) 전국체전 끝나고도 4개 정도의 대회에 더 참가해야 해요. 요즘은 짐 풀고 싸는 일이 밥 먹는 것처럼 일상이 되었다니까요.”
채 회복되지 않은 피곤이 덕지덕지 온몸에 붙어 있는 듯했다. 귀국 때 공항에서 잠깐 얼굴을 보고 추석 다음날인 12일 태릉선수촌 부근 음식점에서 다시 만난 라경민은 유럽대회 준비로 인해 추석 때 집에도 가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명절을 제대로 보낸 적이 없기 때문인지 가족들과 함께 있지 못하는 안타까움보다는 휴식을 취하지 못한 아쉬움이 더 큰 것 같았다.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술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공항에서 김동문이 말한 대로 정말 술이 세냐고 물었더니 “소주 1병 정도는 기본”이라는 대답으로 은근히 ‘실력’을 과시한다. 기본이 소주 1병이라면 잘 마실 때는 어느 정도일까.
“정해 놓고 마시질 않아서 수치를 말하기가 어려워요. 기분 좋게 마시면 새벽 2, 3시쯤까진 같이 어울려요. 전 노래나 춤추는 걸 싫어하거든요. 오로지 술 마시면서 대화하는 걸 즐겨하는 타입이라 술을 좀 많이 마시게 돼죠.”
라경민이 술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역시 고등학교 합숙훈련 때였다. 단체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양념’ 같은 존재가 술이다보니 좋으나 싫으나 선배들이 따라주는 술은 무조건 마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대학 입학 후엔 업그레이드되는 운동실력만큼 주량도 늘어났다. 신입생환영회 때 빠뜨릴 수 없는 ‘사발식’ 행사에서도 ‘배추 담는 대형 비닐 봉다리’를 옆에 놓고 처절한 의식을 치렀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배꼽을 잡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말수 적고 감정 표현에 서투를 것 같았던 김동문이 의외의 입담과 술실력으로 기자를 넉다운시킨 것처럼 라경민도 사람을 끌어들이는 ‘몸짓’과 ‘말짓’으로 상대방의 넋을 빼놓는 재주가 있었다. 술기운 탓인지 아니면 ‘업’된 분위기 탓인지 질문이 자꾸 김동문과 라경민을 어떻게 해서든 ‘엮어’ 보려는 내용으로 변질(?)되고 있었지만 라경민은 그런 질문이 크게 싫지만은 않은 듯했다.
▲ 김동문과 함께. | ||
두 사람이 정작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어려운 시합에서 이겨도 경기 후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다”는 지극히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는 것. 그런데 올해 초부터는 경기 결과에 대해 분석을 하고 대회 중간중간 작전을 짜며 파트너와 호흡 맞추기를 지속하다보니 성적까지 좋아졌다며 ‘오빠’에 대한 고마움을 잔뜩 드러냈다.
“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는 박주봉 선생님과 파트너가 돼 동문이 오빠를 상대했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만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오빤 그 이후에도 여러 여자 선수들을 파트너로 해서 대회에 참가했기 때문에 제가 짝궁이 되리라곤 예상 못한 거였죠. 성적이 좋으니까 서로에 대해 여유도 생기고 참 많이 편해졌어요. 오빠가 노력을 많이 했어요. 무뚝뚝한 저를 위해서 술도 사주고 사적인 이야기도 털어놓으며 가까워지려고 무던히 애를 썼죠.”
라경민은 파트너 김동문과의 관계를 단순히 선후배가 아닌 이성적인 시각으로 보는 데 대해 조금은 불편하다고 털어놓았다. 예전보다 많이 친해진 건 사실이지만 오빠가 아닌 이성으로 느끼기엔 여러 가지 제약 조건이 있다는 설명이다.
“만약 오빠를 조금 색다른 장소에서 특별한 기분으로 만났더라면 상황이 발전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올림픽이 끝나기 전까진 사적인 감정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은퇴를 번복하면서까지 올림픽 메달을 위해 지금까지 뛰어왔거든요.”
라경민은 각종 부상에다 10년이 넘는 대표팀 생활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지난해 부산아시안게임을 끝으로 은퇴를 표명했다가 협회의 강력한 철회 요청에 올 초 다시 대표팀에 복귀한 바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결혼을 무척 하고 싶었어요. 당시만 해도 결혼만 하면 남편한테 헌신적으로 잘하는 것은 물론 알뜰하게 살림도 잘할 자신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그때 결혼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엄마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올림픽 끝나면 바로 귀국해서 결혼하라고. 이렇게 말하니까 마치 숨겨 놓은 남자가 있는 것 같네.”
초등학교 육상부를 지원했다가 육상부가 배드민턴부로 바뀌는 바람에 ‘얼떨결에’ 배드민턴 라켓을 잡게 됐다는 라경민. 3녀1남의 셋째로 태어나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의 희생 끝에 ‘셔틀콕의 여왕’이란 ‘황송한’ 타이틀을 달게 됐다는 그는 지난해 석사 학위를 취득한 데 이어 이번 가을부터는 박사 학위에 도전할 계획이다.
“합숙훈련 중 휴가 받아 집에 돌아가면 냉장고가 꽉꽉 채워져 있었어요. 전 가족들이 항상 그렇게 잘 먹고 사는 줄 알았어요. 나중에서야 평소엔 텅텅 비어있는 냉장고가 제 휴가 때마다 먹을 걸로 채워진다는 사실을 알았죠. 그렇게 티 내지 않고 절 위해 마음 써준 가족들이 정말 고마워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려고요. 지도자가 될지, 아니면 대학 강단에 설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한테만은 잘난 딸이 되고 싶거든요.”
김동문도 박사 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자 라경민이 큰 소리로 웃는다. ‘올림픽’이라는 말만 들어도 숨이 막혀온다는 그가 과연 아테네에서 금메달 획득과 함께 또 다른 인생 ‘메달’을 따낼 수 있을까. 느낌이 좋은 그들을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