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의 일이었어요. 공놀이하는 걸 좋아해서 축구선수를 꿈꿨고 진짜로 유니폼에다 축구화를 신고 축구부 선수로 출발했을 때만 해도 전 세상의 모든 걸 다 얻은 듯한 행복감이 차고 넘쳤습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너무나 큰 차이가 났어요. 동네 골목에서 공놀이하던 수준의 축구와 선수로 뛰는 축구의 세계는 엄연히 달랐던 거죠.
어린 마음에 가장 큰 상처로 남았던 게 코치님이나 감독님의 구타였습니다. 운동부뿐만 아니라 학교생활에서도 선생님들의 체벌이 종종 있던 터라 크게 동요하진 않았지만 마치 밥을 먹듯 생활화돼 있던 체벌은 어린 시절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한 요인이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때의 일입니다. 어느 순간부턴 맞는 게 두려워졌어요. 무슨 무슨 대회에 나갔다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결과에 대한 자아성찰보다 ‘이번에는 어딜 맞을까’ 하는 생각에 오금이 저릴 정도였으니까요.
고등학교 때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체벌의 주체가 감독님에서 선배들로 옮겨진 정도라고나 할까. 한번은 선배들의 구타에 못 이겨 단체로 숙소 탈출을 계획했다가 발각된 적도 있었어요.
왜 계속 맞고 지냈냐고요? 당시엔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믿었어요. 그걸 견뎌내야 대단한 선수가 되는 줄 알았죠. 동기들 중에는 이런저런 부담으로 중도에 축구부에서 탈퇴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죠. 희한하게도 전 단 한번도 축구를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맞아도 축구공은 제 분신 같았으니까요.
일본 J리그 진출 후 절 쇼킹하게 만든 건 일본에는 구타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어요. 유치원생은 물론 초·중·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마치 놀이를 하는 것처럼 축구를 즐기고 사랑했습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고요. 네덜란드는 일본보다 더욱 자유스럽고 개방된 축구문화로 인해 축구가 가족들의 레저문화처럼 생활화돼 있어요.
우리나라처럼 어려서부터 억압된 분위기에서 축구를 배워온 선수들과 즐겁고 재미있는 축구를 배워온 외국 선수들과 성인이 됐을 때 과연 어떤 차이점이 나타날까요. FIFA 랭킹을 살펴보면 그 해답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얼마 전 전국체전에서 가혹한 체중감량에 어린 레슬링 선수가 그만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서글픈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저 또한 몇 년 전에는 그 선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왔기에 남의 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축구의 재미와 즐거움을 배우고 깨달았더라면 지금 제가 처한 현실이 좀 덜 힘들고 덜 괴로웠을 거예요. 그래서 더 안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10월16일 에인트호벤에서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