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호발트 조선소에 파견된 한국인 기술자들 .
[일요신문]1970년대 우리 경제 발전의 전환점을 마련해 준 파독 노동자가 간호사와 광부만이 아니었다. 이러한 사실은 인천시(시장 유정복) 시립박물관의 분관인 한국이민사박물관이 최근 ‘재독조선기술자협회’로부터 1970년대 독일의 조선소에서 근무할 당시 한국인들이 사용했던 공구, 작업복과 안전모 등 총 297점의 유물을 기증받으면서 밝혀졌다.
한국인 조선기술자는 1971년과 1972년 세 차례에 걸쳐 약 300여 명이 독일 함부르크시에 있는 호발트(HDW;Howaldtswerke Deutsche Werft) 조선소와 3년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독일에 진출했다. 이들은 외화 획득과 조선기술 개발을 위해 노동청과 해외개발공사에서 기술자들을 모집한 후 호발트 조선소의 인사부장과 관계자들의 입회 하에 기능시험을 치루고 어려운 경쟁을 통해 선발돼 파견된 기술자들이었다.
재독 한국인 조선기술자들은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과 성실함으로 좋은 인상을 심어줬고 기술면에서도 인정받아 선체 조립 공장을 맡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특히 잠수함, 해상크레인, 시추선(Bohrinsel) 건조와 특수용접공 등으로 근무하면서 호발트 조선소 외에 유럽 인근 국가에도 파견 근무를 했다는 사실은 처음 소개되는 파독사(派獨史)의 한 장면이다.
호발트 조선소에서 한인 기술자들을 모집한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의배상으로 영국에 돌려줄 5만 톤 급 컨테이너선 5척을 건조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영국 선주 측 검사관들과 관계자들은 호발트 조선소에 상주하면서 한국인 기술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성실함과 능력을 갖춘 기술자로 인정했다.
1972년 현대중공업이 조선소도 없는 상황에서 영국을 통해 그리스 해운 회사의 26만 톤 급 유조선 2척을 주문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파독 조선 기술자들이 호발트 조선소와 영국 선박회사 검사관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는 소식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당당히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리 파독 조선 기술자들의 숨은 헌신과 노력이 한 부분을 차지했기에 가능했다.
당시 파독 조선기술자들은 쉬는 날도 없이 열심히 일했고 휴가 시에도 일손이 부족한 농촌(과수원, 농장)이나 소기업 공장에서 노동을 해 힘들게 번 돈을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겨놓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까지 1970년대 국내 경제를 도왔던 것이 파독 간호사와 광부였다고 알고 있었으나 여기에 파독 조선 노동자들의 헌신을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 재독조선기술자협회의 주장이다. 이들은 대부분 3년의 계약 기간이 만료된 후 귀국했지만 간호사, 광부와는 달리 국내에서도 같은 직종에 종사하면서 선진 기술을 확산시키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대부분 한진중공업과 대우조선에 입사해 과장, 직장, 반장, 조장 급으로 근무하면서 우리나라 조선 산업의 발전에 크게 헌신했다. 계약이 연장돼 현지에서 재취업한 40여 명에게는 회사의 특별한 배려로 한국 왕복 항공권과 휴가비를 지급하고 6주간 휴가를 보내 주기도 했다.
파독 조선기술자들은 1976년 4월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동호회를 창설했으며 2004년 정기총회에서 명칭을 조선기술자들의 단체임을 나타내기 위해 ‘재독한인조선기술자협회’로 개칭했다. 한때 호황을 누렸던 독일 조선업계는 일본에 이어 한국의 강력한 부상으로 위축되기 시작했고 함부르크 호발트 조선소 또한 1983년 10월 근로자들의 대폭적 감원 등 위기를 겪었다.
현재 함부르크에는 한국인 조선기술자 가족 31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조국이 어렵던 시기에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고향을 떠나 온 지 45년,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사들이 한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로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되고 있지만 그에 비해 파독 조선기술자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적은 편이다. 비록 파독 광부나 간호사들에 비해 인적 규모는 적었지만 타국에서 조국의 경제발전과 조선 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한 사실은 이제 제대로 평가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는 2014년 63건 63점, 2015년 111건 234점 등 총 174건 297점의 파독 조선기술자 관련 자료를 기증받았으며 앞으로 이들 유물을 연구 및 전시자료로서 활용할 계획이다.
박창식 기자 ilyo11@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