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한다고 바뀌나…나부터 뛰자
20~30대, 청년세대는 불안하다. 가혹한 취업난 한파가 몰아치는데다 어렵게 돌파한다 해도 대부분 ‘열정페이’가 기다리고 있다. 달도 차면 기운다는 옛말처럼 한치 앞도 안 보이는 미래를 걱정하던 청년세대도 적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변화의 움직임 중심에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가 있다. 청년세대들은 SNS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다시 정치권으로 향한다. 정치권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 또한 정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을 향해 청년들이 외치는 목소리를 따라가봤다.
정치에 냉소를 보이던 청년세대가 변하고 있다. SNS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요신문 DB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청년세대의 지지를 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새누리당은 이준석 현 노원병 예비후보를 비상대책위원으로 맞아들였다. 더민주(당시 민주당)는 청년비례대표와 청년보조 정책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대선 이후 양대 정당의 청년세대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사그라진 것이 사실이다.
젊은 세대의 오래된 정치 혐오는 정치권의 이런 ‘태세 전환’이 한몫했다. 정치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 아무개 씨(27)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청년세대의 혐오감이나 냉소는 기존 정치권이 젊은 세대의 표가 필요할 때는 쓸개라도 내줄 듯하다가 선거가 끝나면 돌변하는 태도가 키워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선거 직전에는 공약을 남발하다, 결국 달라진 것은 별로 없는 점을 보며 기대를 접곤 한다는 것이다.
오는 4·13 제20대 총선,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정치권의 청년세대 러브콜이 시작됐다. 하지만 청년세대는 이번만큼은 다르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치에 관심이 있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SNS가 여느 때보다 크게 보편화된 덕이다. 많은 SNS 플랫폼 중에서도 특히 정치권과 청년층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서비스는 페이스북이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 각 당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후보들도 대부분 페이스북 홍보에 방점을 찍는다.
청년세대의 SNS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많은 팔로어를 보유하면서부터다. 청년세대가 목소리를 키우는 방법은 뜻이 맞는 사람으로 구성된 팀을 만들어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면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들은 이 페이지 내에서 새로운 언론 문법으로 독자들을 매료시켜나간다. 유명 페이지가 올린 글들은 수천, 수만 개의 ‘좋아요’와 공유를 받으며 수십만 독자에게 퍼져나갔다.
특히 최근 이들이 1~2년 사이 들고 나온 새로운 전달법인 ‘카드뉴스, 동영상, 움짤’ 등의 방식은 페이스북 내에서 큰 유행이 됐다. 그 사이 기성 언론들은 빠르게 치고 나간 청년세대의 페이스북 아이디어를 따라하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청년들이 SNS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해볼 수 있다. 하나는 보수나 진보 한 쪽의 정치색을 표방하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책을 입안하라는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있다. 또 하나는 분명한 정치색을 띠지는 않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방향이다.
청년세대 페이스북 대안 언론 중에 가장 많은 팔로어를 보유했다고 알려진 페이지는 <자유주의>다. 흔히들 진보적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SNS 페이스북 내에서 보수를 표방하는 <자유주의>의 팔로어가 가장 많은 현상은 의외다. <자유주의>를 운영하는 장예찬 자유미디어 대표의 설명이다.
“기본적으로 보수, 그리고 청년들의 정치적 목소리는 침묵하는 다수라는 이름하에 숨겨져 있었다. 정책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이지 결코 세대만으로 보수와 진보가 갈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유주의>는 많은 팔로어를 바탕으로 최근 노원병에 출마하기로 발표한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과 이동학 전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 등 유명 청년 정치권 인사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보수적, 혹은 진보적 기치를 분명히 표방한 <자유주의>를 위시한 많은 페이스북 페이지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정책을 최대한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읽기 편하게 구성한다. 어려운 문제도 지나치게 쉽게 풀어내 사람들을 납득시키는 까닭에 ‘선동’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만큼 청년세대에게는 기성 언론들의 언어가 어려웠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들이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책은 청년비례대표제나 정당 내 청년들의 목소리가 더욱 확대될 수 있는 시스템 등이 있다.
장 대표는 “청년 정치가 실종된 것은 청년 정치인의 수가 너무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여야를 막론하고 청년비례의 수를 늘리는 것이 세대별 인구 대표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궁극적으로는 당장 생색낼 수 있는 청년 관련 예산 투입보다는 각 정당에서 장기적으로 준비된 청년 정치인을 육성하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주문하고 싶다”고 밝혔다.
<자유주의>처럼 적극적으로 특정 정치색을 띠진 않지만 많은 청년들의 정치의식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가진 집단도 있다. 부적응자라는 뜻을 가진 <미스핏츠>를 기획했고, 최근에는 따로 <청춘씨:발아>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는 박진영 대표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독특한 이름을 내세운 박 대표는 정치, 시사에 관심이 없는 청년세대들이 현안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수준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민주주의가 참 좋은 것이 모든 사람들이 1표씩 갖고 있다는 점이다. 대선이 있는 내년까지는 표를 갖고 있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중요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다. 보수, 진보 등 청년세대 안에서도 대안의 방향이 다를 순 있지만 투표율이 지금보다 떨어질 수 없다는 공감이 있다. 우리는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들이 타깃이다. 동창들이 대학을 안 가고, 애 엄마가 되더라도 그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정치 이야기를 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그게 결국 새누리나 혹은 더민주로 흘러갈 수 있지만 그래도 일단 사내유보금이 뭐고, 최저임금이 뭔지 알아야 고민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특정 정치색을 띠고 활동하는 측과 전반적 정치문화 확산을 위해 뛰는 두 곳 모두 공통적으로 일치하는 방향은 있다. 바로 쉽게, 더 쉽게 전달해야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카드뉴스에는 어려운 단어를 찾아보기 어렵다. 박진영 대표도 “지금 여유 없는 젊은 세대에게 정보를 주는 방식이 교훈적이고 계몽적이면 들을 사람이 없다. 안 그래도 답답한데 그걸 누가 끝까지 보고 있겠느냐”면서 “어떻게든 문법을 바꿔서 도달하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도 이들은 무시할 수 없는 표다. 유력 정치인들조차 청년세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소통 창구로 삼고 있는 최근의 전략은 그런 점을 방증한다. SNS를 타고 뻗어 나가는 청년세대들의 목소리가 총선과 대선에서 어떤 화학적 반응으로 나타날까.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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