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평범한 사람’…귀가하면 폭군 변신
부천 초등생 시신 훼손 사건의 용의자들. 이 부부는 아들의 사체를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었음에도 4년 동안 평범한 가정을 꾸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연합뉴스
사체를 보관하고 있던 용의자 지인의 아파트(위). 지난 1월 16일 부천원미경찰서에서 사건 1차 브리핑이 열렸다.
지난 2013년 8월 서울시 은평구에서 나 아무개 씨(38)가 8살 난 아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나 씨는 아들이 병원에 다녀온 어머니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행을 시작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했다. 나 씨가 플라스틱 안마기로 아들의 온몸을 때려 결국 숨지게 한 것. 경찰 조사결과 나 씨의 아들은 이미 사망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사인은 지속적인 폭행으로 몸속 혈관이 터져 혈류량이 부족해지는 ‘피하출혈로 인한 외상성 쇼크사’였다. 나 씨는 평소에도 아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골프채로 폭행했으며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등의 가혹행위까지 벌였다. 그러나 외부에서 나 씨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한 중소기업의 대표로 외부에서는 ‘사장님’ 소리를 듣는 사람이었다.
같은 해 10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울산에 거주하는 박 아무개 씨(여·43)가 8살 난 딸 이 아무개 양을 폭행해 살해한 사건이다. 박 씨는 주먹과 발로 이 양의 머리와 옆구리 등을 때렸다. 박 씨는 경찰조사에서 “딸이 돈 2000원을 가져가고도 가져간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며 폭행 이유를 설명했다. 사건이 발생한 날은 이 양의 학교 소풍날이었다. 이 양은 폭행을 당하면서도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가고 싶으니 소풍은 보내달라”고 애원했다. 박 씨는 살해 후 “목욕을 하던 딸이 욕조에 빠져 숨졌다”고 거짓 신고했으나 경찰 수사 끝에 사건의 진상이 드러났다. 부검결과 이 양의 갈비뼈 24개 가운데 16개가 부러지거나 금이 간 상태였다. 또한 지난 5년 동안 박 씨가 이 양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 양의 아버지는 수도권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매달 2번 정도 울산 집에 들어온 탓에 학대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아버지뿐 아니라 학교선생님과 동네 이웃들도 폭행 사실을 알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 양은 성격이 밝고 학교생활도 잘해 누구도 폭행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 이웃주민은 “박 씨는 이 양의 학교에서 학부모회 일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사교성이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가해자인 부모가 외부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다. 최근 아동학대 범죄를 살펴보면 이처럼 평범한 가정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 18일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발생한 사건도 비슷한 경우다. 이 아무개 씨(여·29)가 650g이 넘는 무게의 플라스틱 장난감 공을 생후 10개월 된 딸에게 던져 살해한 사건이다. 이 씨는 딸이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119에 신고했으나 끝내 사망했다. 이 씨는 폭행 사실을 부인했으나 경찰이 사인을 ‘외력에 의한 두개골 골절’로 확인한 뒤 추궁하자 결국 범행을 자백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세쌍둥이를 낳았는데 첫째와 셋째가 건강이 좋지 않았다. 이 씨는 경찰에 “둘째만 건강하게 태어나서 미웠다”며 “혼자 건강한 데도 자주 울고 보채기까지 해 더 힘들었다”고 진술했다. 이 씨는 사고 일주일 전에도 사망한 둘째 아이를 폭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속적인 학대가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자신의 딸을 살해한 이 씨는 평범한 가정주부고 이 씨의 남편 역시 평범한 회사원으로 알려졌다.
2013년 9월 전주에서 벌어진 사건도 마찬가지다. 당시 장 아무개 씨(37)는 자택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4살 된 딸을 폭행해 바닥에 넘어뜨렸다. 딸은 바닥에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쳐 병원에 실려 갔으나 뇌출혈로 사망했다. 경찰조사결과 장 씨는 큰딸 뿐 아니라 당시 2세였던 작은딸을 상대로도 상습 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사망 후에도 보험사에 사고로 숨진 것으로 위장해 보험금 1200만 원을 받아 챙겼다. 그러나 딸의 머리 상처가 강한 물리력에 의해 생긴 것이라는 의사 소견이 나온 후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장 씨 역시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2014년에는 친아버지가 어린 딸의 알몸을 인터넷에 올리는 사건도 있었다. ‘누드 소꿉장난’이라는 제목의 이 동영상에는 각각 5세와 7세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등장한다. 이들은 전라 상태로 있었으며 영상에서 남아의 모습은 초반에만 나오고 줄곧 여아의 모습에 집중한다. 심지어 여아는 아버지 A 씨가 건네준 발가벗은 인형을 가지고 노는 장면도 나온다. 경찰은 어린이집에서 일어난 일로 보고 수사를 시작했으나 곧 A 씨가 집에서 직접 촬영한 영상임이 드러났다. A 씨는 이 영상을 유튜브뿐 아니라 성인사이트에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A 씨 아내에 따르면 딸의 방 안에서 딸과 함께 성인동영상을 보거나 딸 방에 성인용품을 갖다 놓는 등의 행동도 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A 씨가 국내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 연구원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가정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한 관계자는 “부모님들이 체벌과 훈육의 경계를 잘 구분 짓지 못해서 이런 사건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체벌은 마약과도 같다. 처음에 한 대 때려서 아이가 말을 들으면 한 대가 두 대가 되고 세 대가 된다”며 “처음에 한 대가 효과가 있는 것 같지만 이런 게 점점 학대로 이어지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장은 한국 사회를 문제로 들었다. 이 회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시대가 변함에 따라 핵가족화가 되고 가족 사이의 대화도 사라져가고 있다”며 “부모의 역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배우지도 못하고 준비도 못하다 보니까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서 신고의식과 부모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부천 사건에서도 아이가 학교에 4년 동안 나오지 않는다면 누구나 의심을 했어야 한다”며 “아이의 친척들이 있었을 텐데 신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부모교육에 대해서는 “스웨덴 같은 국가에서는 임신하면 남편도 자녀를 어떻게 양육할지 관련 교육을 받지만 한국은 그런 게 전혀 없다”며 “아이가 울면 배가 고파서 우는 건지 배가 아파서 우는 건지도 제대로 모르다보니 서로 오해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고가 생기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통계로 보는 아동학대 범죄 변화 이웃집도 혹시…사람이 무섭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은 매년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를 발표한다. 이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아동학대 사건 발생 건수는 무려 1만 27건 이었다. 이는 10년 전인 2004년에 기록한 3891건에 비해 2.6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단순히 사건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라 가해자의 특성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장’에서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일반인’으로 변하고 있다. 2014년 기준으로 가해자의 직업을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고용상태가 안정돼있다고 볼 수 있는 관리직, 전문직, 기술공, 준전문직, 사무직이 전체 가해자의 21.6%를 차지했다. 2004년 이들 직종이 차지하는 비율은 10.8%였다. 또한 가해자 중 기초생활수급권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8.5%로 2004년 22.5%에 비해 4%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가해자의 사회·경제적 스트레스로 인한 사건은 2004년 22.2%에서 20.4%로 소폭 하락했다. 피해 아동의 가정에도 변화가 있었다. 지난 2004년 피해 아동 중 친부모와 함께 사는 아동의 비율은 24.4%였고 한부모 가정은 45.9%였다. 그러나 2014년 피해 아동 중 친부모 가족은 44.5%로 총 32.9%를 기록한 한부모 가정을 넘어섰다. 대리양육 아동도 같은 기간 3.1%에서 2.7%로 하락했다. 가해자의 성별에도 변화가 있었다. 지난 2004년 가해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32.4%였지만 2014년에는 44.3%로 증가해 남성과 비슷한 비율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가해자에게는 어떤 조치가 취해질까. 가정문제는 법으로 다루기 애매한 부분이 있어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에서 중재를 하는 경우가 많다. 2004년 가해자의 38.2%를 교육 및 상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끝내 고소·고발로 이어지는 경우는 전체의 4.7%였다. 그러나 2014년에는 사건 중 15.6%가 고소·고발로 이어졌다. 기관은 이를 2014년 9월부터 시행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개정 아동복지법’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