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걷은 전남, 팔짱 낀 제주 ‘도돌이표’
이낙연 전남지사가 목포~제주 해저터널 카드를 또 꺼내들었지만 막대한 건설비용과 만만찮은 반대 여론 등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왼쪽은 이낙연 전남지사, 오른쪽은 원희룡 제주지사. 일요신문 DB
목포~제주 해저터널을 둘러싼 논의는 2007년 시작됐다. 당시 김태환 제주도지사와 박준영 전남도지사는 공동으로 “해저터널을 국책사업에 포함해 달라”고 정부에 제안했다. 목포~해남 간 89㎞의 고속철도를 신설하고 해남에서 보길도~추자도~화도~제주로 이어지는 89㎞의 해저터널을 뚫어 서울~제주를 2시간 28분만에 주파하는 고속철도(JTX)를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그저 논의로만 그쳤을 뿐 지난 대선을 앞두고 2011년 국토교통부에서 ‘경제성이 없다’는 용역결과를 내놓으면서 흐지부지됐다. 세계 최장 규모인 해저터널 건설의 안전성 여부, 16조 8000억 원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비용 부담도 사업 추진에 걸림돌이었다.
그럼에도 민선 6기 이낙연 지사의 해저터널 의지는 꺾이질 않았다. 이 지사는 2014년 7월 청와대에서 열린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해저터널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이 지사는 토건사업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해저 KTX로 관광객을 전남권에 유인할 수 있어 국가 균형발전이 이룩된다고 주장했다.
이 지사는 이번 제주 고립사태를 계기로 해저터널 건설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그는 이달 1일 열린 2017년도 국고 신규사업 발굴보고회에서 “해저터널 KTX사업을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해줄 것을 국토교통부에 요청키로 했다”고 밝혔다. 전남도의 건의는 입으로만 떠돌던 사업을 서류화함으로써 공론화시켰다는 데 의의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은 오는 6월께 발표되는데 전남도가 건의한 해저터널이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되면 사업에 탄력을 받게 된다. 내친김에 전남도는 해저터널 건설을 유도하기 위한 민관 추진위원회도 이달 중 구성하기로 확정하는 등 속도전을 펴고 있다. 이낙연 지사가 그 필요성을 다시 거론한 데 이은 불과 일주일 안에 숨 가쁘게 이뤄진 후속조치다.
해저터널이 건설되면 광주, 목포 등 호남이 KTX 종착지가 아니라 경유지로서 관광객 등에게 주목을 받을 것으로 이낙연 지사는 내심 기대하고 있다. 제주와 육지를 잇는 해저고속철도의 지점이 전남이 되면 전남은 제주를 오가는 경유지로서 중국 관광객은 물론 관광객들을 충분히 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또한, 남북통일시대와 동북아 정치·경제 지형 변화 등을 감안해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을 연결하는 고리로서 ‘호남축’을 견고히 하자는 의미에서도 목포-제주 해저터널이 건설돼야 한다는 게 이 지사의 구상이다. 전남도는 4월 총선과 대선에서 주요 정당에 목포-제주 해저터널 건설을 공약으로 채택해달라고 요구할 계획이다.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전남과 제주 국회의원 후보들도 해저터널 건설을 주장하고 나섰다.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는 지난 4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역발전의 기여도를 위해서라도 목포∼제주 해저터널 추진 사업이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저터널 노선이 지나가는 해남·완도·진도가 지역구인 김영록 더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논리로 건설론을 거들었다.
제주선거구의 일부 예비후보들도 해저터널 건설에 가세했다. 제주시 갑선거구 김용철(새누리당), 을 선거구 차주홍(새누리당) 예비후보는 지난달 25일과 28일 각각 보도자료를 내고 해저터널을 이용한 KTX 사업 추진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그렇다면 목포-제주 해저터널은 ‘정책적’으로 가능할까. 제주도는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시큰둥한 반응이다. 논란거리를 만들어 이슈화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서귀포시 성산읍 지역에 들어서는 ‘제2공항’ 건설이 시급한 현안이어서 여기에 올인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정부가 투자하는 대형 국책사업에 집중력을 분산시켜서는 안 된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제2공항 외에 제주시 탑동 신항만 개발사업을 추진 중이어서 해저터널을 거론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해저터널이 건설되면 제주도가 갖고 있는 ‘섬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란 우려도 크다. 막대한 자본이 투자된 해저터널 사업 이후 당일치기 관광지로 전락, 관광객 수는 늘지만 지역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단순히 한번 왔다간 곳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시기상조다. 섬이라는 특성도 고려해야 하고 포화 상태인 공항 확충이 먼저”라며 단칼에 거절했던 사안이다. 원 지사도 2014년 10월 국정감사에서 해저터널 사업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제주의 숙박업계나 관광업계도 “교통 접근성이 좋아지면 당일치기 관광객이 늘어나 매출이 줄거나 자연환경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며 반대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런 이유로 제주도는 해저터널 추진보다는 신공항 건설 또는 제주공항 확장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2010년 타당성 조사를 벌인 결과,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는 국토교통부도 여전히 입장 변화가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이낙연 지사가 해저터널 개발 카드를 꺼내든 데 대해 “전남-제주 해저터널 건설 문제는 이미 몇 년 전에 타당성이 없다고 결론이 내려진 상황”이라며 “국토부가 사업 추진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터널공사가 양쪽을 잇는 사업인 만큼 전남 지역의 일방적인 의견만 있다고 사업추진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제주도가 사업에 동의하지 않는 이상 사실상 불가능한 사업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전반적인 상황이 지난 12대 대선 때와 별반 달라진 점이 없어 실제 추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한편에서는 ‘재탕 선거용’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역 환경단체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최지현 광주환경연합 사무처장은 “현재의 해저터널 제안은 토건업만을 위한 주장일 뿐 전남의 발전도 국가의 균형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며 “지난 2011년 정부가 전남-제주 간 해저터널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한 결과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난 바 있다. 경솔했던 과오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여전히 지역발전 구상이 토건업을 통해 활성화 하겠다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역 정치권의 수준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목포-제주 해저터널 건설은 천문학적 사업비, 제주도·환경단체의 반대, 중앙정부의 정책적 결단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목포-제주 해저터널 구상이 현실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