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EFA컵은 스페인에서 열렸던 2003년 결승전 때한 남성이 레드 카드를 꺼내 진짜 주심에게 ‘퇴장’을 명령한 뒤 갑자기 옷을 벗으며 스트리킹하는 모습. | ||
얼마 전 끝난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매년 팬들은 멋진 경기와 함께 이런 기대를 한다. 바로 그 유명한 ‘호주오픈 스트리킹(streaking)’을 기다리는 것. 연초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지라 ‘스트리킹계’에서도 비슷한 대접을 받아 매년 많은 스트리커들도 이 대회를 노리기 때문이다. 올해는 별다른 ‘불상사’ 없이 끝나 주최측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일부 팬들은 ‘양념’이 빠졌다며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스트리킹은 알몸인 상태에서 느닷없이 경기장에 진입, 보안요원에게 붙잡힐 때까지 질주를 벌이는 행위.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지만 서구 사회에서는 경기장의 또다른 볼거리로 자리잡고 있다. 스포츠 이벤트 속의 각본 없는 깜짝 이벤트, 스트리킹의 세계를 살짝 훔쳐보자.
''신사의 나라’를 자처하는 영국은 사실 스포츠 관전문화에 있어서는 비신사적이다. ‘영국축구장 관중석에는 훌리건이 있고, 경기장에는 스트리커가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공정·공익보도’의 대명사인 공영방송 BBC조차 지난해 특집으로 ‘역대 스트리킹 베스트9’을 선정한 바 있다.
스트리킹에 관한 모든 정보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세계적 포털사이트 ‘스트리킹넷’ 운영진도 영국인이다. 지구촌 어느 경기장에서 누가 스트리킹을 했는지 ‘최신 뉴스’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고, 역대 스트리킹 중 최고의 장면을 모아놓은 명예의 전당도 있다.
언론에서 인정한 공식적인 스트리킹 횟수만 3백 회를 넘고, 전 세계 각종 매스컴과의 인터뷰는 물론 스페인에서는 CF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그러나 로버츠도 이제 나이가 든 탓인지 최근 들어 보안요원과의 숨바꼭질에서 얼마 달리지도 못한 채 붙잡히는 장면이 자주 연출돼 그를 아끼는 팬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다.
스트리커는 남성이 주류를 이루지만 사실 볼거리(?)가 많은 여성이 더 주목받는다. 때문에 여성들의 활약도 눈부신데 최근 가장 눈길을 끌었던 이는 자크 샐먼. 두 아이의 엄마이자 무용수인 그녀는 지난 2000년 7월 브리티시오픈골프대회에 ‘참가’, 타이거 우즈 앞에서 탄탄한 몸매를 선보여 골프 팬들을 즐겁게 했다. 그리고 이 장면은 ‘BBC베스트9’에 꼽히는 영예를 얻었다.
그렇다면 스트리커들은 왜 옷을 벗을까? 80~90년대만 해도 ‘인간의 순수성을 찾기 위해’ ‘인간해방의 구현을 위해’ 같은 철학적 이유의 스트리킹이 주종을 이뤘다. 하지만 최근에는 점차 특정 기업체의 홍보를 위한 상업적 스트리킹이 늘고 있다. 대회 주최측에 스폰서비 한푼 안내지만 눈길 확 끄는 ‘불법 광고판’으로 변신한 셈. 가장 대표적인 업체가 인터넷 도박 사이트인 G사. 최근 들어 사진기자들에게 포착되는 스트리커들의 상체에는 어김없이 G사 홍보 문구가 적혀있다. ‘대부’ 마크 로버츠도 G사의 ‘홍보 도우미’ 역할에서 빠지지 않았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