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아직 주전이란 생각 안합니다”
▲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2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친정팀 포항으로 다시 돌아온 이동국은 아직도 민간인 생활이 익숙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내무반 대신 집에서 출퇴근하는 데 대한 편안함과 점호를 잊고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유를 통해 ‘행복함’을 새로이 느끼는 그이다.
지난 14일, 포항스틸러스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사연 많은 남자, 이동국과의 ‘리얼토크’를 소개한다.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질문은 군대 얘기가 최고였다. 인터뷰의 시작을 군 생활과 관련된 에피소드로 풀어가다가 “다시 군에 입대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0.2초도 걸리지 않고 “다신 못 간다”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러면서 “요즘 4주 군사훈련 받는 걸 두고 무섭다느니, 걱정된다느니 하는데 그건(4주군사훈련) 장난치는 거나 다름없다”며 짐짓 병장으로 제대한 이력에 대해 자부심을 과시했다.
“군인은 휴가를 나오거나 대표팀에 소집돼 생활해도 내가 군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절대 안돼요. 그런데 한 번은 추리닝 입고 인터뷰를 했는데 한쪽 손이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사진이 신문에 실리게 됐어요. 그 사진 때문에 간부한테 불려가선 엄청 혼났죠. 그래서 요즘 인터뷰할 때는 일부러 이렇게 주머니에 손 넣고 말해요. 그 당시 받았던 스트레스가 기억나서요.”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단다. 광주에서 시합중인데 한 안티팬이 상무 홈페이지에다 ‘이동국이 서울에서 술 마시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는 것. 그 글로 인해 부대 전체가 발칵 뒤집어졌고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질 정도로 사태가 심각했다고 한다. 또 다시 간부들한테 불려간 이동국은 잘못이 없음을 강조했지만 그런 일을 처음 겪어 본 군대에선 진위 여부를 떠나 그런 루머가 떠돌게 한 선수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는 등 이동국으로선 다소 ‘황당한’ 경험을 하게 했던 것이다.
소속팀에서 자리를 비운 시간은 2년밖에 안됐는데 그 사이 팀은 많은 변화를 이뤘다. 감독, 코치가 바뀐 것은 물론 몇몇 선배들 외엔 아는 선수가 없을 만큼 새로 들어온 후배들이 잔뜩이다. 막내로 사랑받았던 시간이 엊그제 같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어느새 중고참이 되고 말았다. 이동국은 이런 상황을 세대 교체의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절로 어깨가 무거워져요. 책임감이란 피할 수 없는 ‘숙제’가 주어졌다고 봐요. 특히 포철공고 출신의 후배들이 많아졌어요. 행동 하나하나에 모범을 보여야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감독님이 브라질 출신이라 언어 소통에 문제가 많네요. 좀 답답할 정도로요.”
본프레레 감독은 영어로 말하니까 통역을 안 거쳐도 ‘대충’은 알아듣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나라(포르투갈어)’ 말은 도통 감이 안 잡혀 속이 터질 지경이란다. 더욱이 용병들마저 브라질 출신이라 게임메이커 역할을 하는 용병과는 말 한 마디 나누기 힘든 상황이라고.
“미드필더와 공격수는 자주 얘기를 나누는 게 상당히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그렇지 못하니까 속이 터지죠. 특히 브라질 출신의 게임메이커가 나와 또 다른 브라질 출신의 골게터하고 섰을 경우 아무래도 같은 나라에서 온 선수에게 패스할 확률이 더 높을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저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마찬가지였을 테지만요.”
이전 용병들은 한국말을 따로 공부해서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했지만 지금의 용병들은 감독이 브라질 출신이다보니 한국말을 배우려 하질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동국이 군대 갔다와서 가장 달라진 부분이라면 ‘말을 잘 한다’는 사실이다. 그냥 말을 잘 하는 수준이 아니라 다소 대답하기 곤란한 부분도 비껴가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을 보여주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물었다.
“군대 갔다오고 나니까 안정을 찾은 기분이 들어요. 이전엔 뭔가에 쫓긴 듯이 조급해하고 서둘렀다면 지금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그러다보니 인터뷰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오나봐요. 일부러 듣기 좋은 얘기만 하려고 애쓰지 않거든요. 제 말이 기사를 통해 팬들에게 가장 빨리 전달될 수 있다면 솔직하게 밝히는 게 옳다고 생각하니까요.”
대표팀에 관한 질문에 대해선 이동국의 ‘생각의 주머니’가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동국은 이미 13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본프레레호의 황태자’란 소린 독일월드컵 이후에 듣고 싶다며 마지막에 황태자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밝힌 바 있다. “왜 그런 표현을 했냐”고 물었다.
“이동국이 뛰면 이기고 안 뛰면 진다는 얘기까지 나오니까 상당히 부담스럽더라구요. 아직 월드컵 주전 멤버가 결정된 것도 아니고 본선까지 가는데 변수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좋은 얘긴 월드컵 이후로 미루고 싶었어요.”
이동국은 사우디전 패배 이후 본프레레 감독을 비난하는 기사들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감독의 전술 부재에 대한 질타가 마치 자신에 대한 비판처럼 들렸다는 것. 또한 본프레레 감독의 ‘황태자’란 소리를 듣는 선수가 감독을 더 곤궁하게 만들었다는 부분도 이동국을 한숨짓게 만들었다.
“히딩크 감독님 시절엔 그분 주변에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감히 얘기를 나눌 기회조차 없었어요. 그러나 본프레레 감독님은 언제나 대화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계세요. 처음 본프레레 감독님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서든 잘 보이려고 무척 노력했어요. 히딩크 감독님 때 당하고 느꼈던 부분이 있기 때문에 처음 이미지가 끝까지 간다는 걸 알고 이미지 좋게 하려고 애를 쓸 수밖에 없었죠. 다행히 부상당하지 않고 첫 게임에서 골도 넣는 등 감독님과 ‘궁합’이 잘 맞아 떨어진 것 같아요.”
그러나 이 모든 건 이제 ‘과거’일 뿐이라고 한다. 아직까지도 대표팀 선수 구성이 완벽하게 정해진 게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 전에 기자가 생뚱맞게 이런 말을 던졌다.
“혹시, 아직도 히딩크 감독에 대해 원망이 남아 있나요?”
이동국한테 안정환은 서러움이자 넘어서야 할 ‘벽’이기도 하다. 98프랑스월드컵 때만 해도 누구보다 절친했던 두 사람 사이가 점점 틈이 벌어지더니 2002월드컵 이후엔 평소 연락조차 안 하는 소원한 관계로 변모했다. 이전 이동국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안정환과 투톱으로 설 경우 아무래도 ‘끌려간다는 느낌’ 때문에 불편하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2002월드컵 이후 최고의 인기 스타로 부상한 안정환과 자신과는 ‘격’이 다르다는, 쉽게 하지 못할 속내를 비추기도 했다. 지금도 그런지 궁금했다.
“축구선수는 축구를 잘 하고 봐야 돼요. 요즘 그런 걸 절감하고 있어요. 경쟁이 필요하다면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솔직히 월드컵 이후엔 제가 작아 보였어요.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자신감을 되찾은 거죠. 전 이제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아요. 이건 분명 자만이 아닌 자신감입니다. 반면에 정환이 형이 좀 그럴 거예요. 많은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기 때문에 저보단 더 부담스러울 겁니다.”
선배이자 형인 김남일이 애지중지하는 동생이기도 한 이동국은 김남일과의 관계에 대해 이런 소회를 덧붙인다.
“어떤 선배는 2002월드컵 이후 연락을 뚝 끊더라구요. 그러나 남일이 형은 달랐어요. 갑자기 스타덤에 올랐는데도 존경스러울 만큼 변함이 없었거든요. 제가 힘들 때, 가장 많이 챙겨준 사람이 형이에요. 군 입대 하기 전 남일이 형과 마지막으로 술을 마셨는데 그때 술 먹고 둘이서 대성통곡하며 울었던 기억이 나요. 절 위해서 울어줄 사람, 글쎄요.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거든요.”
해외진출과 관련해서 이동국은 김남일과의 비교법을 즐겨했다. 2002월드컵을 준비하려면 무조건 유럽에 나가야 한다는 주위의 압력에 못 이겨 거의 떠밀리다시피해서 독일 브레멘에 입단했던 그는 현지 적응에 실패한 뒤 한국으로 U턴할 당시엔 패잔병이나 다름 없었다고 한다. 너무 비참한 모습으로 귀국해 고개를 들고 외출을 못했을 정도였다는 것.
“그런데 남일이형은 아주 자연스럽게 묻혀서 들어오더라구요. 어쩜 그렇게 뻔뻔할 수 있는지. 그런 배짱이 부러웠죠.”
인터뷰 말미에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기자와 이동국과의 대화 속에 이동국의 미래가 담겨 있다.
“결혼하셔야죠” “글쎄요. 결혼을 생각할 만한 시점이 되긴 했는데 1년 정도는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2년 동안 집에 보태준 게 없어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구요.” “잘 만나고 계시죠?” “예? 아, 예.” “오랜 시간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두 분 참 잘 견뎌 왔던 것 같아요.” “예…”
‘예’ 라는 대답만 해놓고 소리 없이 웃는 이동국이다. 그 미소를 보며 1년 안에 이동국으로부터 청첩장이 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