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풍 더이상 안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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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상영 한나라당 후보 | ||
부산 등 영남에서의 지방선거결과는 향후 대선에서 영남 표심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안상영 한나라당 후보
시장은 한나라당 부산시장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서 권철현 의원과 접전 끝에 힘겹게 본선에 진출했다. 각종 인신공격성 폭로전으로 경선이 과열되면서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안상영 시장은 경선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상대 후보였던 권철현 의원을 직접 찾아가 설득, 경선 후유증 완화에 주력했다. 이제는 경선 후유증을 딛고 참모진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선 상태다. 본선보다 어려운 예선전을 통과한 탓인지 17일 부산시장 집무실에서 기자와 대면한 안상영 시장은 여유를 되찾은 듯했다.
안 시장은 “노무현 바람은 상당부분 기획된 것”이라며 “전라도 광주에서 노무현 후보가 1위를 한 것이 기획이 아니면 어떻게 가능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안 시장은 또 “기성정치에 실망한 국민의 변화를 촉구하는 바람이 노풍으로 표출된 측면도 없지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누가 국민들을 실망시켰는가. 바로 김대중 정권과 민주당이 아니냐”며 “민주당 대선후보로 노무현씨가 됐다해서 국민들이 실망한 이유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노무현씨의 실체가 알려지면서 바람이 빠지고 있고, 앞으로 더 빠질 것”이라며 “부산시민들은 노무현 후보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 처음부터 (부산에서는) 노풍이 약했고, 앞으로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린시절 성장과정은 어땠나.
▲서면에서 건설업을 하시던 아버지 덕에 생활이 어렵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건설업을 하시면서도 평생 다른 사람들과 다투는 것을 못봤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아버지를 가리켜 ‘부처’란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어머니는 주로 집안살림을 주관하셨는데, 분위기가 무척 엄격했다. 매로 다스리기보다는 엄격한 분위기로 다스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자식들에게 무언가 큰일이 있을 때면 백일 기도를 드리는 등 정성을 다하는 분이셨다.
─공직에 진출한 이후 매우 빠르게 승진했는데,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었나.
▲맡은 일을 적극적으로 열심히 했다. 주변에서는 조직을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다는 평가도 해줬다. 무엇보다 당시는 경제부흥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할 때였는데, 맡은 일에 대해 실패없이 성공을 거둔 점을 조직에서 높이 평가해 준 것 같다.
안상영 시장은 63년 서울 공대를 졸업하던 해 서울시 7급 공무원으로 공직에 진출,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 차장, 서울시 도로국장, 도시계획국장을 거쳐 서울시 종합건설본부장을 지냈다. 이 기간 동안 안 시장은 3·1고가도로, 서울지하철 1호선 설계, 목동 신시가지 개발, 한강종합개발사업 등에 관여했다. 88년에는 기술직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관선 부산시장에 부임했다.
‘서울 건설’에 매진했던 안 시장은 이때부터 무대를 부산으로 옮겨 ‘부산 건설’에 나서게 된다. 2년7개월을 재임하는 동안 안 시장은 인공섬, 외곽순환도로 등 오늘의 부산이 있게 한 마스터플랜을 작성했고, 98년 민선시장으로 선출된 이후에는 당시의 마스터플랜에 기초, 더욱 발전된 미래지향적인 부산 건설에 나섰다고 회고했다.
물론 안상영 시장의 고속 승진과 관련해서는 80년 국보위에 참여한 이후 고속 승진했다는 비판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노풍’이 부산시장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지금 국민들을 가장 불안하게 하고, 실망시킨 주체가 민주당 아닌가. 민주당의 뿌리는 호남에 있다. 노무현 후보는 호남과 인연이 없는 사람인데, 일방적으로 당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즉, DJ의 연장선상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 노무현 후보가 부산에 와서 부산 표심을 얻어가겠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대통령 후보를 한 사람 바꿨다고 해서 면탈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에 당선되게 되면 관선과 민선을 합쳐 모두 11년을 부산시장으로 재임하게 되는데, 너무 장기집권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IMF로 가장 살기 어려운 곳이 부산이었다. 98년 가장 어려웠던 부산을 두고 한나라당과 시민들은 위기관리능력을 갖춘 도시전문가로서 나를 선택했다.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뒷말이 없고, 청렴했기 때문에 위기에 처한 부산을 구해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판단을 해주신 것이다. 지금 부산은 세계도시로 발전하기 위한 기틀이 잡혀져 가고 있다. 도시 분위기가 밝아지고 활발해졌다. 짧은 시간 동안 부산을 변화시킨 것이다.
민선 3기를 앞두고 고민 많이 했다. 세계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준비는 많이 돼있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연속성 못지 않게 누가 얼마만큼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갖고 있나. 또 추진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판단해 주실 것이다.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또 중앙정치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소망도 있다. 정권을 바꿀 수 있는 큰 역할을 하고 싶다.
─안 시장에 대해 너무 권위적이지 않느냐는 주변의 비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토론하는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 대한 흡인력을 갖고 있다. 다만 내가 40년 공직 경험이 있다보니, 동료들이 ‘시장과 협의하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신뢰를 보내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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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이헌 민주당 후보 | ||
광주의 기적으로 시작된 ‘노풍’이 부산의 기적으로 이어질 것인가.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선출된 한이헌 후보 선거 사무실에는 ‘정치개혁 노무현, 경제도약 한이헌’이란 캐치프레이즈가 눈에 들어왔다. 또 선거사무실 곳곳에 붙어있는 한이헌 후보 사진 옆에는 으레 노무현 후보의 사진이 자리잡고 있었다.
민주당으로서는 불모지와 다름없는 부산시장 선거에 ‘노풍’만이 살길이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노풍은 정치변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입니다. 노풍은 이제 곧 부산에서 거대한 태풍으로 한단계 승화될 것입니다. 저는 노풍을 업그레이드시키는데, 노풍을 태풍으로 만드는 데 앞장설 것입니다.”
부산시장 후보로 나선 한이헌 후보는 “부산시민들은 변화를 선택할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한 후보는 “과거와 같은 선거운동방식으로는 시간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변했다”며 “중요한 것은 어떠한 비전과 콘텐츠를 갖고 있느냐”라며 “부산시민들이 갈망하는 변화와 경제부흥의 요구에, 노무현 후보와 함께 정치개혁의 요구를 수용하고, 부산 발전을 위한 장단기 대책을 제시함으로써 평가받겠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한국은행 시험에 합격하고 건강상의 이유로 낙방했다고 하던데….
▲부친이 고2 때 결핵성골수염으로 돌아가셨는데, 4남매 모두 결핵을 앓은 경험이 있다. 그 당시 한국은행은 월급도 많고, 전망도 좋아 고시보다 더 경쟁이 치열했는데, 시험에 합격하고도 신체검사에서 폐결핵 판정이 나와 합격이 보류됐었다. 그때 인사부 차장이 ‘자네 이름은 한국(韓)의 헌법(憲)을 이롭게(利) 한다’는 뜻인데, 정치를 해야지, 한국은행은 왜 오느냐며 위로해줬던 기억이 난다.
─4·13총선을 앞두고 총선시민연대로부터 낙천대상자로 지목되자, ‘정계은퇴’를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와전된 것이다. 98년 척추관협착증으로 수술을 받은 이후, 건강 회복을 위해 ‘2000년 총선에는 불출마하겠다’고 언급한 것이 ‘정계은퇴’로 잘못 알려진 것이다.
─어찌됐건 총선시민연대로부터 국보위 참여와 당적 이적문제 등으로 낙천대상자 명단에 올랐었는데….
▲80년 신군부 시절 국보위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이렇다. 당시 경제기획원 차관이 ‘국가의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국보위에 경제기획원 의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라’며 파견한 것이었다.
당적문제는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점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당적을 옮긴 것이 양지를 쫓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97년 당시 이회창 총재가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게 ‘당을 떠나라’고 요구하는 것을 참지 못해 탈당한 것이다.
자신을 정계에 입문시켜 준 YS에게 ‘탈당’을 요구하고, 인형을 만들어 난타하는 것을 보면서 이회창 총재의 YS에 대한 관계가 패륜적이고 천박하다는 생각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상의했나.
▲민주당 시지부 차원에서 입당 제의가 있었던 3월 초에 찾아뵙고 상의를 드린 일이 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되면, 기존 민주당이 아니다. 신중하게 잘 판단하라’고 조언해 주셨다. 또 후보 출마를 결심한 뒤에는 부부가 함께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그때는 대문 앞까지 배웅해 주셨다. 지금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상황이라 (YS가) 입을 다물고 계신 것 같다.
─경제 전문가인데, DJ정부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DJ정부는 IMF극복이라는 역할을 맡았다. IMF지원체제는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기간이다. 그런데 구조조정을 제대로 해냈는지 의문이 간다. IMF의 원인을 정치인, 정부관료, 기업가, 노동자 등 모든 경제주체가 책임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분석하지 않고, 특정인의 책임으로 몰고 가, 다른 주체들에게 면죄부를 준 측면이 많다.
또 한 가지는 경기를 빨리 회복시켜야 된다며, 소비중심 경기 진작책을 많이 써 가정경제에 위기가 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한 후보는 문민정부에서 경제수석을 지내는 등 YS의 경제교사로 역할을 했다. 97년 IMF위기와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는 것 아닌가.
▲YS정권 초기 수립된 ‘신경제정책’ 내용에는 관여하지 못했다. 또 95년 경제수석을 마친 뒤에는 국회에 등원했고, 이후 2년 뒤에 IMF가 왔다. 직접적으로 IMF사태와 관련은 없지만, YS 경제교사로, 경제수석을 역임한 만큼 아픈 마음을 함께 하고 있다.
─한 후보는 선거운동에 노무현 후보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 같은데….
▲노무현 후보가 대한민국 정치사를 새로 써야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나는 노무현 후보가 주창하는 통합과 개혁을 위해 ‘성실한 조연’역을 담당할 것이다. 또, 부산경제를 살리는 ‘화려한 주연’이 되고자 한다. 경제전문가로서 부산이 세계물류의 중심도시로 발전하기 위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할 것이다.
─민주당 후보로 당선이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은데….
▲DJ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 최근 DJ 아들 문제로 ‘노풍’에도 영향을 받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러나 (DJ 아들문제가) 일단락되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상황이 올 것이다.노무현 후보의 정치적 비전 제시와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되면 반DJ정서에 기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는 한나라당을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부산=구자홍 기자 jhkoo@ilyo.co.kr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