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본 찍고 미국…‘삼국정벌’ 시동
![]() |
||
▲ “MLB에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대성이형뿐이다”는 박찬호의 말처럼 구대성의 빅리그 입성은 일단 합격점을 받아놓은 상태다. 스포츠투데이 | ||
구대성(37·뉴욕 메츠)이 미국 도전 첫 해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메이저리그(MLB)의 마운드에 올라섰다는 것은 기념비적인 일이다. 야구 선수로는 환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서른일곱의 나이에 이뤄낸 MLB 입성이다. 그것도 미국 내에서 가장 큰 시장인 뉴욕의 양키스와 메츠를 오가는 소문 끝에, 결국 한국 교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플러싱에 위치한 메츠의 셰이스타디움에서 기량을 뽐내게 됐다. 공교롭게도 같은 팀의 서재응(28)과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 됐지만, 올시즌 선발과 구원의 보직 차이라는 점을 떠나서 6년째 MLB에 도전하는 서재응이 아쉽게 탈락한 반면에 구대성은 빅리그 25명 로스터의 한 자리를 차지해 관록을 과시했다.
구대성의 미국행은 당초 회의론이 팽배했었다. 일단 본인의 나이가 너무 많고 기량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 부정적인 견해를 주도했고, 협상을 담당한 에이전트에 대한 신뢰도 역시 떨어져 과연 MLB 최고 구단인 양키스와 협상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을지 조차도 의문이었다.
지난해 12월 중순 구대성의 에이전트로부터 양키스 입단이 사실상 확정됐다는 말을 듣고 양키스쪽으로 계속 사실 확인을 시도했지만, 어떤 양키스 관계자도 구대성과의 계약 합의 사실을 확인도, 인정도 해주지 않았다. 그러다 양키스와의 계약 협상이 지리멸렬해지더니 느닷없이 뉴욕 메츠로의 입단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메츠와의 계약 타결 후에는 또 계약 조건에 대한 구설수가 이어졌다. 구대성의 에이전트는 빅리그가 보장됐고 첫 해 연봉이 1백22만5천달러라고 밝혔지만, 사실 빅리그 보장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에 또 확인이 필요했다.
MLB에선 어떤 선수에게도 빅리그 보장이란 조건은 없다. 부진이나 부상이 오면 냉정하게 밀려나는 것이 빅리그의 생리다. 그런 MLB에서 루키나 마찬가지인 구대성에게 빅리그 보장을 해준다는 건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결국 구대성은 마이너와 메이저의 조건을 따로 따로 맺는 스플릿 계약이었음이 드러났고, 마이너리그에서 뛸 경우 올해 22만5천달러를 받게 되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메츠 입단에 합의는 끌어냈지만, 사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구대성은 올 초 LA에서 대학 후배 박찬호와 합동 캠프를 차리는 등 준비에 돌입했다. 지난 90년대 후반 LA 다저스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박찬호는 “국내 프로 선수 중에 MLB에서 확실히 성공할 수 있는 선수는 대성이형뿐”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한화의 마운드를 책임지던 구대성은 150km의 강속구를 뿌리던 강속구 투수였다.
그 후 국내 야구를 거쳐 일본 무대에서도 능력을 펼친 구대성이었지만 빅리그의 스프링 캠프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불확실했다. 그러나 본인은 연봉 액수에는 개의치 않는다며 올해 반드시 빅리그에서 뛰고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구대성의 구위가 예전에 비해 힘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MLB에서 통할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요건들도 충분히 있었다. 우선 왼손 투수라는 점과 특이한 투구폼이 큰 장점이었다. 독특한 투구폼으로 공을 끝까지 숨기는 능력이 뛰어나고, 구질도 다양해 아무리 뛰어난 메이저리그 타자들이라도 첫 눈에 구대성을 공략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좋은 투수진을 꾸려가려면 쓸 만한 왼손 투수가 반드시 두 명 이상 필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구대성의 가치는 높았다.
풍부한 경험과 마운드에서의 두둑한 배짱 역시 그만의 강점이었다. 막상 시범경기가 시작되자 구대성은 진가를 드러냈다. 지난 3월7일 워싱턴과의 경기에서 처음 메츠 유니폼을 입고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구대성은 1이닝을 땅볼 두 개와 플라이 한 개로 처리하며 완벽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3월16일에는 만만치 않은 클리블랜드 타선을 맞아 9회 초 7-5로 앞선 가운데 등판해 삼진 두개를 곁들이며 퍼펙트 투구로 빅리그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러다 3월29일 세인트루이스와의 원정경기에서 구대성은 8회 말에 등판, 2이닝을 무안타 무실점으로 막으며 두 번째 세이브를 따냈다. 사실상 빅리그 입성을 굳히는 경기였다.
구대성은 시범 10경기서 13⅔이닝 동안 10안타 4실점으로 2세이브(1패)를 기록했으며 2.63의 뛰어난 방어율을 남겼다. 특히 마지막 네 경기 연속 무안타-무실점의 상승세로 정규 시즌에 돌입한 구대성은 본무대 데뷔전 역시 만점짜리였다.
지난 4월5일 그레이트아메리칸볼파크에서 열린 신시내티와의 시즌 개막전에 메츠의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한 구대성은 1이닝 동안 삼진 2개를 잡는 등 퍼펙트로 막았다. 레즈의 간판타자인 켄 그리피 주니어는 구대성에게 서서 3구 삼진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속 160km의 강속구라도 세 번 연속 던지면 쳐낸다는 빅리그의 타자들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구대성은 개막전의 호투에도 불구하고 그 후 세 경기 연속으로 등판 때마다 안타를 허용하며 선행 주자들의 득점을 허용했다. 비록 자신의 자책점은 아니었지만 구원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선행 주자들을 베이스에 묶는 업무’에 계속 실패했다. 특히 구대성의 전문이 되어야 하는 왼손 타자 원포인트 릴리프에 계속 실패한다면 자리 보존마저 쉽지 않게 된다.
일단 구대성이 빅리그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나아가 한국과 일본을 거쳐 미국에서도 효과적인 피칭으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면 구대성은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야구 삼국 정벌을 달성하게 된다.
직구 구속을 140km대로 끌어 올리고, 지나친 자신감보다는 상대 타자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으로 약점을 공략할 수 있다면 구대성의 ‘야구 삼국지’는 새로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스포츠조선> 야구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