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기자 미래칼럼:4·13 총선(지역·쟁점·인물) ⑦ 노무현 박지원 문재인 남상국 정몽헌
○ 2004년 청와대 출입기자가 12년 만에 밝히는 참회의 취재 비망록
○ 일란성 쌍생아처럼 닮은 꼴 정몽헌과 남상국의 죽음과 정치 흑막
○ 정몽헌, 노무현 정권 검객민정 문재인의 김대중 결별과정 희생양
○ 남상국, 노무현 정권 구조적 폭력의 희생양, 탄핵과 총선승리 이용
○ 역사정체성: 김대중을 더럽힌 상손 박지원, 노무현을 망친 상손 문재인
1. 청와대 출입기자가 바라본 남상국· 정몽헌의 죽음
언젠가는 반드시 고백하리라 마음먹었던 사건이다. 2004년 3월 11일. 청와대 기자실. 줄잡아 150여명의 내외신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대통령 측근비리, 수도이전과 민주당 분당 등으로 국회에서 탄핵논의가 극에 이르던 국면이었다. 요한기자는 대통령의 정중앙 앞쪽으로부터 세 번째 줄에 자리를 잡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잠을 들지 못했던 듯,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예의도 격식도 무시하고, 거칠고 생경한 말들을 쏟아내었다. 마치 대통령 기자회견이 아니라 야당시절 현장에 나선 ‘투사 노무현’의 신상발언을 연상케 했다. 첫 질문자는 경향신문 박래용기자였다. 그 요지만 간략히 정리한다.
박래용: (간명한 실례를 든 뒤) 자, 이제 어떻게 하려 하십니까?
노무현: (이기명씨 운운 등 장황한 설명 끝에) “경기고 서울대를 나오시고 대우건설 사장까지 하시는 남상국이라는 분께서, 돈 가방을 싸들고 상고를 졸업한 (노건평씨를 지칭하여) 시골의 별 볼일 없는 못난 형을 찾아 다녀서야 되겠습니까. 패가망신합니다.”
‘경기고-서울대, 노건평-남상국 실명거론, 패가망신....’ 기자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깊은 충격을 받았다. 아니 인간 노무현이 돌덩이로 나의 머리를 타격한 듯한 둔중한 충격과 혼돈이 밀려왔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약속되어 있던 점심식사 자리에 나갔다. 밥알이 아니라 모래 알을 씹는 느낌이었다. 나는 젊은 친노 그룹인 그들에게 말했다.
“노무현은 변했다. 어떻게 대통령의 입이 저토록 잔인할 수 있는가. 한 인간, 기업인으로서 남상국은 끝났다. 앞으로 그 누가 남상국을 만나겠으며, 그 가문은 또 어떻게 되는가. 인간적으로, 남상국이 경기고 서울대를 나올 때 그 가문은 얼마나 자랑스러웠겠는가. 기업인이 대우와 창업주 김우중을 구명하려는 노력은 당연하다. 잘못이 있다면 법정에서 심판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 남상국이 줬다는 로비자금 2000만원이 대통령의 저주를 받을 만큼 큰 액수인가?”
“권력 1년차 현직 대통령이 150여명의 내외신기자 앞에서 패가망신 운운한 이상, 남상국의 사회적 생명은 완전히 끝났다. 만약 내가 남상국이라면, 이제 두 갈래의 길만 남았다. 권총을 마련할 수 있다면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거나, 절에 들어가서 5년간 자서전을 쓰고 노무현 정권이 끝나면 출간하는 수밖에 없다.”
그들과 만남을 마치고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 건물로 들어서는 순간, 출입 현관벽 스크린 하단 모니터에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 한강투신 자살’이라는 자막이 흘러갔다. 두 다리가 땅 속에 박히는 기분이었다. 꾹 다문 입술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아, 권력이란 정말로 무서운 것이구나. 말 한마디가 생사람을 저렇게 죽이는구나. 노무현 당신은 사람을 죽이는 권력자로, 이렇게 변하고 말았구나. 내가 언론으로 살아 있다면, 하늘이 허락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 날을 고백한다. 당신은 변하고 말았다.”
남상국의 죽음은 대통령 측근비리, 수도이전과 민주당 분당이 대통령 탄핵국면으로 전환되는 분수령이었다. 남상국은 생물학적으로 한 번, 사회적으로 두 번 죽었다. 국회는 다음날인 12일 노무현을 탄핵하는 지랫대로 삼았다. 그 지렛대를 통해 노무현은 정국을 전환시켰다.
대통령 탄핵 국면으로 인해 선거환경은 완전히 반전되었다. 열린우리당은 4월 총선에서 152석을 얻어 대승, 민주당은 참패했고, 박근혜를 내세운 신한국당은 간신히 살아 남았다. 요한기자는 본사에 간청 끝에 청와대 출입기자직을 벗어나, 국회출입으로 이동했다.
권력의 희생양이란 측면에서 볼 때, 고 남상국 사장처럼 비극적인 사례도 드물다.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기자회견장에서 직접 판결문을 읽듯 시시비비를 정리한 뒤 ‘패가망신해야 한다’고 심판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는 유명을 달리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세운 법정에서 그는 사형언도를 받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 언론이라는 역사법정 만은 요한 갈퉁과 함께 “죽음 외에는 저항할 수 없는 ‘구조적 폭력’ 에 의한 죽음이었다”고 재심사하는 사명이 있다. 3월 10일이면 그의 기일이다. 13년이 흘렀지만, 나 한사람이라도 그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드리고 싶다.
2. 일란성 쌍생아처럼 닮은 꼴 남상국과 정몽헌 죽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남상국 죽음은 6개월 전 “현대그룹 정몽헌회장 투신사망” 사건의 재현이다. 역사적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의 실질적 주도자 정주영의 분신, 정몽헌은 왜 몸을 던져야 했을까?
2003년 8월 4일 요한기자는 부모님을 뵙기 위해 미국 방문 중이었다. 미국 방송에 돌연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의 투신 사망이라는 충격적인 보도가 떴다. 노무현대통령 5월 방미, 6월 중국 방문, 7월 일본방문, 7월 베이징 6자회담 방중까지 모두 동행 취재하는 동안, 정몽헌 회장이 삶의 저편의 길을 선택할 정도로 몰리고 있다는 낌새나 언론보도는 전혀 없었다. 모든 상황이 충격적이고 혼란스러웠다.
노무현 정권 당시 모든 인과관계의 고리들은 어지러웠다. 수년이 지난 뒤에야 북한 핵무력과 국제관계를 공부하면서 박정희의 7-4 남북공동성명과 김대중의 6-15 공동선언의 역사적 인과관계와 현실적 진행과정, 그리고 미래시간 구축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햇볕정책 실현 과정에서 정주영이라는 불세출의 경제거인이자 박정희의 기업분신이, 김대중 정권에서 기여한 눈부신 남북관계의 초석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그 논문을 북한연구학회에 “정주영 소떼방북과 김정은 목선 전방시찰”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정주영의 끊긴 생명, ‘정몽헌 죽음’의 딜레마를 고뇌하게 되었다. 정몽헌의 죽음은 정치적인 관점에서 재추적, 재평가되어야 한다. 정몽헌의 죽음은 곧 김대중 정권이 역사적 죄악을 저지른 정권으로 돌변하는 분기점이었다.
정몽헌 죽음이후,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은 퍼주기식 친북노선으로 평가되고, 노무현 정권에게는 ‘결별해야 할 구악’이라는 명분으로 돌변한다. 6개월 뒤 일어날 남상국의 죽음이 국회탄핵과 총선승리로 전환되었듯이 어머니 뱃속의 태아와 탯줄처럼 맞물려 있다.
고 남상국 전 대우건설사장(좌),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3. 노무현의 김대중 정권 배신 지점, ‘정몽헌 죽음’
2003년 1월 당시 대북송금 특검사건은 문재인 민정수석을 중심으로, 문희상 비서실상, 유인태 정무수석, 이상수 의원 등에 의해 그 양상이 확전되었다. 정몽헌의 죽음을 분기점으로 8월말부터 노무현 중심의 새로운 정당을 만들기 위한 창당작업을 본격화 한다.
그리고 6개월 뒤 2004년 3월 남상국의 죽음과 함께, 4월 총선에서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은 152석의 대승을 거둔다.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승부수적 측면에서 본다면, 정몽헌의 죽음이 알파였다면 남상국의 죽음이 오메가였다. 죽음에서 시작하고 죽음으로 승리하고, 죽음으로 매듭을 지었다.
정몽헌은 역사적 실체적 진실을 홀로 안고 삶의 저편으로 떠났다. 사랑하는 가족과 기업은 물론, 무엇보다 선친 정주영의 유업을 이루지 못한 한이 얼마나 원통했을 것인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실체적 진실이란, 대북 송금사건의 핵심적 내용이다. 정몽헌이 4차례 검찰조사를 받는 동안 그 진실을 토설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행위자 장본인의 돌연한 죽음은 모든 조사과정과 그 내용들을 묶어 휴지화시켜 버린다.
정몽헌의 죽음으로 핵심적 진실들은 모두 묻혔다. 더욱이 2016년 현재라면, 정몽헌, 노무현, 김대중 모두 이 세상을 떠났다. 이제 모든 사실들은 묻히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당시 핵심적 실체적 진실을 쥔 사람들이 그대로 살아 있다. 당시 수사를 총괄 지휘한 노무현의 부산친구 민정수석 문재인, 김대중의 내시총관 박지원이 버젓이 살아 있다.
대북 송금사건의 핵심적이고 실체적인 진실이란 대북송금의 총규모와 전달 루트에 있다.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한 총괄 지휘자는 박지원이었다. 2000년 5월 초 박태준 전 총리가 돌연 사임한다. 그 이유는 측근 조 모씨 동생의 땅 반환소송이 박태준 소유인양 둔갑된 채, 언론에 보도된 황당한 사건이다.
자존심을 훼손당하고 흥분한 총리 박태준은 대통령 김대중을 찾아가 사의를 표명하자, 김대중은 두말없이 받아버린다. 박태준은 아연실색했으나, “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너무 믿었구나”였다. 요한기자가 획득한 그 날들의 실체적 진실이다.
그리고 김대중 정권은 박태준이라는 보수진영의 수장, 즉 정치노선의 브레이크 없이 6월 정상회담을 일사천리로 추진한다. 햇볕정책은 성공을 거두는 듯 했다. 김대중은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김정일과 클린턴간의 북-미정상회담의 다리도 놓았다. 비핵 한반도 영구평화는 곧 이뤄지는 듯 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에 와서 뒤집혔다. 노무현은 김대중 햇볕정책의 모든 과정을 뒤집었고, 대북송금 사건이 핵심고리였다. 그 핵심적 맥락은 ‘송금방법’에 있었다. ‘송금 방법’을 자상하게 들여다 보면, 모든 퍼즐은 풀린다.
① 송금방법이 국가간, 혹은 기업과 국가간, 국제관계가 인정한 금융기관을 통해 공식적으로 이뤄졌다면, 김대중 정권은 정당성과 투명성을 인정받는다. 국민적 의혹이 없게 된다.
② 그러나 송금방법이 개인, 혹은 정보기관 등 소수 개별 행위자들에 의해 장막 속에서 진행되어 밝힐 수 없다면, 김대중 정권은 국민적 의혹과 역사적 과오를 면할 수 없다.
③결국 김대중 정권은 김정일 개인구좌, 국정원 자금, 현대그룹 비자금, 나아가 해외 송금은행 등의 복잡한 인과관계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리고 정몽헌의 죽음으로 그 실체적 진실은 덮이고, 박지원 임동원 구속하는 선에서 마무리 된다.
④이 사건이후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은 보수진영으로부터 역사적인 과오로 규정된다.
박지원의 역사 정치 정체성은 김대중 대북한 전략노선과 만년을 망친 김대중의 상손이다. 상손이란 내시들의 수장이다. 김대중의 상손을 자처하며, 권력자 박지원이 문재인을 욕하고, 김종인을 비난하고 있다. 모두가 정치적 수사이고 쇼일 뿐이다.
박지원은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아야 한다. 피마당 광주 5-18을 만들고, 권좌에 오른 정치괴물 전두환의 국보위 멤버가 김종인이다. 하여, 요한기자는 김종인의 정체성을 역사적 쓰레기라고 규정했다.
박지원은 쿠데타 권력을 인정받기 위해 방미 길에 나선 전두환을 초화화판으로 영접했던, 재미한인 회장이었다. 문재인이 국보위 멤버 김종인을 더불어당으로 모셔왔으니, 박지원이나 문재인이나 김종인이나 도긴 개긴이다.
박지원이 90년대 중반 귀국하여 마치 민주투사인양 김대중 대변인, 비서실장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특히 2000년 박지원은 김대중 정권 대북송금사건의 실무책임 당사자였다. 대북 경협자금이 김정일 개인구좌로 들어간 사건, 김대중 40년 정치역정을 더럽힌 치명적 사건이다.
대북 송금사건은 김대중 정권 최고업적인 6-15 남북공동선언의 진정성과 정통성, 투명성의 근간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렸다. 그 핵심 장본인이 박지원이고, 그 약점을 쥐고 정치세력 변동을 꾀한 인물이 문재인 민정수석이다.
박지원에 의해 김대중은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남겼고, 문재인은 이 과오를 붙잡고 권력이동을 꾀했다. 그리고 정몽헌은 희생양이 되어 삶의 저편으로 떠난다. 문재인을 중심축으로 한 노무현의 대북송금사건 특검수용은 노무현의 김대중 정권과의 단절, 대북한 노선의 변경, 그리고 민주당 파괴와 노무현 정당 창당으로 일사천리로 이어진다.
어느 누가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의 노선이 같다고 말할 수 있는가. 노무현은 김대중 정권과 자신의 기반인 새천년민주당, 김대중의 비핵 한반도 영구평화 전략노선, 인사들을 모두 끊고, 변경하고, 교체했다. 정권을 잡을 때까지는 김대중과 민주세력과 호남세력을 플랫폼으로 딛고 서 있었으나, 권좌에 오르고 나서는 배신했다. 그 핵심 칼날을 휘두른 검객이 문재인이다.
대통령은 합법적이고 구조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통치자이다. ‘문재인의 부산친구’를 자임하던 대통령 노무현은 친구 문재인 에게 절대적 사정권력, 민정의 칼을 쥐어줬다. 두사람은 친구라서 마치 문재인은 곧 노무현인 듯 보이기도 했다. 그 무지막지한 권력의 칼날에 의해 정몽헌의 죽음이 비롯되고, 남상국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결국 이명박 정권의 구조적이고 합법적 폭력에 의해, 노무현 죽음으로 연결된다.
박지원과 문재인은 정몽헌의 죽음을 밝혀야 한다. 정몽헌과 현대그룹은 얼마의 돈을 냈고, 얼마를 김정일 개인구좌로, 얼마를 경협자금으로 송금했는가. 그래야만 박지원이 해외구좌로 빼돌렸다는 비자금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정몽헌은 김대중 정권의 상손, 박지원이 죽였는가. 노무현 정권의 상손, 문재인이 죽였는가. 아니면 박지원에게서 시작되고, 문재인에게서 결정된 합법적 폭력의 인과관계를 맺은, 공동정범인가. 정몽헌은 어디까지 토설했고, 그의 죽음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어디까지 덮고 왜곡할 수 있었는가. 정몽헌이 안고 간 비밀이 밝혀져야만, 그 억울한 죽음도 풀린다.
요한기자는 박지원과 문재인의 정치 역사 정체성을 규정한다. 박지원은 김대중 후반기를 망친 상손이다. 박지원은 5-18 유혈 사태를 통해 권력을 쥔 전두환을 미국에서 화려하게 영접한 과거를 벗어날 수 없다. 박지원이 역사적인 쓰레기 김종인을 욕해봐야, 비웃음을 살 뿐이다.
박지원의 미국 시절, 혹은 문광부장관 시절 나돌았던 화려한 편력은 아예 논외로 한다. 언제까지 김대중 후광 속에 박지원의 과오가 덮일 수 있다고 여기는가. 호남과 목포사람들이 박지원을 위해 존재하는 홍어x으로 보이는가.
문재인은 김대중과 노무현의 역사성과 정치 노선을 단절시키고, 민주정치를 변질시켰다. 시간과 사건을 중심축으로 본다면, 정몽헌, 남상국의 죽음, 나아가 노무현 죽음과 무관치 않은 ‘냉혈 칼잡이’였다.
노무현 정권은 민정수석과 상손 문재인으로부터 시작하여, 끝났다. 문재인은 스스로 돌이켜 삼가야 한다. 문재인은 진정한 친노인가? 최소한 후보시절까지, 노무현정신은 영호남 통합정신에 있다. 노무현의 호남친구인 염동연은 ‘문재인은 친노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자른다.
정리하면, 박지원과 문재인의 정체성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①김대중-노무현의 상손으로서 권력을 독점하고, ②김대중-노무현 노선을 단절시키고, 민주세력의 역사성을 왜곡, 변질시키면서, ③같은 당안에서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했다. ④또한 두 사람은 물구나무서기를 해서라도 4-13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하려는 생존 의지도 똑 같다.
박지원 문재인, 두 상손에게 공지하여 드린다. 서울 청와대에서 동쪽으로 가면, 도봉구 창동과 노원구 월계동 사이에 야트막한, 초안산이 있다. 초안산은 조선시대 내시들이 죽으면 묻히던 북망산이다. 박지원· 문재인은 북망의 초안산으로 들어가라.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성경 요일 3:8)
박요한 선임기자/정치학박사 yohanlett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