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다가올 ‘시련의 계절’ 준비하고 있다”
▲ 부임 첫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낸 선동열 삼성 라이온즈 감독은 앞으로 찾아올 시련을 어떻게 극복해 가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10월26일 아시아시리즈인 코나미컵을 앞두고 훈련을 재개한 삼성 선수단 더그아웃에서 만난 그의 눈은 충혈돼 있었고 얼굴은 여전히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한국시리즈 우승 후 그가 보낸 일상의 단면을 엿본 듯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여도 야구와 관련해선 계산이 확실한 선동열 감독(42). 지난호 ‘만나봅시다’에서 ‘너무 빈틈이 안 보여 인간미가 덜하다’고 딴지를 걸었던 탓에 이번엔 제대로 ‘빈틈’을 잡아보려고 처음부터 선 감독에게 들이댔다.
―너무 빨리 우승한 거 아닌가. 우승 다음엔 내려가는 일만 남은 거 아닌가.
▲허허 이거 왜 이러시나. 8개팀 감독 모두 목표는 우승일 것이다. 감독치고 우승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우승 다음에 왜 내려가나. 우승 다음에 또 우승하면 되는 거지.
―가진 게 많은 감독 같다. 남부러울 게 없는 감독처럼도 보이고.
▲질문이 좀 삐딱한 게 어째 좀 그러네. 물어본 거니까 대답은 하겠다. 물론 난 다른 감독에 비해 많은 걸 가졌다. 그들 입장에선 부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내 앞엔 기쁨보다 시련이 더 크게 자리할지도 모른다. 아니 절대적으로 시련의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 그걸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참고로 올해 1위를 고수하면서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편하게 유지한 적은 없다. 2, 3위 팀한테 항상 쫓기는 신세였다. 한 번은 이런 생각이 들더라. 1위를 하고 있는 감독도 이렇게 고민이 많은데 성적이 안 좋은 감독은 과연 어떻게 버틸까 하는…. 감독, 이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 기자(왼쪽)와 선동열 감독 | ||
▲10년 넘게 같이 지내봐라. 비슷하게 안 보일 수가 없다. 더욱이 체격도 그렇고. 하하. 그러나 나와 김 사장과는 판이하게 다른 야구를 하고 있다. 우리 사장은 공격쪽에 치중했고 난 수비쪽에 신경 쓰는 게 가장 큰 차이다. 닮은 꼴이라면 한국시리즈같이 단기전 같은 데서 한 템포 빠른 선수 교체다. 난 우리 사장한테 그런 점을 배웠고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배운 걸 제대로 써 먹었다. 그래도 색깔은 엄연히 다르다.
―감독 취임사에서 5년 동안 세 번 우승하겠다고 공언했다. 어떻게 그런 수치가 나왔나.
▲허허. 보통 취임사에선 통 크게 얘기하는 거라고 해서 좀 부풀린 게 사실이다. 실력의 차이가 나도 한번 붙어보겠다고 나서는 게 스포츠 아닌가. 솔직히 5년 동안 세 번은 좀 그렇고 두 번은 우승할 자신 있었다. 그런데 첫 해 우승을 하고 나니까 우승에 대한 부담이 사라졌다.
―사적인 질문 좀 하겠다. 대구에서 줄곧 혼자 생활했는데 운동장에 있는 시간보다 집에서 혼자 지내는 생활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뭐니뭐니해도 마누라가 해주는 따뜻한 밥 먹는 게 최고의 행복이다. 이건 매일같이 끼니 걱정 해야 하고 빨래와 청소도 챙겨야 하니까 홀아비가 따로 없었다. 물론 구단에서 다 신경 써줘 내가 뭐 고생한 건 없었다. 그래도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게 가장 힘들더라.
―얼마전 박찬호 선수가 결혼을 발표했다. 선 감독은 결혼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뭔가.
▲난 와이프를 중매로 만나 네 번 보고 결혼했다. 운동선수의 아내라면 내조가 제일 중요하다. 가정이 편해야 남자가 밖에서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점에서 박찬호는 결혼이 늦은 편이다. 좀 더 빨리 했으면 훨씬 더 좋은 성적을 냈을 것이다. 난 스물여덟 살에 결혼했다.
―그동안 부부사이의 위기는 없었나.
▲거짓말 같겠지만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다. 집사람이 편하게 배려한다. 어쩌면 한국시리즈 우승이 와이프한테는 ‘선물’이라기보다는 ‘인내의 산물’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야구를 안 하고 공부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공부도 못한 편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상위권에 들어 있었다. 중학교 때는 오후 운동 끝나고 가정교사한테 따로 지도를 받을 정도로 공부에 열중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도저히 두 가지를 병행하기가 힘들더라. 그래서 공부를 포기한 것이다.
―감독이 선수 때보다 좋은 것 세 가지만 말해 달라.
▲첫째는 언론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자들이 감독 말 듣고 다 기사를 쓰기 때문에 언론을 통해 선수들 분위기를 다잡기도 했다. 그리고… 음, 그 다음엔 없는 것 같은데? 언론 플레이하는 것 말고 선수 때보다 좋은 게 하나도 없다. 선수는 자신만 잘 하면 되지만 감독은 어디 신경 쓸 게 한두 가지인가.
―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아닌가. 항간에선 선 감독한테 술이 없었더라면 인생의 낙도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데 외견상 무드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인다.
▲허허. 나도 사람이고 남자다.
―아들 민우군(15)이 골프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원래는 야구를 하고 싶어했다는데.
▲골프하는 게 야구보다는 더 나을 것 같아서 골프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또 내가 걸어온 길을 자식한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결정은 본인이 했다. 난 방향만 잡아줬을 뿐이다. 지금까지 같이 라운딩 한번 못해봤다. 이제 시간되면 같이 골프도 치고 그랬음 좋겠다.
―오는 10일 일본에서 코나미컵이 열린다. 이승엽 선수와 맞대결이 예상되는데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외견상의 실력 차이는 분명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지진 않을 것이다. 쉽게 얻는 기회가 아니기 때문에 열심히 해보겠다.
―아, 참.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다. 그동안 살면서 운 적이 있었나.
▲왜 운 적이 없었겠나. 초등학교 6학년 때 백혈병을 앓던 형이 돌아가셨을 때와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많이 울었다. 이겼을 때도 몇 번 울어본 것 같다. 져서 운 적은 딱 한 번 있다. 84년 LA올림픽 때 동메달을 놓고 혈전을 벌이다 9회 팔에 공이 맞았는데도 아픈 걸 참고 혼신의 힘을 다해 연장 12회까지 던졌지만 패했을 때다. 그때 경기 후 감독한테 싫은 소리를 듣는데 정말 눈물이 나더라.
선동열 감독이 이제야 ‘빈틈’을 조금은 내보인 듯했다. 선 감독은 인터뷰 내내 ‘자기도 사람’이라는 말을 즐겨 썼다. ‘국보’ ‘불멸’ ‘명장’ 등 대단한 타이틀 속에서 화려하게 포장된 이미지를 걷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 그는 또 다른 승부를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