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독 품은 승엽이를 봤다”
▲ 스포츠투데이 | ||
27일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전날의 떨림을 전한 이씨는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때, 그리고 이승엽이 56호 홈런으로 홈런왕에 올랐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기쁘고 감격스럽다는 소감을 나타냈다.
“승엽이가 일본에서 정말 고생 많이 했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도 경험하면서 참으로 힘든 시간들을 보냈는데 이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중간에 그냥 돌아오길 바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승엽이가 버텼다. 2년 계약은 채우겠다면서. 내 자식이지만 정말 자랑스럽다.”
‘국민타자’를 아들로 둔 이춘광씨는 평소 겸손한 태도로 인해 야구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대상이다. 이승엽이 미국이 아닌 일본으로 준비 없이 떠나는 바람에 몸고생 마음고생을 하며 보낸 시간들이 아버지 이씨한테는 또 다른 고통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우승이 확정된 후 승엽이가 전화로 ‘아버지 고생하셨습니다’하고 말하는데 난 아무 말도 못했다. 그냥 애썼다는 말만 반복했다. 승엽이 에미도 함께 기뻐했다. 승엽이 야구시키고 이렇게 희로애락을 반복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이씨가 보는 이승엽의 부활은 지난 겨울의 동계훈련이었다. 일본 첫 해 ‘국민타자’ ‘홈런왕’의 명예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에서 귀국, 대구에서 두문불출하며 혹독한 체력 훈련과 타격 훈련을 반복한 피나는 노력으로 몸쪽 공에 약했던 약점을 딛고 넘어서는 바탕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부상 당할까봐 걱정이 될 정도로 정말 열심히 훈련만 했다. 승엽이가 그렇게 지독하게 훈련한 모습은 처음 봤다. 그때 이런 얘길 했다. 일본에서 성공하기 전에는 절대로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계약 기간 동안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말하는 걸 보니까 마치 독을 품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 지난해 11월 귀국하던 이승엽 부부. | ||
“황우석 박사가 유전자로 난치병도 치료한다는데 승엽이 에미도 그런 혜택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승엽이한테는 승엽이 에미가 ‘영원한 숙제’처럼 존재한다. 이제 손자도 태어났는데 할머니 노릇이라도 하면서 그렇게 여생을 보냈으면 소원이 없겠다.”
이씨는 올시즌 이승엽 부활의 원인을 태어난 지 2개월된 손자 은혁이한테 돌렸다. 아들이 생기면서 이승엽의 마음이 평정을 되찾았고 목표도 새로 생겼으며 용기까지 얻게 되었다는 것.
“오늘 아침 며느리(이송정씨)와 통화를 하면서 결혼 후 처음으로 ‘수고했다’는 말을 했다. 그동안 많이 서운했을 것이다. 나한테 단 한 번도 칭찬을 듣지 못했다. 오히려 호통만 듣고 살았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운동 선수의 아내로 산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그래도 잘 견뎌낸 것 같아 고마웠다.”
이승엽의 성적이 신통치 않자 한때 기자들 사이에선 이승엽-이송정 부부의 위기설이 나돈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아버지 이씨는 “어디까지나 소문이었고 야구가 안 될 때는 으레 있을 수 있는 얘기였다”면서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겼다.
올시즌을 끝으로 롯데와의 2년 계약이 끝나는 이승엽의 거취 문제가 조명받고 있다. 이씨는 이미 일본과 미국의 여러 팀으로부터 ‘콜’을 받고 있다고 처음으로 밝혔다.
“일단 승엽이가 귀국한 뒤 조용히 의논할 예정이다. 롯데와의 재계약도 검토는 하겠지만 지금처럼 주전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선 곤란하다. 더 이상 벤치 신세로 머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메이저리그도 이름만 보진 않겠다. 어느 나라, 어느 팀이든 승엽이가 주전으로 뛸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