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다 보니 ‘새로운 인생’ 보이더라
▲ 팬카페를 두 개나 갖고 있는 얼짱 마라토너 김영아씨. 은행 지점에서 근무하던 김씨는 마라톤 덕에 회사 홍보부로 발령이 났다고 한다. | ||
내년이면 쉰 살을 바라보는 허숙회씨(49)는 달리기를 조금 해봤다는 사람들에게는 낯선 인물이 아니다. 허씨의 주종목은 42.195km를 완주하는 마라톤 풀코스보다 몇 배가 되는 거리를 뛰는 울트라 마라톤. 평범한 주부가 기본 100km에서 300km 이상을 뛴다는 게 쉽게 상상은 가지 않지만 그에게 ‘울트라’라는 말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목디스크로 1년6개월을 고생하던 허씨가 마라톤이 만병통치약이라는 말만 듣고 무작정 시작했던 건 5년 전. 오로지 건강을 위해서 시작했던 달리기였지만 ‘아줌마의 파워’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10km 대회에 참가한 허씨가 4개월이 되면서부터는 하프 마라톤에 도전장을 던졌다.
허씨는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200km 완주를 비롯해 경기도 강화에서 강원도 경포대까지 무려 311km를 횡단 완주한 경험도 갖고 있다. 허씨의 기록은 55시간 40분으로 3백여 명의 참가자 가운데 12등, 여자 부문에서는 1등이었다.
▲ 허숙회(49) 마라토너 | ||
외환은행 홍보부에 근무하는 김영아씨(33)는 이 바닥에선 얼짱, 몸짱, 실력짱으로 통하는 유명인사다. 2003년 5월 금융노조마라톤대회 하프코스에 출전한 것을 계기로 마라톤과 인연을 맺은 김씨는 1천5백 명 이상의 회원이 가입한 팬카페를 2개나 갖고 있을 정도로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김씨는 마라톤으로 인사발령까지 받은 특별한 주인공이다. 지점에서 근무하던 김씨가 마라톤에서 좋은 실력을 뽐내며 회사를 널리 홍보(?)하게 되자 아예 홍보부로 전격 발탁된 것. 아직 그의 팬카페에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직접 얼굴을 보고 통장을 만들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되냐’는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고.
2004년 10월 춘천마라톤대회에서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꿈이라는 ‘서브3(3시간 이내 풀코스 완주)’를 13초 차로 아깝게 놓쳤던 김씨는 지난해 9월 MBC마라톤챔피언십 국제대회에서 2시간 58분 9초로 3시간 벽을 깨며 주변 동호인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서브3를 기록한 여자 선수는 국내에 5명에 불과할 정도로 쉽지 않은 기록이다.
▲ 이정숙(41) 마라토너 | ||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처럼 이씨가 감을 잡자 왕년의 내공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2~9월까지 무려 26개 대회에서 우승했던 것. 하지만 이런 성적에 비례해 이씨는 마음고생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선수 출신을 곱게 보지 않는 주변의 시선 때문이었다. 이씨는 “우승해서 받은 상금은 지도하고 있는 엘리트 선수들을 위해서 대부분 다시 사용한다”면서 “쉬다가 몸을 만들고 대회 참가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일반인들에게 모범이 되는 선수 출신 아줌마가 되고 싶다는 말로 새해소망을 대신했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