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 몰린 쥐’ 고양이 약점 덥석…미국을 협상테이블로 유도하는 효과적 압박 수단
지난 2월 29일, 공개 기자회견에 응하고 있는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 사진출처=조선중앙TV
북한 당국은 지난 2월 29일 <조선중앙TV>를 통해 버지니아주립대학에 재학 중인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의 기자회견을 전격 공개했다. 웜비어 씨는 지난 1월 중국을 통해 북한 여행길에 올랐지만 현지에서 선전물을 훔쳤다는 이유로 북한 당국에 긴급 체포됐다. 당시 그는 호텔에 붙어있던 선전물을 자국에 가져갈 목적으로 떼어낸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웜비어 씨는 회견을 통해 “내가 북한을 반대하여 엄중한 범죄를 감행한 미국인이기에 고문과 정신적인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호텔급 숙소에서 인도적인 대우를 받으며 잘 지냈다”라고 우호적인 입장을 전했다.
북한 당국은 이어 지난 16일 웜비어 씨에 대한 최고재판소 재판 결과를 공개했다. 그는 결국 앞서의 혐의로 북한 형법 제60조 ‘국가전복음모죄’를 적용받아 노동 교화형 15년을 선고받았다. 웜비어 씨는 ‘무기형’까지 예상된 상황 속에서 유기형을 받게 됐지만 결코 가벼운 형량이 아니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반응이다.
참 묘한 시기에 묘한 일이 발생한 셈이다. 현재 북한은 사실상 후견국을 자처해온 중국의 참여 속에서 역대 최강 수준이라는 UN대북제재 압박을 겪고 있다. 올 초 핵실험 및 발사체 실험에 이어 최근까지 중·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며 국제사회를 긴장케 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일각에선 벌써부터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북한이 정치적 협상을 염두에 두며 ‘미국인 인질 볼모’라는 초강수를 꺼내든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미국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웜비어 씨의 유죄판결 직후 미 국무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한이 미국 시민을 정치적 볼모로 이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북한이 이를 공개적으로 다루는 것 자체가 미국 시민을 볼모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북한에 인도주의적 석방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일요신문>과 통화한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미국 정부가 공식적인 접촉(UN에서 미국과 북한 외교라인 접촉을 의미함)은 물론 중국과 한국 내 네트워크를 활용해 휴민트(비공식 대인 접촉)를 작동하기 시작했다”라며 “결국 김정은은 미국인 억류라는 카드를 통해 미국을 다시금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고 현재의 제재조치를 철회시키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 나름대로 미국 내부 사정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현재 미국이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이를 효과적인 카드로 활용하는 것 같다. 선거 국면에서 미국의 현 민주당 정부 입장에서 보면 적대 국가 내 ‘자국민 억류’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북한은 웜비어 씨 외에도 한국계 미국인과 캐나다인을 한 명씩 억류 중이다. 한국계 미국인 사업가 김동철 씨는 간첩혐의로 북한 당국에 체포돼 현재까지 수감 중이다. 북한 당국은 김 씨가 외부의 사주를 받고 북한 내 정보를 빼돌리려 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상황이다.
지난해 1월 억류된 한국계 캐나다인 임현수 목사는 지난해 12월 국가전복음모혐의를 받고 노동 교화형을 수행 중이다. 임 목사는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북한을 오가며 인도주의적 지원 사업을 해온 인사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이 세 장의 인질 카드를 어떤 식으로든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까지 선례를 살펴본다면 북한은 이러한 정치적 인질 카드를 시시때때로 사용해왔다. 이 카드를 꺼낸 당시 상황과 시점을 놓고 본다면 좀 더 이해가 쉽다.
가장 최근인 2014년 11월, 북한은 억류 중이던 미국인 케네스 배 씨와 매튜 토드 밀러 씨 등 두 명을 석방한 바 있다. 당시 UN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선 북한의 인권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이 시기 북한은 두 명의 억류 미국인을 석방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한 바 있다.
더 극적인 사례는 2009년 미국인 여기자 억류 사건이다. 당시 <커런트TV> 소속의 로라 링, 유나 리 등 여기자 두 명은 그 해 3월 국경을 넘어 취재활동을 하다 북한 당국에 억류됐다. 두 여기자는 결국 2009년 6월 노동교화형 12년을 선고받아 국제사회에 큰 파장을 던졌다.
북한은 2008년 8월, 플루토늄 양 불일치 의혹에 대해 마땅한 해명을 하지 못하고 2007년 맺은 2·13합의를 철폐했다. 핵불능화를 철회한 북한은 이듬해 5월 2차 핵실험을 감행하며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한 바 있다. 이 시기 북한은 여기자 두 명 억류라는 카드를 꺼내들며 결국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특사자격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목적을 이룬 북한은 여기자들을 석방하고 미국과의 대화를 재개해 2011년 북-미 잠정합의까지 나아간 바 있다.
앞서의 대북 전문가는 “공은 미국으로 넘어왔지만 이 문제에 대해선 미국도 마땅한 방책이 없다. 이전 사례를 보자면 자국민 억류 카드를 두고 벌인 북-미 싸움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전패였다”며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의 협조 여부다. 이전 여기자 억류 당시에도 미국은 우리 정보 당국을 통해 휴민트를 가동한 바 있다. 미국도 문제지만 우리 당국도 어느 선에서 협조를 할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