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쓴 전사들 까칠한 아드보 ‘폭발전야’
▲ 독일에 입성한 태극전사들이 7일 오전(현지시간) 레버쿠젠 바이 아레나에서 열린 강훈련을 마친 후 미팅을 하는 동안 아드보카트 감독이 자리를 비켜주고 있다. 연합뉴스 | ||
2002년 4강 신화의 재현을 노리는 한국 대표팀 선수들도 본격적인 열전을 앞두고 독일 레버쿠젠 바이아레나 경기장 등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조직력을 가다듬고 있다. 그러나 선수들의 표정이 밝지가 않다. 좋게 보면 결의에 찬 단단한 인상일 수도 있고 다른 쪽으로 해석하면 긴장감으로 똘똘 뭉친 편치 않은 얼굴들이다. 흥미로운 건 대표팀 선수들을 맞이하는 재독 동포들만 축제 분위기라는 점이다. 재독 동포들은 한국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하며 다양한 응원전을 준비하는 등 달뜬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지만 선수단에서는 이런 흥겨움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대표팀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각도 편치는 않다. ‘아드보카트호’의 유쾌하지 않은 ‘현실’을 구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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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6일 독일 베르기슈 글라드바흐의 슐로스 벤스베르크 호텔에선 ‘작은 축제’가 열렸다. 한국 월드컵 대표팀의 베이스캠프가 이곳에 차려진 데다 바로 그날은 태극전사들이 독일 입성 후 처음으로 베르기슈 글라드바흐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독일 한인들은 물론 베르기슈 글라드바흐 시민들까지 2천여 명이 모여 춤과 노래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며 대표팀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도착 예정 시간에서 1시간 30분을 훌쩍 넘긴 뒤에 나타난 선수들의 얼굴은 피곤에 지쳐 교민들이 준비한 환영 행사가 전혀 기쁘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더욱이 환영 인파가 통제를 벗어나 선수들을 에워싸면서 호텔 앞마당은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독일에 첫 발을 내딛은 태극전사들의 첫 날은 이렇게 피곤과 혼돈이 뒤섞인 참으로 힘든 하루였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독일에서의 느낌도 다르지 않았다. 독일 한인회가 몇 달 전부터 준비한 응원전은 입이 절로 벌어질 만큼 대단한 규모와 조직력과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태극호의 분위기는 주변의 달뜬 분위기와는 조금 다르다.
선수들은 철저히 말을 아낀다. 이천수는 아예 입을 꾹 다물었고 안정환은 기자들의 시선을 피해 다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박주영, 박지성, 이영표만이 살짝 미소만 지었고 그 외 나머지 선수들은 대부분 굳은 표정 일색이었다. 김남일에게 ‘아픈 데는 어떠냐’고 묻자 ‘계속 아프다’는 대답을 얻어낸 게 대표팀 선수들과 나눈 대화의 전부였다. 아! ‘친절한 영철씨’ 김영철은 난장판의 상황에서도 기자의 질문에 이런저런 설명을 곁들이며 특유의 입담을 과시했다.
환영 행사 아닌 환영 행사가 ‘후다닥’ 끝난 뒤 선수들이 모두 호텔로 들어가자 한 교민이 이렇게 볼멘소리를 터트렸다. “아니, 선수들 표정이 왜 그래요? 축구하러 온 게 아니라 무슨 혼나러 온 사람들 같아요. 우리가 얼마나 선수들을 기다렸는데요. 웃는 선수가 한 명도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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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 레버쿠젠에 있는 바이아레나 경기장에서 대표팀 선수들의 독일 입성 후 첫 훈련이 시작되었다. 1시간 30여분의 훈련이 끝난 뒤 인터뷰 대상자로 뽑힌 조재진에 이어 아드보카트 감독이 마이크 앞에 섰다. 그런데 그의 첫 마디가 날씨 얘기였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기후에 대해 언론이 문제를 삼자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심히 마음이 상했었나 보다. “오늘도 날씨에 대해 물어볼 것 같다”고 입을 연 뒤 “이곳(독일) 날씨가 그렇게 좋으냐”며 기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 지난 6일 독일 베르기슈 글라드바흐의 슐로스 벤스베르크 호텔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태극전사를 환영하러 나온 교민과 독일인들. 그러나 도착 예정 시간에서 1시간 30분을 훌쩍 넘긴 뒤에 나타난 선수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에 한 교민은 “혼나러 온 사람들 같다”며 볼 | ||
대표팀 부임 초기에 한없이 자상하고 친절하게 보였던 아드보카트 감독이 월드컵 개막과 함께 점차 예민해지고 있었다. 이미 이 부분은 한국에서 치른 두 차례의 평가전 이전부터 나타난 현상이지만 스코틀랜드와 독일에선 더더욱 그의 ‘색깔’이 두드러지고 있다.
기자들이 약간 ‘까칠한’ 질문을 던지기라도 하면 곧장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농담을 곁들인 가시 돋친 대답을 서슴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두고 보자’면서 벼르는 기자들이 생겨날 정도다.
더욱이 대표팀 선수들의 훈련을 진두지휘하면서 월드컵 이후 자신의 진로를 결정해 놨다는 보도가 외신을 통해 여러 차례 알려졌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연고를 둔 러시아 프로축구 1부 리그팀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월드컵 이후 2년간 200만 달러라는 좋은 조건에 계약했다는 소문이 거의 사실로 굳혀지고 있다. 물론 아드보카트 감독은 ‘루머일 뿐’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아드보카트 감독이 월드컵 이후 ‘마이 웨이’를 택한 데 대해 선수들은 어떤 반응을 나타낼까. 대표팀의 한 선수는 “믿고 따라갈 뿐이다. 지금은 월드컵만 생각하고 싶다”며 애써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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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분’이 오셨다. 6월 8일 바이아레나경기장에 월드컵 선수 단장인 대한축구협회의 이회택 부회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부회장은 4년 전과 지금 대표팀의 가장 큰 차이에 대해 ‘시간’이라고 말했다. 즉 한국 대표팀이 유럽의 여러 나라들처럼 뛰어난 스피드와 전력을 자랑하긴 어렵지만 4년 전처럼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지고 조직력을 가다듬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모습의 대표팀이 되었을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2주만 더 일찍 모였더라면’하는 아쉬움을 전하는 이 부회장의 얼굴엔 수심이 깊어만 갔다.
이 부회장의 지적처럼 2주라는 시간 차이가 대표팀의 미래를 좌우하는 바로미터가 될까.
본격적인 시합이 시작되기 전 원고를 마감해야 하는 상황에서 ‘뭔가’ 확실한 기사를 담을 수 없는 답답함을 가지고 수많은 의문 부호만을 안은 채 글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