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빼고 다 바꾸면 ‘풀 체인지’, 옵션만 건드리면 ‘연식 변경’
자동차 메이커들은 고객의 관심을 받기 위해 늘 새로운 차들을 시장에 내놓는다. 가끔 정신이 없을 정도로 많은 신차(연식변경 포함)들이 쏟아지기도 하는데, 단계별로 그 변화들을 파악해 보면 어느 정도의 변화를 ‘신차’라고 해야 할지 감이 올 것이다.
뉴 모델, 풀 체인지, 마이너 체인지, 페이스 리프트, 연식 변경은 명확하게 정의되는 개념은 아니다. 기술적·객관적 용어라기보다는 심리적·직관적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최근 자동차 메이커들이 워낙 다양하게 변종들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전통적인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추세다.
‘뉴 모델’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카테고리의 자동차다. 사진은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하이브리드.
뉴 모델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카테고리의 차가 새로이 나왔을 때를 말한다. 2014년 나온 아슬란(현대차), 올해 초 나온 아이오닉(현대차), 니로(기아차) 등이다. 이들은 기존에 유사한 차량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체인지’라는 표현을 전혀 쓸 수 없다.
과거에는 동일한 세그먼트에서도 뉴 모델이 나오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아반떼, 쏘나타, 그랜저처럼 전통을 이어가는 추세이기 때문에, 모양이 완전히 변하는 뉴 모델보다는 특징적인 요소를 연결시켜 풀 체인지를 추구하는 경향이 크다.
‘풀 체인지’는 섀시 구조가 완전히 바뀌는 것을 말한다. 생산라인을 새롭게 세팅해야 하므로 많은 비용이 든다. 사진은 기아자동차 신형 K5.
풀 체인지는 동일한 모델이지만, 디자인을 비롯한 차의 모든 요소들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것이다. 이때 기준이 되는 것은 외관 부품을 찍어내는 금형에서부터 자동화된 섀시 조립 공정을 모두 바꾼다는 뜻이다.
최근의 자동차 섀시는 90% 이상 자동화된 로봇이 생산하는데, 용접 포인트를 설정하는 등 모든 과정을 일일이 프로그래밍해야 하므로 굉장히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 큰 투자를 한 만큼 몇 년 동안은 외관을 유지해야 이익을 낼 수 있다. 잘 팔리지 않는 차는 풀 체인지도 어렵다. 판매가 너무 안 좋으면 회사가 손실을 감수하고 풀 체인지를 결단해야 할 때도 있다.
지난해 나온 뉴 K5는 풀 체인지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외모는 구형 모델과 비슷하지만, 내부 섀시 구조는 완전히 새롭게 설계됐다. 기존 모델의 디자인이 워낙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다 보니, 디자인을 완전히 변경해 호불호가 갈리는 것보다, 안전하게 유사성을 계승하는 방향으로 나간 것이다.
뉴 K5의 풀 체인지는 2014년 신형 쏘나타가 나왔을 때 이미 예고됐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동일한 세그먼트의 차량은 섀시를 공유하는데, 외관을 감싸는 철판 안쪽 섀시는 거의 동일하다. 쏘나타 풀 체인지 모델이 나왔다는 것은 곧 K5의 풀 체인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했다.
유사한 사례로 지난 2010년 나온 현대차 아반떼(MD)와 2012년 나온 기아차 K3를 들 수 있다. 이전까지 현대·기아차 준중형급은 후드가 비교적 긴 편이었지만, 2010년 아반떼는 후드가 짧은 형태로 바뀌었다. 기아차 포르테 후속인 K3는 당시 아반떼처럼 숏 후드 스타일링으로 바뀌었다. 즉 현대차의 풀 체인지는 기아차 신모델의 예고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새로운 섀시가 도입될 때 현대차부터 적용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기아차의 디자인 및 상품성의 경쟁력이 상당하지만, 한때는 현대차의 서자 취급을 받을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개발의 주력은 현대차에 집중된다.
그럼 포르테 이후 나온 K3는 뉴 모델일까, 풀 체인지일까? 좀 모호하지만, 메이커가 차명을 바꿨으므로 뉴 모델에 대한 의지가 좀 더 강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해외에서는 K3 대신 포르테로 판매되고 있어서 풀 체인지로도 볼 수 있다.
‘마이너 체인지’는 외관은 그대로 둔 채 엔진, 변속기 등 중요 부품의 변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기아자동차 포르테는 아반떼에 적용된 1.6리터급 직분사 엔진으로 변경된 바 있다.
마이너 체인지는 파워트레인의 변화에 중점을 둔 변화다. 새로운 엔진 또는 변속기를 적용했는데, 외관이 바뀌지 않으면 잠재고객이 알아채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파워트레인(엔진과 변속기)이 바뀌었다는 것은 신차급의 변화다. 국토교통부에는 신차로 신고해야 한다. 이 경우 ‘풀 체인지’까지는 아니어도, ‘마이너 체인지’라고 강하게 어필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2010년 현대차 아반떼(MD)는 준중형급으로는 국내 최초로 직분사 엔진이 적용됐다. 얼마 되지 않아 기아차 포르테에 적용됐는데, 외관은 거의 변하지 않고 파워트레인만 바뀌었다. 신차 출시(K3, 2012년)까지 기다리기에는 새 엔진을 묵히기가 아까웠던 것이다.
자동차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없는 일반 소비자라면 차의 외관에 더 관심이 많겠지만, 차를 만드는 엔지니어들에게는 주행 성능과 관련된 파워트레인의 변화는 곧 새로운 차를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페이스 리프트’는 라디에이터 그릴, 헤드램프, 범퍼 등 플라스틱 부품들이 변화된다. 그러나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처럼 후드 전면부 절단면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페이스 리프트는 말 그대로 차의 얼굴(페이스)인 라디에이터 그릴, 헤드램프, 전면 범퍼 등을 바꾸는 것이다. 이때 금속제보디는 변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왜냐 하면 섀시를 건드리려면 자동화된 공정을 새로이 세팅해야 하는데, 이것이 만만치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자동화된 로봇들의 동작을 최적화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데, 기왕 건드릴 거면 차라리 뉴 모델을 만드는 것이 낫다.
그래서 플라스틱으로 된 부품들만 교체하는 것이다. 페이스 리프트만 잘 해도 차의 인상이 확 달라지는데, 르노삼성의 SM3, SM5, SM7이 대표적이다. 가끔 전면 펜더까지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자동차 섀시에서 유일하게 전면 펜더만이 사람 손으로 조립되는 부품이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 렉스턴의 최근 모델과 직전 모델을 비교해 보면 헤드램프의 형상 변경만으로도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모험을 한 경우로, 후드 전면부만 바꾸는 사례가 있다. 최근엔 후드도 로봇이 조립하는데, 앞부분 형태를 살짝 커팅하는 정도의 변화는 공장 프로세스를 손대지 않고도 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가 있다. 최근 모델과 직전 모델을 보면, 동일한 보디에서 후드 절단면을 살짝 변경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식 변경’은 해가 바뀔 때 옵션 적용 등의 변경을 통한 최소한의 변화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는 벌써 2017년형이 등장했다.
연식 변경은 자동차가 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변화다. 안개등의 형태를 바꾼다든지, 헤드램프 또는 리어램프 내부의 면발광 부품을 바꾼다든지 하는 것이다. 외관 외에도 내부 옵션에서 선택사양을 기본사양으로 바꾼다든지 하는 변화도 포함된다. 만약 연식 변경이 없다면, 2016년 모델과 2017년 모델이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에 신모델을 살 필요성이 줄어든다.
한편 10년여 전만 해도 연식 변경은 연말에 이뤄졌지만, 메이커끼리 연식 변경 경쟁을 하며 한두 달씩 출시 시기를 앞당기다 보니 지금은 연초에 다음해 연식 모델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제네시스·싼타페(현대차), 쏘렌토(기아차), 트랙스(한국GM) 등 주요 차종들은 이미 올해 1분기에 ‘2017년형’ 꼬리표를 단 연식 변경 모델이 나왔다.
우종국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