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잉 등 대다수 작년 성적 신통찮았지만 적응 마친 뒤 승승장구
현재 인제 하늘내린(6승 1패), 서울 부광탁스(5승 2패), 포항 포스코켐텍(5승 2패), 경기 SG골프(4승 3패)가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들 팀에는 중국과 일본의 여자 용병 기사들이 몸을 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재 여자바둑리그에 뛰고 있는 용병은 5명으로 중국랭킹 1~3위에 올라있는 위즈잉 5단(부광탁스), 왕천싱 5단(포스코켐텍), 루이나이웨이 9단(SG골프)과 일본랭킹 1~2위 셰이민 6단(호반건설), 후지사와 리나 3단(인제)이 그들. 여자바둑리그의 활력소인 동시에 팀 성적의 중심에 서 있는 ‘여자 용병’들을 진단해봤다.
중국 랭킹 1~3위인 위즈잉 5단, 왕천싱 5단, 루이나이웨이 9단(왼쪽부터).
원년인 지난해에도 4명의 기사들이 여자바둑리그에서 뛰었다. 하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기대를 모았던 위즈잉은 4승 3패에 그쳤고 루이나이웨이는 2승 3패, 대만의 헤이자자는 1승 5패에 그쳤다. 왕천싱만이 3승 1패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출전이 잦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달라졌다. 작년 적응을 마친 용병들이 본격적으로 국내 팬들에게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효과를 먼저 본 것은 경기 SG골프다. SG골프는 올해 개막하자마자 2연패를 당했는데 루이나이웨이 9단이 합류한 3라운드부터 3연승을 거두며 하위권 탈출에 성공했다. 루이는 현재 4승 1패로 SG골프의 상승세를 견인하고 있다.
부광탁스는 팀의 1주전 최정과 함께 세계여자바둑계를 양분 중인 위즈잉을 2년 연속 보유 중이다. 최정과 위즈잉을 보유하고도 작년 부광탁스는 철저한 엇박자 행보를 보이며 꼴찌로 리그를 마감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확 달라져서 현재 우승 영순위로 꼽힌다. 위즈잉이 5승 1패, 최정이 5승 2패를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 7라운드에서 인제 하늘내린에 지기 전까지 줄곧 1위를 달렸다.
일본 랭킹 1~2위인 셰이민 6단, 후지사와 리나 3단(왼쪽부터).
이다혜 호반건설 감독은 “셰이민이 일본 내에서 타이틀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어 일정이 빡빡하다. 본인도 출전이 적은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한국의 대국료가 일본에 비해 적지만 일본 기사들은 여기서 경험을 쌓고 공부한다는 기분으로 출전하고 있다”고 전한다.
실제 후지사와 리나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여자바둑리그는 한국과 중국의 강자들이 전부 참가하기 때문에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일본에도 여자리그 같은 단체전이 생겼으면 좋겠다. 여자바둑리그는 소속감도 느낄 수 있고, 응원도 하게 돼 재미있다. 팀에 폐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 기사들이 여자바둑리그에서 올해 성적을 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오직 한국에만 존재하는 화려한 조명의 바둑TV 스튜디오 대국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고, 구단들도 용병 관리에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또 경기를 치를수록 선수들 간에 친분이 쌓이며 팀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이런 분위기가 제 기량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부광탁스 권효진 감독은 “국내 팬들에게는 위즈잉이 최정과 세계여자바둑 정상을 다투는 앙숙관계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둘이 무척 친하다. 팀에서 위즈잉을 가장 챙기는 사람이 최정이다. 얼마 전 중국에서 열린 마인드스포츠 게임 결승에서 최정이 위즈잉에게 다 이긴 바둑을 역전패했는데 다음 날 한국행 비행기에 둘이 나란히 앉아서 왔다. 최정이 위즈잉에게 너 때문에 감기가 옮았다고 투덜댔을 정도”라고 전했다.
포항의 왕천싱도 팀원들과 케미가 좋은 편이다. 왕천싱은 영어가 능통해 한국 기사들과 영어로 소통한다. 덕분에 친구도 많아 ‘싱싱이’란 별명도 얻었다. 대국이 없는 날에는 위즈잉을 데리고 서울시내 관광을 다닐 정도로 한국통이 다 됐다.
용병이라고 해서 국내 기사들에 비해 특별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여자바둑리그는 승자 100만 원, 패자 30만 원의 대국료가 책정돼 있는데 이들도 같은 조건으로 대국한다. 한국의 정상급 기사들이 중국 바둑리그에서 대국 당 1000만 원 안팎의 대국료를 받고 출전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다만 출전할 때마다 항공편과 숙식은 팀에서 제공받는다. 작년에는 성적이 좋지 않아 출전 횟수가 많지 않았는데 올해는 6라운드와 7라운드에 대부분 부름을 받았다. 순위 다툼이 훨씬 치열해질 종반에는 더 많은 출전이 예상된다.
권효진 감독은 “중국 여자 기사들이 뛸 수 있는 무대가 많지 않다. 자국에서 열리는 세계대회는 많은 편인데 여자 기사들만을 위한 기전은 부족하다. 남자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중국리그 출전도 어려운 형편이다. 중국에도 여자바둑리그가 있지만 아직 한국처럼 체계적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돈도 벌 수 있고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한국행에 중국 여자 기사들의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한중일 여자바둑의 르네상스가 한국에서 열리고 있다. 과연 어떤 열매를 맺을지 주목된다.
유경춘 객원기자